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24. 11:13ㆍ성인들 가르침/종범스님법문
나의 진실한 모습은 무엇인가?
이 진실상에는 껍대기가 없습니다. 그게 본래의 나입니다.
껍데기가 없는 진실상이 무엇인가?
우리가 항상 독송하는 의상스님의 <法性偈> 첫머리가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입니다. 법의 성품은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고,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않아 본래 고요합니다.
천지만법이 법입니다. 하늘도 법이고, 땅도 법이고, 사람도 법입니다.
그런데 그 법의 진실상에 성(性)이 있는데 근원적인 성을 법성(法性)이라고 합니다.
이 법성은 원융해서 둘이 없습니다. 색,수,상,행,식이 전부 법입니다.
<반야심경>에서 제법(諸法)이 공상(空相)이라고 했습니다.
색,수,상,행,식이 제법이고, 안,이,비,설,신도 제법입니다.
또 색,성,향,미,촉,법도 제법입니다. 십팔계(六根,六境,六識), 천지만법이 다 제법입니다.
여기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근본이 적멸(寂滅)입니다.형상이 없는 적멸입니다.
이것이 의상 스님의 법문입니다.
그러니까 제법도 우리 자신이고 법성도 우리 자신인데,
법성은 둘이 없고 제법은 본래 적멸입니다.
나고 죽는 생멸이 본래 적멸이라는 것입니다.
또 일체만물이 둘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법에는 각자 자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에는 물의 자체 성질이 없고, 돌에는 돌의 자체 성질이 없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자체 성질이 없다는 것입니다.
'법무자성(法無自性) 이타위성(以他爲性)'이라, 밖에는 자성이 없고, 다른 것으로서 자성을 삼습니다.
이것이 근본입니다.
의상스님이 계속 강조하신 것처럼, 우리 몸이 자체가 없고 전부 다른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물, 불,온갖 생각, 전부 다른 것이 모여서 된 집성체입니다. 흩어지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사는 것도 삶의 요소들이 모이면 살고, 죽는 것도 죽는 다른 요소들이 모이면 죽습니다.
전부 모여서 죽고 모여서 사는 것입니다.
죽을 수 있는 것들이 모이면 죽고, 살수 있는 것들이 모이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법입니다.
그런데 생겨도 자성이 없기 때문에 다른 것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니까 생긴 것과 안생긴 것이 둘이 아닙니다.
흩어지는 것도 다른 것에 의해 흩어지니까 흩어지는 것과 흩어지지 않는 것이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없이 생긴 것이 그대로 생기지 않은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생긴 것은 생긴 것대로 자성이 없고 생기지 않은 것은 생기지 않은 것대로 자성이 없어서 법성이 둘이 없습니다.
법의 본성이 둘이 없고, 제법이 본래 적멸이라는 것이 우리의 진실상입니다.
그래서 항상 이것 자체가 본래 적멸입니다. 생기지 않은 것과 똑 같습니다.
왜냐하면 생긴 것은 자성이 없고 전부 다른 것에 의해서 생겼기 때문입니다.
또 없어지는 것도 자성이 없고 전부 다른 것에 의해서 없어지니까 생기지 않는 것과 생긴 것이 그대로 적멸입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둘이 없습니다.
'부동본적(不動本寂) 원융무이(圓融無二)' 를 다 보는 것이 자기 진실상을 다 보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냐? 원융무이(圓融無二)가 나입니다.
나는 누구냐? 부동본적(不動本寂)이 나입니다.
이것이 나의 진실상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껍데기입니다.
늙는다,죽는다,남자다, 여자다, 잘났다, 못낫다,공을 세웠다, 못세웠다, 이런 것들은 전부 가명상(假名相) 껍데기입니다. 억만년을 살아도 껍데기로만 사는 것입니다.
원융무이 부동본적이 나의 진실상(眞實相)입니다.
-종범스님 법문(나의 알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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