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17. 10:37ㆍ성인들 가르침/종범스님법문
( 전번 회에 이어서 - - -)
반야바라밀 수행이란 첫째로 관조(觀照), 즉 관찰을 합니다.
일체 경계, 모든 사물, 산하대지, 우주만물 등을, '이것이 무엇인가?'하고 경계를 관찰합니다.
경계를 관찰하면 색즉시공(色卽是空)을 알게 되는데, 이것이 관조반야(觀照般若)입니다.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것이 공한 줄 알게 되는데, 이것이 택법관공(擇法觀空)입니다.
반야지혜를 자꾸 닦으면 일체가 공함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관공반야(觀空般若)입니다.
이렇게 공을 보면 경계를 탐하거나 구하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경계가 공한 줄 모르니까 경계를 탐하고 경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평생 구하는 것이 사람, 재산, 명예, 권력 등입니다. 그런데 그 경계가 다 불생불멸이고 자성이 없고 공한 줄 알게 되면, 그 경계를 구하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경계가 공함을 보게 되면 경계를 좇아가던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예를 들면, 도둑이 물건을 훔치러 어느 집 방문을 열고 들어 갔는데 방 안에 아무 것도 없고 완전히 빈방인 경우, 이것을 도둑이 빈방에 들어 갔다고 적입공실(賊入空室)이라고 합니다.
아무 것도 없으니까 도심소멸(盜心消滅)이라, 훔칠마음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경계도 공하고 마음도 공한 것이 원명(圓明)입니다.
또 경계도 공하고 마음도 공한 상태를 적광(寂光)이라고 합니다. 이 원명적광의 세계가 정각입니다.
분별번뇌는 사라지고, 원명적광의 정각이 드러나는 것이 시성정각(始成正覺)입니다. 그 세계가 법계도량입니다.
부처님의 정각도량은 적광원명입니다.
경계를 좇아가고 경계를 분별하는 그 번뇌가 고요해진 상태에서 드러나는 지혜가 원명지혜입니다.
원명지혜로 가기 전에 관조지혜가 있습니다. 관조에서 원명으로 가는 것이 반야바라밀입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관조가 다 끝나서 그냥 무가애(無罣碍) 일체지(一切智)가 형성된 지혜의 세계입니다.
이것이 불도량입니다. 불도량이 되면 모든 것이 해인도량입니다.
모든 것이 정각지혜에 비추어진 그림자입니다. 정각을 떠나서는 그림자가 없습니다.
잘 닦으면 반야지혜를 점점 끌어냅니다.
중생은 자성청정심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을 끌어내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 끌어내는 수행을 발심수행이라고 합니다.
자성청정심을 그대로 가지고만 있으면 범부이고, 이것을 부분부분 자꾸 끌어내면 보살이라고 합니다.
하나 하나 닦아 나가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보살 수행은 보시와 지계로부터 나옵니다.
물질을 보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원력을 세워서 하면 지혜가 됩니다.
퇴비는 다른 아무 데도 못쓰는 것이지만 과일나무에 주면 좋은 과실이 되는 것처럼,
재물을 가지고 있다가 버리면 그만이지만 그것을 좋은 공덕으로 쓰면 지혜가 됩니다.
이것을 보시라고 합니다.
계율은 나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은 나도 이롭고 다른 사람도 이롭게,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마음을 잘 써야 합니다.
어떤 할머니가 아들네에 갔다가 아들이 집안일을 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상해서 딸네로 가버렸답니다.
딸네 가니까 사위가 청소하고 부얶일 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더랍니다. 심보를 그렇게 쓰면 안됩니다.
사위가 딸을 도와 집안일 하는 것은 기분이 좋고, 아들이 며느리를 돕는 것은 기분이 나브다면 장애때문에 성불하기 어렵습니다.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마음을 쓰고, 물질을 공덕으로 잘 써야 성불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자성청정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런 좋은 마음을 자꾸 끌어내어 닦아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종범스님 법문집 <오직 한생각>에서 '도량불과 자성청정심'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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