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오솔길, 마음을 보는 길

2017. 11. 24. 22:47성인들 가르침/종범스님법문



어떤 사람이 자기 눈을 찾으려고 산에도 가고, 시장에도 가고 세상을 헤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 눈이 본래 모든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그때는 산도 자기 눈이 보는 산이고, 물도 자기 눈이 보는 물이고, 사람도 자기 눈이 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눈을 찾기 전에는 눈이 없습니다.

종이를 보면 종이만 있지 눈이 없고, 나무를 보면 나무만 있지 눈이 없고, 사람을 보면 사람만 있지 눈이 없습니다.

그런데 눈을 알면 종이를 보는 것도 눈이고, 사람을 보는 것도 눈이고, 티끌을 보는 것도 눈이고, 어둠을 보는 것도 눈이고, 밝음을 보는 것도 눈 뿐입니다.

눈을 알기 전에는 어두우면 어둠만 보고, 밝을 때는 밝은 것만 보지,눈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깨달음이라는 것은 한번 크게 웃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눈을 찾으려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헤매던 사람이 '아 ! 산이나 들이나 바다를 본 것이 내 눈이었구나'하고 반갑고 허탈해서 크게 웃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이란 크게 웃는 것입니다.

왜 웃느냐? 한편으로는 허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갑기 때문입니다.

반갑고 허망해서 웃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항상 거기 있었는데 몰랐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을 꿈에다 많이 비유했는데, 저도 글을 하나 지었습니다.

睡夢睡語卽不無 수몽수어즉불무

皆是寢席寢中事 개시침석침중사

於此唯有臥眠人 어차유유와면인

開眼合眼常自在 개안합안상자재

꿈과 잠꼬대는 곧 없지 않으나

모두 잠자리에서의 일이다

여기에는 오직 누워자는 사람만 있어

눈을 뜨든 눈을 감든 항상 자재한다.

잠을 자다 보면 꿈도 꾸고, 잠꼬대도 합니다. 하지만 잠자리에서 자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여기에는 오직 누워서 자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눈을 뜨든 감든 그냥 자유자재할 뿐입니다.

꿈에서 깨기 전에는 꿈만 있고 자기가 없었는데, 꿈을 깨서 자기로 돌아간 후에는 자기 하나 뿐입니다.

꿈꿀 때도 자기이고, 깨어 있을 때도 자기입니다. 자기가 꿈꾼 것입니다. 꿈꾸는 나와 꿈에서 깬 나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눈을 감고 자는 것도 자유자재이고, 눈을 뜨고 일하는 것도 자유자재입니다. 자유자재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꿈 하나 꾸고 꿈 해몽해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꿈이 꿈일 뿐인데 거기에다 무슨 해몸을 합니까? 꿈이라는 것은 잠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다른 것 없습니다. 자다 보면 꿈도 꾸고 자다보면 잠꼬대도 하는 것입니다.

죽고 살고 하는 이게 무엇이냐? 불가사의해탈 실상법계 하나 뿐입니다.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고, 없다는 것도 없습니다. 없다고 하면 없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없습니다.

그 말은 왜 하느냐? 잠꼬대 입니다.

우리가 밥을 왜 먹습니까? 내 몸에 힘을 얻으려고 먹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있다, 없다' 이 소리를 왜 하느냐?

깨닫게 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배를 타는 것은 물을 건너가기 위해서입니다.

배를 타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을 건느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모든 이야기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하는 말이지, 그 말 자체에 무슨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 방편이고, 수단이고 과정입니다. 모든 방편이 마음을 보는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점을 항상 놓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릇이다'하면 그릇인 줄만 알지, '그릇이다'하고 아는 내 마음을 놓칩니다.

'이것이 그릇이다'하고 좇아가는 것은 밖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그릇이라고 보는 내 마음은 무엇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거기서 모든 것이 다 해결합니다.

그러니까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전부 꿈 속의 일입니다. 그리고 밖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꿈 속의 일입니다.

밖으로 보이는 경계도 꿈 속의 일이고 내가 그것을 좇아가는 생각도 꿈 속의 일이라,

오직 불가사의 해탈 실상법계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오솔길입니다.

그런데 이 길을 놓치고 물질을 얻고, 사람을 얻고, 뜻을 얻기 위해서 갑니다.

오솔길은 보이지 않는 길이지만 빠릅니다. 출발지를 떠나지 않고 목적지에 바로 가버립니다.

보통 보이는 길은 출발지를 떠나서 목적지에 도달하는데, 이 길은 출발지를 떠나지 않고 목적지에 바로 도달하니 얼마나 빠릅니까? 털끝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0도와 360도의 차이입니다. 0도와 360도는 다릅니다. 못 깨달으면 0도인데, 깨달으면 360도입니다. '못 깨달음'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것이 움직이지 않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솔길이라고 합니다. 0도에서 360도로 가는 길만 알면 하나도 구하는 것이 없이 모든 것을 다 얻습니다. 그것이 마음을 보는 길입니다.

무량억겁을 살아도 그게 아무 것도 아닌 그 삶이 마음을 보는 길입니다. 이 마음을 보아서 불가사의해탈 법계에 들어간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즘은 세계 부자들의 순위가 있다고 합니다. 열심히 죽자살자 돈을 벌었는데 순위에서 뒤로 밀리면 얼마나 기분 나쁘겠습니까? 그런데 1등을 한다고 해도 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이 몸이 죽으면 그 재산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쓰지도 못할 돈 벌기만 하다가 죽는 것처럼 어리석은 게 없습니다. 내가 필요한 돈을 버는 것은 좋지만, 내가 쓰지도 못할 돈 벌다가 죽어 버린다면 참 허망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밖으로 얻는 것은 저 허공의 한 점 티끌에 불과합니다.

이 구하는 마음을 하나 탁 보면 '무량겁이 일찰나요, 일찰나가 무량겁이라, 일미진이 대천계요, 대천계가 일미진이라,' 이게 불가사의 해탈경계입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 오솔길입니다.

내가 구하는 마음, '이것이 무엇인가?'하고 구하는 마음을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구하는 마음을 좇아가서 채우는게 아니라, 구하는 마음을 돌이켜서 그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반조자심(返照自心), 자기 마음을 돌이켜 보면 다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보는 마음이 무엇이냐? 자꾸 더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멈추고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자꾸 더 들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멈추고 돌이켜 들어야 합니다.

'듣는 이 마음이 무엇인가?'하는 생각이 떠오르면 눈앞에 보이는 것이나 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나 똑같이 티끌입니다. 안에 있는 티끌이 떠오르면 그 생각을 좇아가지 말고, '아 ! 지금 내가 생각을 일으키는 이것이 무엇인가?'라고 해야 합니다.

보고 듣고 기억하는 것이 전부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무엇인가?

보는 마음, 듣는 마음, 기억나는 마음이 다른 마음이 아니라 한 마음이 여섯가지 문으로 항상 나옵니다.

일심(一心)이 육문(六門)이지 육문이 전부 다른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항상 이것 하나뿐입니다. '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움직이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 거기서 다 됩니다. 이것이 인생의 오솔길입니다. 마음을 보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경전을 볼 때 경전을 보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자기 마음을 깨닫는 게 목적입니다.

밥을 먹는 게 목적이 아니라 밥을 통해서 건강을 얻는 게 목적이고, 배를 타는 게 목적이 아니라 배를 타고 건너가는게 목적입니다. 부처님이 마음을 보는 길인 인생 오솔길을 가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입니다.

                                             -종범 스님 법문집, <오직 한 생각>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