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12. 12:18ㆍ성인들 가르침/종범스님법문
마음은 비유하자면 청천일광(靑天日光), 즉 푸른 하늘의 햇빛과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 본래의 마음입니다.
마음의 본체(體), 상(相), 작용(用)은 모두 둥글고 밝고 미묘한데, 이것을 모르고 반연(攀緣), 집착(執着)만 계속합니다. 반연(攀緣) 집착(執着)은 허망한데 거기 고통이 따릅니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를 오해해서 미워져서 말하기 싫고, 그러다 싸움이 벌어졌다고 합시다.
처음에 제멋대로 생각한 것이 망상인데, 여기에 반드시 심행(心行)이 따릅니다. 이것을 무명심행(無明心行)이라고 합니다. 무명심이 움직이는 길이 바로 집착입니다. 그래서 고통이 생기는데, 이것을 생사윤회(生死輪廻)라고 합니다.
생사윤회는 전부 허망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 부두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배가 빠르게 가니까 땅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은 배가 가는 것이지 땅이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원리가 그렇습니다. 깨달음이라든지, 성불이나 견성은 허망심(虛妄心)에서 본래 청정심(淸淨心)으로 확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몸을 돌린다고 해서 전신(轉身)이라고 합니다.
몸은 곧 마음입니다. 전신을 하는 것이 마음을 돌리는 것입니다. 땅은 가만히 있지만 배가 발리 가니까 땅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음은 가만히 있을 뿐입니다. 원명묘체, 둥굴고 밝은 것뿐인데 내가 망상집착을 하니까 생멸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스님은 딱 한 가지 법문만 하십니다.
누구를 보든지 손을 둥굴게 하고, "이 둥굴고 밝은 것을 아느냐?"라고만 묻습니다.
둥굴고 밝은 것이 바로 나입니다. 그것을 깨달으면 성불합니다.
그런데 원명묘체는 모르고 반연집착만 합니다. 그러니 끝없이 돌고 돕니다. 마음 공부를 해야 도는 고통을 면할 수 있습니다.
마음공부는 아주 간단합니다. 복잡한 게 아닙니다.
자연과학을 하려면 기초학문이 아주 힘듭니다. 사회과학은 사회현상이 워낙 복잡해서 힘듭니다.
인문과학은 아는 게 많은 사람이 최고입니다. 역사, 철학, 어학 등등 많이 알아야 인문과학을 합니다.
그런데 마음공부는 다 필요 없습니다. 기초도 필요없고, 과정도 필요 없고, 성과도 필요 없습니다.시험도 안봅니다.
마음 공부 원리가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자안멱자안(自眼覓自眼) 자가귀자기(自家歸自家)'라, 자기 눈이 자기 눈 찾고 자기 집에서 자기 집에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눈으로 자기 눈을 찾는 것이나 자기 집에서 자기 집에 돌아가는 게 얼마나 쉽습니까? 이것이 마음 공부입니다.
그러면 자기 눈으로 자기 눈을 찾는다는 게 무엇이냐?
모를 때는 안외구안(眼外求眼), 즉 자기 눈 밖에서 자기 눈을 찾습니다. 산에 가서도 찾고, 들에 가서도 찾고, 시장에 가서도 찾습니다. 이렇게 자기 눈 밖에서 눈을 찾으면 못 찾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마음에서 일어나는데,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인문과학으로 해결하려 하고, 이 몸을 통해서 행복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몸을 관리하고 사람을 관리하고 물질을 관리하고 모든 것을 관리하는 것이 마음이므로, 그 마음에 들어가야 합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를 얻을 수 없듯이, 모든 것이 마음이므로 그 마음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마음을 밖에서 찾으면 눈 밖에서 눈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눈 밖에서 눈을 찾다가 나중에는 자견자안(自見自眼)이라, 자기 눈을 자기 스스로 보는 수가 있습니다. 내 눈은 본래 하나뿐이라는 것을 보는 순간, 보는 눈과 보이는 눈이 둘이 아님을 알아서 눈으로 보려고 하는 마음이 싹 없어져버립니다.
자기 눈을 딱 아는 순간에 자기 눈을 알려고 하는 마음이 싹 없어지는 것입니다.
보려는 마음이 없어지니까 자기 눈을 보지 못했다는 마음도 없어집니다.그냥 그대로 눈입니다.
비 올때는 비오는 것 보고, 눈 올 때는 눈 오는 것 보고, 사람이 올때는 사람이 오는 것을 보는 것이 불변수연(不變隨緣)입니다. 눈은 본래 불변인데 온갖 인연 따라 다 보는 것이 수연입니다. 이것이 마음 공부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묶이는 허망심에 둘러싸여서 이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자기 나름대로 내년을, 몇년 후를 꿈꿉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둥굴고 밝은 본심을 아는 것이 마음공부입니다.
허망집착심에서 원명본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음공부인데, 내 눈이 내 눈을 보고 자기 집에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안되는냐? 잘못해서 그렇습니다.
마음공부하는 데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각찰(覺察) 공부입니다. 진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망상자체가 어떤 놈인지 얼마나 나쁜 놈인지, 얼마나 이상한 놈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 허망한 마음을 살피는 공부가 각찰공부입니다. 화가 나면 '아, 내가 화를 내고 있구나'하고 그 화내는 마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미운 마음이 생기면 미움 놈을 때릴것이 아니라 '내가 저놈을 미워하고 있구나'하는 그 마음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즉 어떤 감정적인 생각(妄想)이 일어날 때, '아 내가 이 생각을 일으키고 있구나'하고 각찰을 하면 마음(나쁜 감정)이 아지랑이와 같아서 일어났다가 금방 사라집니다. 싫어하는 마음 뿐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도 금방 사라집니다. 지금 좋다고 해서 그게 영원히 좋은 것이 아니고 원수지간이라고 해서 그것이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이 각찰공부가 잘 안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 갈 수 없습니다.
둘째 막념(莫念)입니다.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보아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쁘다고 해서 나쁘다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무슨 생각이 나든 거기에 따라가서 더 이상 생각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 보이든지 그것에 신경쓰지 않으면 됩니다. 무엇이 보이든 기억이 나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막념입니다. 생각을 끊는 것입니다.
셋째는 참구(參究)입니다. 둥굴고 밝은 이 마음이 무엇인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이 마음이 무엇인가? 이것을 참구공부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을 찾을 때 망상이 일어나면 절대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면 보기만 하지 생각나는대로 거기에 뒤따라가면 안됩니다. 이 참구를 하다보면 생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아지랑이 같은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서 살피고, 생각에 따라가지 말고,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본래 둥굴고 밝은 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무엇인가?'마음 속으로 향해서 묻는 것이 마음을 찾는 공부입니다.
-종범스님의 법문집 '오직 한생각'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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