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16. 11:26ㆍ성인들 가르침/종범스님법문
<화엄경>에서는 부처님이 일체 중생의 몸으로 다 나타납니다.
모든 중생이 업(業)을 지어서 업을 받는 업보(業報)의 몸으로 다 나타나는게 화엄의 부처님입니다.
32상 같은 것은 전혀 상관없는 세계가 있습니다. 화엄신앙을 해야 남녀가 평등합니다.
1)성정각불(成正覺佛)은 정각을 이룬 부처님입니다.
2) 원불(願佛)은 일체 중생을 다 성불시키려는 부처님입니다.
3) 업보불(業報佛)은 일체 업보를 다 드러내는 부처님입니다.
4)주지불(住持佛)은 머무는 것이 다 부처님입니다.
5) 열반불(涅槃佛)은 열반에 드는 것이 다 부처님입니다.
6) 법계불(法界佛)은 법계가 그대로 부처님입니다.
7) 심불(心佛)은 마음이 그대로 부처님입니다.
8) 삼매불(三昧佛)은 삼매가 그대로 부처님입니다.
9) 본성불(本性佛)은 본성이 그대로 부처님입니다.
10) 수락불(隨樂佛)은 중생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모두 나타나는 것이 다 부처님입니다.
이처럼 화엄불은 법계가 도량이고, 도량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마음과 경계, 심성과 국토가 다른 게 아닙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인식과 존재인데, 인식 따로 있고 존재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찻잔이라는 존재가 있고, 이것을 알아보는 것은 나의 인식입니다.
그러면 내 감각이 없는데 찾잔이 존재하느냐? 또 찻잔이 존재해서 내 감각이 있는 것이냐?
그런데 부처님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존재와 인식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도량이 바로 부처이고 부처가 도량입니다.
밥계가 바로 부처이고 부처가 바로 법계입니다.
법계가 부처님의 깨달음인 정각(正覺)이고, 정각이 법계입니다.
이것이 정각도량입니다. 온 우주가 부처님의 정각도량이고 정각이 우주입니다
이것이 해인도량입니다. 해인(海印), 즉 바닷 속에 있는 모든 영상 그림자 그대로 정각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정각세계에 중생세간(衆生世間), 국토세간(國土世間),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이 다 들어 있습니다.
전부 정각속에 나타나는 세계입니다.'정각이 법계이고, 법계가 정각이다."가 핵심입니다.
깨달음을 얻으면 내가 바로 법계가 됩니다.
그래서 중생이라는 것은 나와 이 세계를 분리하는 분별이고, 정각은 원융해서 둘이 없는 것입니다.
다 도량불인데 중생이 미혹해서 이것을 나눕니다. 삶과 죽음이 있고, 인식과 존재가 있고, 깨달음과 대상이 있습니다.
둘로 나눠서 보면 미혹한 것이고, 원융하게 돌아가면 깨달은 것입니다.
깨달으면 나도 없고 나 아닌 것도 없어져서 원융하게 됩니다.
깨닫기 전에는 둘이 있어서 분별합니다. 분별이 번뇌입니다.
번뇌는 항상 분별하는데, 깨달으면 둘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하나냐?
하나라고 하면 벌써 하나 아닌 게 있으니 하나도 아닙니다.
원융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융무이상(圓融無二相)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무를 계속 비비면 불이 나고, 불이 나면 나무가 탑니다. 그러면 둘이 없어지는데, 그러면 하나가 있느냐? 하나도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원융무이입니다. 이런 것이 정각도량입니다.
통도사 극락암에 극락영지라는 연못이 있습니다. 그 연못에 영축산 산그림자가 비칩니다.
경봉큰스님이 그곳을 지나가시다가 "저 연못 속에 산이 비친다"는 말씀을 가끔하셨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그냥 지나가시지, 왜 저런 말을 하시나?'했는데, 거기에는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지수(池水), 연못물에 영축산 그림자가 비친다는 말입니다.
그림자 볼 때 물은 안 보입니다. 그런데 연못의 물을 빼버리면 그림자는 없습니다. 그림자를 볼 때는 산 모양만 뚜렷하게 보이는 데, 사실은 그게 산이 아니고 전부 물인 것입니다.
알고보면 그 그림자 하나하나가 물입니다. 물을 떠나서 영상은 하나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화엄경>에서 중생, 국토, 불보살이 다 본각대지(本覺大智), 즉 본래 깨달은 큰 지혜의 물속에 비친 그림자입니다. 삼종세간이 전부 지혜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본각대해(本覺大海)에 비친 그림자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지영(智影)이라고 합니다. 일체 존재, 일체 법계가 지수(智水)에 비친 지영입니다.
저기 저 허공도 나의 본각대지에 비쳐진 그림자입니다. 그러니까 본각대지가 없으면 허공도 없습니다.
우리 몸도 지혜의 몸에 비친 그림자(身爲智影)이고, 허공도 지혜의 물에 비친 그림자이고, 국토도 지혜의 그림자입니다. 이것을 해인삼매(海印三昧)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각대지는 모르고 단지 그림자만 봅니다.
물 속에 비친 그림자만 볼 줄 알고 물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물에 비친 그림자에 속아서 그림자만 좇아 다닙니다.
이 그림자에 속아서 지혜의 몸을 잃어버리는 것이 중생입니다.
그릇을 보고 그릇인 줄 알지만 그릇이라고 느끼는 지혜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 본래 지혜에 가느냐? 반야바라밀 수행으로 들어 갑니다.
본래 지혜에 못 들어가게 하는 장애를 극복하려면 반야 바라밀 수행이 필요합니다.
(- - -> 다음 회에 계속됨)
-종범스님 법문,<도량불과 자성청정심> 중에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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