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17. 10:00ㆍ성인들 가르침/아쉬타바크라 기타
18-28.
내면의 고요함도, 외면의 산만함도 모두 초월하여
해탈도 바라지도 않고, 속박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도인은,
온 우주가 실재하는 듯 보일지라도 그것이 환(幻)임을 깨달았으므로
브라만으로써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이다.(204)
18-29.
'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육체가 가만히 있을 때도 마음이 계속해서 바쁘지만,
'나'를 벗어버린 도인은
육체가 활동 중임에도 마음은 항상 고요하다.(205)
18-30.
즐거워하지도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는
해탈한 도인의 마음은,
산란함이 없고, 욕망도 없으며,
아무런 의문도 품고 있지 않다.(206)
18-31.
억지로 명상을 하거나 유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해탈한 도인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명상과 행위가 일상 속에서도 저절로 행해진다.(207)
18-32.
무지한 사람은 참된 진리를 들으면
당황스러워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를 들으면
내면 속으로 물러나 겸허해지므로
마치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인다.(208)
18-33.
무지한 사람은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 명상도 해보고,
생각을 멈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보지만,
지혜로운 도인은
자신의 내면에 항상 안주해 있으므로
마치 잠든 사람처럼 해야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209)
18-34.
무지한 사람은
수행을 하든 수행을 버리든
결코 평온에 이르지 못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평온을 얻는다.(210)
18-35.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은
'순수한 자각이며, 지혜이며,사랑이며, 완전함이며,
이 우주 전체를 초월한 청정무구 그자체인 참나'를,
여러 가지 명상과 수행을 아무리 열심히 할지라도,
전혀 발견하지 못한다.(211)
18-36.
무지한 사람들은
반복적인 수행을 행하는 것으로
결코 해탈에 이르지 못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아무 것도 행함이 없이
단지 참나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자유로워지는 공덕을 얻는다.(212)
18-37.
어리석은 사람은
브라만이 되기를 욕망하기 때문에
결코 브라만을 깨닫지 못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고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지고한 브라만을 확실히 깨닫는다.(213)
18-38.
무지한 사람은
참나에 대한 명확한 확신이 없이
해탈을 열망하므로
세속적인 환(幻)의 대상에 이끌려 헤메고 다니지만,
현명한 도인은
모든 불행의 근원인 환(幻)의 뿌리(無知)를
싹뚝 짤라 버린다.(214)
18-39.
어리석은 사람은
억지로 마음을 써서 평온을 얻기 바라기 때문에
결코 평온을 얻지 못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에
항상 평온 속에서 안주(安住)하고 있다.(215)
18-40.
대상에 대한 앎에만 의존하는 사람이
어떻게 내면의 참나를 발견할 수가 있겠는가?
현명한 도인은
환(幻)의 대상들은 전혀 보지 않고
오직 변하지 않는 무한한 참나만 본다.(216)
-아슈타바크라 기타-
'성인들 가르침 > 아쉬타바크라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슈타바크라 기타(18-7) (0) | 2018.11.02 |
---|---|
아쉬타바크라 기타(18-6) (0) | 2018.10.16 |
아쉬타바크라 기타(18-4) (0) | 2018.08.08 |
아슈타바크라 기타(18-3) (0) | 2018.05.29 |
아슈타바크라 기타 (13장) (0) | 2010.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