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돌이켜 보는 관심수행법(觀心修行法)

2017. 10. 9. 11:23성인들 가르침/종범스님법문


지혜로운 삶을 살려면 일체유식(一切唯識)이라, 일체가 내 마음이 만든 것을 내가 구하는 것입니다.

중생은 밖으로 구하는데, 밖으로 구하는 것은 내 물건을 내가 훔치는 것과 같습니다.

색즉시공이라는 눈으로 보면 훔칠게 없고, 모두가 불생불멸입니다.

그런데 내가 '저것 참 좋다,'하면서 내가 좋은 것을 만들어 놓습니다.

내가 만들고 내가 탐하니까 내 물건을 내가 훔치는 것입니다.

내 물건을 내가 훔치면서 사는 것은 어리석은 삶입니다.

그러니까 일체유식(一切唯識), 즉 모든 것은 내 생각으로 만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자작자수(自作自受)입니다. 내가 지어서 내가 받습니다. 이런 것이 전부 지혜입니다

그리고 <금강경>에서 말했듯이 불수복덕(不受福德)이라, 복 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을 짓기만 하고 받을 생각이 없이 보시하면 그 공덕이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 할 때까지 쓰고도 남습니다.

이것이 무주상보시의 불가사의한 공덕입니다.

그러니까 받으려고 하는 데서 머슴살이 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한테 받으려고 하면 거기에 얽매여 버립니다.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수행입니다. 복 받을 생각을 하지 않으면 전부 자유롭습니다.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 구할 생각이 없으면 당당할 수 있습니다.

받으려니까 슬슬 기는 것입니다.

보살은 복을 안 받습니다. 복을 안 받으면 거기에 만복이 이루어집니다.

안 받으면 주인이고, 받으면 머슴입니다. 받을 생각이 없이 보시하면 그것이 여래(如來)요, 법왕(法王)입니다.

자식한테도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부부간에도 받을 생가을 하지 말고, 부모에게도 받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이 받을 생각을 하는 게 머슴살이, 종살이, 감옥살이입니다.

받을 생각을 하는 데서 고생문이 열립니다.

부모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받을 생각을 하기 때문에 원망합니다.

친구를 욕하는 사람도 친구한테 받을 생각을 해서 욕합니다.

받을 생각없이 행하는 것이 바로 보시행(布施行)입니다.

복덕을 받지 않고 오로지 보시하면 그것이 해탈이요, 도인이요, 부처입니다.

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보시하면 그게 바로 성불(成佛)입니다.

그리고 밖으로 보지 않고 내 마음을 보는 것이 관심법(觀心法)입니다.

좇아가면 윤회이고, 돌이켜 보면 해탈입니다.

'좋다고 보는 이 마음이 무엇일까? 하면 해탈이고, '저것 좋은데, 내가 가져야겠다.'하면 윤회, 속박, 고통입니다.

좋다는 마음을 돌이켜 보는 것을 관심(觀心)이라고 합니다.

보는 마음, 듣는 마음, 생각하는 마음을 좇아가면 윤회이고, 돌이켜 보면 해탈이요 관심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데, 마음을 돌이켜 보면 문이 열립니다.

좇아가면 고통이 생깁니다. 답이 딴 있는 게 아니고 내 마음을 돌아 보는데 답이 있습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는 '조견오온(照見五蘊)'이라고 했습니다.

오온이라는 게 내 몸인데, 전부 생각 덩어리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좇아가면 고통이 옵니다.

불생불멸의 실상이 마음을 돌아보는 데 확 열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닦아야 되느냐? 천 가지 만 거지 길이 있지만 한 길입니다.

내가 내 마음을 돌아보는 것뿐입니다.

경을 읽어도 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다라니를 외워도 내 마음을 내가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불교 수행인데, 회통(會通)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자기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모아집니다.

참선이나 염불이나 간경이나 주력이나 절이나 전부가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체 수행은 억만 가지가 있어도.  그 근원은 관심(觀心)입니다.

자기 마음을 자기가 보는 것으로, 거기에 길이 있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되니 안 되니 하는 것도 다 내 생각입니다.

안된다는 생각도 잘 된다는 생각도 오래 안 갑니다. 거기에 휩쓸리지 않아야 합니다.

염불이든 기도든 계속해서 하면 밖으로 향하던 잡념근심은 없어지고, 내 마음이 점점 밝아져서 불생불멸의 자기 본성이 환히 보일 때가 옵니다. 그때가 오면 보는 순간에 불생불멸의 그 자리가 자기 본성에서 지금까지 털끝만큼도 옮기지 않앗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 똑같습니다.

깨달은 사람도 불생불멸 그 자리에 있고, 못 깨달은 사람도 불생불멸 그 자리에 있습니다.

오직 볼 뿐이고, 오직 못뵜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것은 밖으로 구하는 것이고, 수행은 자기 마음을 자기가 쳐다보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모든 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그것 하나 뿐입니다.

거기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생각이 일어난다고 그것을 좇아가면 윤회요, 고통입니다.

'이것은 무엇인가?'하는 것이 내가 내 마음을 돌이켜 보는 관심수행입니다.

                                  -종범스님 법문, '인생과 수행'에서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