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5. 12:04ㆍ성인들 가르침/종범스님법문
인류에게는 3대 문제와 4대 의혹이 있습니다.
3대 문제는 건강, 사람, 재물입니다.
첫째, 건강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가?
둘째,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셋째, 먹고 입고 자고 사람 만나려면 재물이 필요한데, 재물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이 세가지를 위해서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 등 모든 학문이 발달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네 가지 의혹이 있습니다.
첫째, 인생이 어디서 왔는지 온 곳을 모릅니다.
둘째, 어디로 가는지 가는 곳을 모릅니다.
셋째, 가기는 가는데 언제 갈지 모릅니다. 내일 갈지 모래 갈지, 내면에 갈지 내후년에 갈지 모릅니다.
건강도 관리하고 사람도 관리하고 물질도 관리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누군지 모릅니다.
그래서 네 가지 의혹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내가 누구인가?'입니다.
마음공부는 바로 내가 나를 찾는 공부입니다.
건간을 관리하는 자연과학도 아니고, 사람 관리, 물질 관리하는 인문과학도 아닙니다.
오직 내가 나를 찾는 공부인데, 이것은 철학도 아니고 심리학도 아닙니다.
오직 그 마음 자체를 공부하는 것이 마음공부입니다.
마음공부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길 수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공부를 발전시키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조그마한 마음 하나 못 다스려서 일어납니다.
작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큰일 납니다.
그리니까 마음 다스리는 이 공부를 해 나가면 일이 없습니다.
그만큼 마음 공부가 중요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무엇이냐?
대승불교 강론 중에서 마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놓은 것이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 있습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마음을 진심(眞心)과 망심(妄心)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달마 대사의 관심론(觀心論)에서는 마음을 정심(淨審)과 염심(染心), 즉 깨끗한 마음과 물든 마음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들었다는 것은 밖으로 집착한다는 말입니다.
깨끗한 마음은 생멸이 없습니다. 그래서 허망하지 않고 변하지 않습니다.
진실불변(眞實不變)을 진여(眞如)라 하고, 이 진실불변의 마음을 정심(淨心)이라고 합니다.
반면 염심(染心)은 생멸이 있습니다. 이것은 무명심(無明心)입니다.
정심(淨心)은 진심(眞心)이고, 염심(染心)은 망심(妄心)입니다.
그러면 허망한 것은 무엇이고 진실한 것은 무엇이냐?
<도서(都序)>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眞)은 불변수연(不變隨緣)이라, 변하지 않고 인연을 따릅니다.
예를 들어 물은 그대로 입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연을 따릅니다.
물이 국을 만나면 국이 되고, 사람 몸을 만나면 혈액이 되고, 구름으로 내려오면 비가 됩니다.
비나 구름이나 국이나 전부 물입니다. 하지만 물이라는 본질은 불변입니다.
마음도 이와 같아서 불변하는 그 진심이 인연 따라서 다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진심입니다.
그런데 망심은 불변수연처럼 본체가 없습니다. 이것을 체공(體空)이라고 합니다.
이 망심은 근본이 없습니다. 본체가 없는데 일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을 성사(成事)라고 합니다.
길을 가다가 고목나무를 귀신으로 잘못 보면 그게 망(妄)입니다. 그런데 귀신으로 잘못 본 것은 본체가 없습니다.
그 귀신이 고목나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본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일단 보이면 겁이 납니다. 그래서 막 뜁니다. 뛰다가 물에도 빠지고, 나무에도 부딪치고 일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체공성사(體空成事)입니다. 세상의 망심이 다 그렇습니다. 무지(無知)해서 그렇습니다.
또는 비단뱀이 도사리고 있는데 황금으로 착각합니다. 그런데 황금은 뱀에도 눈에도 없습니다. 본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일단 황금으로 봤으니까 그냥 지나가지 않고 욕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것을 보자기에 싸서 집에 갖다 놓습니다. 이 비단 뱀이 잠에서 깨면 온 집안이 난리가 납니다. 이처럼 망은 허망한 것인데 일을 만듭니다.
본체는 공한데 일을 성사시켜서 엄청난 고통을 줍니다. 반면 진(眞)은 불변수연(不變隨緣)으로, 인연 따라서 여러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조금 설명하면 정심(淨心)은 조작된 것이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허공과 같습니다. 허공은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허공은 먼지나 더러운 것이 붙을 수 없어서 본래 깨끗합니다. 그래서 정심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자정심(自淨心)이라, 깨끗하게 해서 깨끗한, 조작된 깨끗함이 아니라 스스로 깨끗한 마음입니다.
염심(染心)은 고통이 있는게 아니라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서 괴로운 것입니다.
자박심(自縛心), 즉 스스로 속박되는 마음입니다.
어떤 물질을 볼 때 그 물질이 '나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물질에 스스로 애착을 느껴서 스스로 속박됩니다. 죽음도 '나를 두려워하라'고 하지 않지만 스스로 두려움을 느껴서 스스로 속박됩니다.
이것이 자박심(自縛心)입니다. 자박심은 늘 반연(攀緣)합니다. 반연이라는 것은 서로 잡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이것을 휘어잡고, 보는데 마다 인연을 만듭니다. 이것이 반연심(攀緣心)이고 집착심입니다.
반연하고 집착하는 것이 망심(妄心)입니다.
또 정심은 묘체원명(妙體圓明)이라고 합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미묘한 본체인데, 왜냐하면 자성(自性)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물의 속성도 아니고 불의 속성도 아니고, 보이는 속성도 아니고 안 보이는 속성도 아니고, 무자성(無自性)입니다. 그리고 무장애(無障碍), 즉 장애가 없습니다. 그리고 원명체(圓明體), 즉 둥굴고 밝습니다.
이것이 묘체(妙體)이고, 나입니다.
자성이 없고 장애가 없고 둥굴고 밝은 것이 나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몸과 사람과 물질에만 매달려서 살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언제 가는지도 모르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갑니다.
따라서 해야 할 일은 나를 찾는 것입니다.
마음은 허공과 같은 것도 아니고, 물질과 같은 것도 아니고, 자성이 없습니다.
마음은 장애가 없습니다. 둥굴고 밝은 원명체라는 것을 알면, 마음의 본성을 보았다고 해서 견성(見性)이라고 합니다.
무자성, 무장애, 원명묘체를 확실히 깨달은 것을 견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종범스님 설법집 <오직 한 생각>에서 일부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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