분별의식(제6,7식)으로 청정한 마음(진여)를 알 수는 없다.

2018. 9. 7. 10:17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만약 '분별망상의 의식(妄識)이 비록 청정한 마음의 자체를 보지는 못하지만 경전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청정한 우리의 마음은 본래 고요하다는 것을 <분별하여> 알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본래 고요하다고>아는 지혜가 생겨서 청정한 마음을 익히게 되면, 차차 우리의 마음이 본증(本證)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서 다시는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자증(自證)이라고 한다'는 이와 같은 논리를 고집한다면, 그대가 경전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우리의 청정한 마음은 본래 고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마음의 고요한 모습(寂相)을 따로 하나 만들어서 <그것이 고요하다고>아는 것인가, 아니면 고요한 어떤 모습을 상정하지 않고도 그것을 아는 것인가.

만약 <의식을 가지고> 고요한 하나의 모습을 상정해서 마음이 본래 고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것은 청정한 마음의 모습을>망상으로 조작하여 나타낸 모습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요한 마음의 자체라고 칭할 수 있는가.

(譯註 : ​가령 부처라는 하나의 모습을 의식이 청정한 마음을 의지하지 않고 떠올렸다면 그것은 의식에 떠오른 망상의 모습이지 부처가 아니다)

만약 본래 고요한 마음의 모습을 조작하지 않고 마음이 본래 고요하다고 알았다면 우리의 청정한 마음은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아서 문득 흩어져 없어질 것이다.

<반대로> 의식을 가지고 우리의 청정한 마음이 흩어지지 않게 한다면 이번에는 분별한 대상(所緣)이 있게 된다.이미 분별할 대상이 있다면 다시 분별의 세계가 벌어지므로 <진리가 아닌데> 이러한 경우 어떻게 <상대적으로> 고요한 모습을 조작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제6식은 제7식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진망(眞妄)이 화합된 제8식을 직접 볼 수 없고 의식이 의지하는> 제 7식이 우리의 청정한 마음을 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본래 고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청정한 지혜의 성품을 익히면, 스스로 우리 마음이 본증임을 알므로 다시는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가지고 스스로 청정한 마음을 증득한 것(自證)이다'  라고 하는 식의 논리를 전개하더라도 역시 틀린 설명이다.

왜냐하면 제7식은 아집식(我執識)으로서 <제 8식의 견분(見分)을 가지고 그것이 진실한 나의 주체라고 생각하여 집착하므로> 제7식은 우리의 마음이 본래 고요하다는 것을 알 수 없다.

(譯註 : 생사의 고통을 받게되는 것은 이 아집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중생이 끊임없이 생사 윤회의 괴로움을 받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제7식에 의한 집착 때문이다. 만일 제7식이 제8식의 견분으로 나타난 모습을 집착하지 않는다면 바로 청정한 마음이 되므로 제7식을 가지고는 마음이 고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청정한 마음이> 분별하는 주체인 제7식(能緣)의 분별대상으로서 모습(所緣)이 된다면 이것은 청정한 마음의 자체가 아니다.(譯註 :왜냐하면 청정한 마음이 분별할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이것은 청정한 마음이 아니라 망상으로 떠오르는 모습(對象)일 뿐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앞에서 마음 자체의 모습(體相)에 대한 설명에서 밝힌 바와 같다. 분별의 대상(所緣)은 실제로 존재하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의식에서 허상으로 나타난> 마음의 모습을 익힌다면 다시 망상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청정한 마음이 스스로 마음을 증득해서 다시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이치는 없다.

(譯註 : 반드시 사물을 분별하여 아는 작용이 있는 제6식을 사용하여 우리의 청정한 마음에 의지해 지관을 닦아야 우리의 청정한 마음을 증득하는 것이지, 우리의 마음이 본래 청정하다고 해도 마음이 스스로 청정한 마음을 자증(自證)할 수는 없다.)

가령 '제6식(他)을 인연으로 하여 <청정한 마음을 > 증득(他證)하다'고 말하더라도 이것도 역시 옳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의 자체는 본래 스스로 고요하고 적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정한 마음 자체의 측면과 대비해 볼 때> 제6식과 제7식 등은 다른 것(他)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허망한 인연을 따라 나타난 제6식,제7식은> 다른 마음(他心)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타심(他心)으로는 <본래 청정한 우리의 마음을> 증득할 수 없다.

반대로 우리의 청정한 마음을 가지고 <제6식이나 제7식인) 다른 마음을 증득하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사실은 불가능), <그러나> 어떻게 제6식을 가지고 우리의 청정한 마음 자체를 증득할 수 있겠는가.

(譯註 : 잠이 들면 제6식이 작용을 멈추고, 죽어서 화장을 할 때면 7식까지 사라져 버린다. 따라서 제6의식과 제7식은 망상심이기 때문에 청정한 마음을 증득할 수 없다.)​ - - ->(다음회 계속됨)


                                         -  남악혜사 지음, 원경옮김 <대승지관법문>(불광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