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공부(81)

2015. 9. 21. 10:04성인들 가르침/능엄경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81]


 3-9. 부처님의 가르침


ㅇ. 소리는 없어도 듣는 성품은 있다.


[본문]

[阿難聲銷無音 汝說無聞하니 若說無聞인댄 聞性已滅하야 同于枯木이어늘

鐘聲更擊 汝云何知리오 知有知無 自是聲塵 或無或有언정 豈彼聞性

爲汝有無 聞實云無인댄 誰知無者리오 ]

 아난아! 소리가 사라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지면 너는 이를 들음이 없다고 말

했는데, 만약 참으로 들음이 소멸하였다면 듣는 성품이 이미 멸하여 고목과

같을 것이다. 종을 다시 친들 네가 어떻게 알겠느냐? 소리가 있음을 알고, 소

리가 없음을 아는 가운데 스스로 이 소리가 혹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할지언정

어찌 저 듣는 성품이 너에게서‘있었다, 없었다’하겠느냐? 만약 듣는 성품

참으로 없다면 무엇이 없는 줄을 아느냐?

[해설]

소리가 나다가 사라지면 들리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소리가 없을  때 듣는 성품도 없다고 한다면, 종소리가 사라지고 나서 다시 종을 치게 되면

듣는 성품이 사라졌으므로 아예 그 후의 종소리를 못 들어야 할 텐데, 다시 종소리를 들으므로

듣는 성품은 소리가 사라지든 소리가 있든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듣는 성품 안에서 소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것이지, 듣는 성품 자체가 너에게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듣는 성품은 항상 있지만, 소리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므로, 결국은 소리가 있다고  듣는 성품이 생긴 것도 아니고,

소리가 없다고 듣는 성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듣는 성품이 없다면 그 이전에 무엇인가 있어서 그 듣는 성품이 없다는 것을 아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듣는 성품 자체가 단순한 듣는 이식(耳識)이 아니라, 최종 바탕의 여래장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

[是故阿難 聲於聞中 自有生滅이언정 非爲汝聞 聲生聲滅이라도 令汝

爲有爲無어늘 ]

 그러므로 아난아! 소리는 그 듣는 가운데 스스로 생멸이 있을 수 있으나

듣는 성품은 소리가 생기고 소리가 멸하더라도‘있었다, 없었다’하

것이 아니다.

[해설]

​듣는 성품 안에서 소리의 일어남과 멸함이 있을 수 있지만, 소리가 생길 때는 듣는 성품이 있고,

소리가 없을 때는 듣는 성품이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리의 있고 없음에 관계없이

듣는 성품은 항상 있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汝尙顚倒하야 或聲有聞하니 何怪昏迷하야 以常爲斷이리요 終不應言호대

諸動靜 閉塞開通코는 說聞無性이니라 ]

 네가 아직도 전도되어 있기에 소리에 미혹하여 소리가 있을 때만 듣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찌 그렇게 혼미하여‘항상한 것을 없어지는 것이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느냐? 부디 가지가지 동정(動靜)과 개폐(開閉)와 통색(通塞)

을 여의면 그 듣는 성품도 없어진다고 말하지 말라.

[해설]

그러나 아난은 아직까지 마음을 깨치지 못하고 있어서,앞에 있는 생멸하는 감각대상에만 관심(미혹됨)을 주므로써,

감각대상을 따라서 듣는 성품이 있다, 없다 한다는, 주객이 전도된 미혹상태에 있으므로, 항상 있는 듣는 성품도

없어진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소리가 있다, 혹은 없다든가, 귀가 꽉 막히든가, 혹은 열리든가 상괸없이

듣는 성품은 항상 변함없이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ㅇ. 듣는 성품은 영원히 있다.

[본문]

[如重睡人 眠熟床枕 其家有人 於彼睡時 擣鍊春米하면 其人夢中

聞春擣聲하고 別作他物호대 或爲擊鼓하며 或爲撞鐘하야 卽於夢時 自怪

其鐘 爲木石響이라가 於時忽寤하야 遄知杵音하고 自告家人호대 我正夢

或此春音하야 將爲鼓響이니라 阿難是人夢中 豈憶動搖 開閉通塞

이리 其形雖寐 聞性不昏이니 縱汝形銷하야 命光遷謝런들 此性云何爲

汝銷滅이리요 ]

 마치 깊이 잠든 사람이 침대에서 한참 자고 있을 때에 가족들이 다듬이질이

나 방아를 찧으면 그 사람이 잠결에 방망이 소리와 절구 소리를 듣고 다른

리로 착각하여 혹은 북을 치거나 혹은 종을 치는 줄로 알고 꿈에서 스스로

‘종소리가 마치 나무나 돌을 두드리는 소리와 같다’고 괴이하게 여기다가

그 때에 문득 깨어서 절구 소리인 줄을 알고는 스스로 집안사람들에게‘내가

지금 꿈을 꾸었는데 이 절구 소리를 그만 북소리로 잘못 들었었다’고 말하

것과 같다.

 아난아! 이 사람이 꿈속에서 어떻게 고요함과 흔들림과 열림과 닫힘과 통함

과 막힘을 기억할 수 있으리요? 그것은 그가 몸은 비록 잠을 자고 있었으나

듣는 성품은 어둡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너의 몸이 없어져서 목숨이 바뀐다

하더라도 이 성품이야 어찌 너에게서 있었다, 없어졌다, 하겠느냐?

[해설]

​간단하게 말해서, 잠을 잘 때도 소리는 역시 들리는데, 그것을 받아들여서 분별하는 육식(六識)은, 절구치는 소리를

잠속에서는 마치 북치는 소리로 착각하여 잘못 분별할 수는 있겠지만, 그 소리를 듣는 성품 그 자체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ㅇ. 생멸만을 좃아다니면 망(妄)으로 오염되어 미계(迷界)를 유전한다.

[본문]

[以諸衆生從無始來 循諸色聲하면서 逐念流轉하고 曾不開悟性淨妙常하나

不循所常하고 逐諸生滅일새 由是生生 雜染流轉어니와 若棄生滅하고

守於眞常하면 常光現前하야 根塵識心 應時銷落하리라 想相爲塵이오 識情

爲垢 二俱遠離하면 則汝法眼 應時淸明이어니 云何不成無上知覺이리요 ]

 모든 중생들이 시작이 없는 옛날부터 가지가지 성색(聲色)을 따르면서 그

르는 마음을 좇아 윤회하고, 일찍이 맑고 묘하고 항상한 본성[性淨妙常]의

마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항상한 것을 따르지 아니하고, 가지가지 생멸만을 따르기 때문에 이

로 말미암아 세세생생에 어지러운 생각으로 윤회[流轉]하게 되는데, 만약 생

멸을 버리고 진실 되고 항상함을 지킨다면 영원한 광명이 눈앞에 드러나 근진

과 식심이 바로 사라질 것이다.

 추리하고 상상하는 것은[想相]은 어지러운 티끌이요, 분별하고 사량하는

[識情]은 더러운 때이다. 이 두 가지를 멀리 여의면 바로 너의 진리의 안

[法眼]이 청명할 것인데, 어찌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겠느냐?  

 

 [해설]

마지막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모든 중생들이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옛날부터, 여러가지 다양한 감각대상에만 정신이 팔려서 쫏아다니면서

헤메고 있기 때문에 미혹(迷惑)되어 모르고 있는 것이지, 맑고 묘한 여래장 묘진여성의 참마음은 항상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 묘진여성이 자기 내면에 항상 지니고 있는지 모르고, 가지가지 다양한 육진(六塵)의 허망한 대상들만 정신이 팔려쫏아다니다 보면 한 생애 뿐만 아니라, 여러 생을 돌고 돌면서 혼돈된 미망(迷妄)으로 떠돌아 다니니게 되는데, 만약 그 사람이 생멸하는 육진(六塵)의 대상을 따라다니는 것을 당장 그만두고, 변함없고 진실된 그 내면에 마음을 집중하고 깊히 들어간다면 밝고 묘한 여래장의 묘진여성이 앞에 드러나서, 근(根,감각기관)과 진(塵,대상), 그리고 식심(識心, 분별심)이 바로 사라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밖의 대상을 감각기관으로 통하여 받아들여서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마음을 오염시키는 티끌이고,

또한 대상을 분별하고 사랑한다거나 싫어하는 감정을 일으키는 것도 마음의 더러운 때이므로,

이 마음을 오염시키는 티끌과 마음에 묻은 더러운 때를 벗겨내버리고 멀찍암치 벗어나면, 바로 그 자체가 청정한 지혜의 눈(法眼)이 드러나는 것이므로, 이렇게 되면 최상의 깨달음을 얻지 못할 이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법안(法眼)이 청정해지므로 깨달음의 보살지위에 성큼 들어선다는 것으로 최종 구경각을 향해 전진할 자격(청정한 법안)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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