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을 혐오하는 것은 옳지 않다.

2018. 9. 15. 09:56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만약 '마음의 자체가 본래 고요하기는 하지만 단지 무시이래 <항상> 무명(根本無明)과 망상(枝末無明)으로 마음을 익혀 왔기 때문에 그 망념의 종자(習氣)가 우리의 청정한 마음 가운데 있어서 마음의 자체도 역시 본래 고요한 마음의 자체를 증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제6의식을 가지고 청정한 마음의 자체를 증득(他證)할 수 있다'고 그대가 주장한다면, 어떤 방편으로 수행하여 청정한 마음 가운데 있는 망념의 종자를 제거하고 우리의 마음의 자체가 본래 깨달음(本證)이라는 이치를 알 수 있겠는가.

가령 "다시는 망상을 새로 일으키지 않고 번뇌의 종자로 마음을 훈습하지 않아서 번뇌의 종자가 스스로 사라진다'고 한다면, 무명망념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을 때 어떻게 또다시 망상이 새롭게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만약 망상을 일어나지 않게(對治) 할 수행 방법이 없다면 망상의 종자는 계속히여 일어날 것이다.

만약 <의식을 가지고> 망상을 일으킨다면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잠복해 있는> 번뇌의 종자들이 그 세력을 더욱 증가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제6식을 가지고 청정한 우리의 마음을 증득한다(他證)는 이치는 없다.

가령 '제 6식을 사용하여 청정한 마음을 증득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고, 다만 우리의 마음이 제6식을 증득하는 것이라거나 또한 제6식을 우리 마음이 증득하기 때문에 무명의 종자(習氣)가 스스로 사라져 버린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하더라도 이것도 역시 옳지 않다. <왜냐하면> 제6식에는 이미 망념과 번뇌 습기의 종자가 있어서 <그것이 제6식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순간순간 <번뇌의 습기가> 일어나게 된다. 만약 번뇌의 종자를 우선적으로 제거하지 못하면 망념으로 나타난 제6식이 무엇을 의지하여 마음을 증득할 수 있겠는가.

한편, 우리의 청정한 마음이 제6식을 증득한다는 이와 같은 이치는 없다. 만약 청정한 마음이 제6식을 증득할 수 있다면, 일체의 모든 중생은 본래 청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수행을 하지 않아도> 망념을 스스로 제거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만약 '앞서 일어난 생각(前念)과 이어서 뒤에 일어날 생각(後念)이 스스로 서로 억제하여 멈추며 그러한 수행을 오래하면 망념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가지고 <마음이 의식을 증득한> 증타(證他)라고 한다면, 앞서 일어난 생각이 뒤에 일어날 생각을 멈추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뒤에 일어날 생각이 앞서 일어난 생각을 멈추게 하는 것인가.

만약 앞서 일어난 생각이 뒤에 일어날 생각을 중지시킨다면, 앞에 일어난 생각에는 아직 뒤에 일어날 생각으로써 망념이 나타나지 않았고, 뒤에 망념이 일어났을 때 앞서 일어났던 망념은 이미 다른 모습으로 바뀐 다음이다. 그렇다면 이 둘은 서로 따르면서 공존하지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앞서 일어난 생각이 뒤에 일어날 생각을> 억제하여 멈추게 할 수 있겠는가.

또한 가령 뒤에 일어날 생각이 앞서 일어난 생각을 억제하여 멈추게 한다는 생각도 역시 옳지 않아 서로 따르면서 공존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뒤에 일어날 생각이 앞서 일어난 생각을> 억제하여 멈추게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앞서 망상(前念)이 일어날 때 즉시 그것에 대해 스스로 협오심을 일으켜 그 협오심이 제8근본 아뢰아식을 익혀서 뒤의 망상(後念)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한다면, 청정한 마음은 스스로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망상에 대해> 협오심을 낼 수 있겠는가.

만약 '뒤에 일어날 생각(後念)이 앞서 일어난 망념을 혐오하기 때문에 망념을 싫어하는 마음이 근본식(아뢰아식)을 닦아서 다시는 뒤의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라면, 망상을 싫어하는 주체로서 마음이 앞서 일어난 망념을 싫어할 때 이미 앞서 일어난 망념은 공성(空性)이라는 이치를 알아서 그것을 싫어하는 것인가, 아니면 앞서 일어난 망념이 공성이라는 이치도 모르고 싫어한다는 것인가.  


만약 <앞서 일어난 생각이> 공성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바로 이 경지는 <제6식의 망상분별이 아니고 이미 의식이> 무진지(無塵智)로 전환이 된 이후의 일이다.

그렇다면 그대는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수행을 통해> 무진지를 성취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했는가. 또한 만약 <앞서 일어난 망념이 이미> 공성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 그 경지는 공을 체득했으므로>협오할 대상이 아니다.


만약 <제6식으로서> 앞서 일어난 망념이 공성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그 자체가 무명이 된다. 왜냐하면 앞서 일어난 생각은 여실히 공상이라는 이치를 몰랐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일어난 생각이 본래 공성이라는 이치를 몰랐기 때문에

어떤 실체가 있다고 집착함으로써 <앞서 일어난 망념에 대해> 협오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이것도 역시 무명(妄想)의 소치이다. 왜냐하면 망념은 여실히 공성인데 허망하게 그것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착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주체적으로 망상을 혐오하는 마음이 존재한다면 이미 그 자체가 망상과 무명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망상을 상대적으로 분별하여 혐오한다면> 그것은 무명 망상이 요동하여 나타난 법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그러한 망상을 가지고> 청정한 우리 마음을 닦는다고 하니 <이러한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무명(不覺)이 증가할 것이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일어난 분별망상은 구름이 피어나듯 더욱 증가될 것이다. 그런데도 <앞서 일어난 망상을 싫어하는 마음이 아뢰아식을 익혀서> 다시 뒤의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한다면 그것은 꿈 속에서 꿈을 꾸는 것과 같다. 그것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엉터리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졸고 있는 자라 할지라도 이와 같이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남악혜사 지음, 원경 옮김 <대승지관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