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공부(79)

2015. 9. 9. 09:29성인들 가르침/능엄경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79회]


 3-7. 육근을 벗어나려면


 ㅇ. 근(根)과 진(塵)이 없어지면 깨달음의 밝은 성품이 나타난다.


[본문]

[阿難如彼世人 聚見於眼이라가 若令急合하야 暗相現前하면 六根黯

하야足相類라가 彼人以手 循體外繞하면 彼雖不見이나 頭足一

知覺是同니라 緣見因明이라 暗成無見어니와 不明自發하면

諸暗 永不能昏하리니 根塵旣銷인댄 云何覺明不成圓妙리요 ]

 아난아! 마치 세상 사람들이 보는 힘[見]을 눈에 모았다가 갑자기 눈

감아 눈앞이 온통 어두우면 육근이 캄캄함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한

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손으로 몸을 따라 더듬어 가면 그가

비록 지는 못하더라도 머리와 발을 하나하나 가려서 깨닫는 것이 밝

을 때와 을 것이다.

 반연하여 대상을 보는 것은 밝음을 의지하기 때문에 어두우면 볼 수

으나 설사 밖이 밝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심성을 발한다면 곧 가지가

두움이 영원히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치에서 볼 때

에) 진(根塵)이 이미 소멸했다면 어찌 깨달음의 밝은 성품[覺明]이

진정한 묘(圓妙)를 이루지 못하겠는가?

[해설]

마치 세상사람들이, 전체 감각기관을 눈의 보는 힘에만 집중시킨다는 것은 밝음으로 인해서 보이는 것이 있을 때인데, 갑자기 눈을 감으면 눈앞이 전체가 캄캄하여 어디가 어딘지 분별할 수가 없이 전체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손으로 더듬거리며 몸의 겉모양을 분별 할 수가 있는데, 비록 컴컴해서 보지는 못해도 머리인지 발인지 가려낼 수가 있는 것이 마치 밝은 때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에서 증험으로 도출해 보자면, 육근(六根)은 육진(六塵,대상)에 의해서 생겨나서, 육진을 지각하는데, 육진과 육근이 둘 다 없어서 어둡더라도 항상 내면에서 스스로 비치는 여래장 묘진여성의 밝은 깨달음이 비치고 있으므로 영원히 어둠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어찌 깨달음의 밝은 성품이 원묘를 이루지 못하겠는가?'에서, 감각기관의 작용은 가까이 있는 것만 보고 듣고 하지만,여래장의 묘진여성은 전체(十方) 세계에 있는 것을 다 보고 듣고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중생은 육진(六塵)때문에 근(根)이 생기고, 근(根)이 맺힌 것 때문에 속박을 받는데, 근(根)에 맺히지 않고, 내면으로부터 본성품의 밝음(覺明)이 발하게 된다면 왜 진(塵)과 근(根)의 구애를 받겠는냐, 는 그 말입니다.

 

3-8. 아난의 또 다른 의심


ㅇ. 근진(根塵)이 없어지면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으로 인(因)을 삼아서 수행을 합니까?

[본문]

[阿難白佛言호대 世尊如佛說言하야 因地覺心으로 欲求常住인댄 要與果

名目相應이니다 ]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어! 부처님께서는‘인지(因地)의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여

래의 상주과(常住果)를 구하고자 할 때에는 그 과위(果位)의 명목(名目)

에 상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해설]

​앞서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초발심의 이결정의(二決定義) 중 '초발심의 인지(因地)의 발심이 과지(果地)의 覺과 같으냐, 다르냐' 하던 그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보고 듣는 여섯가지 감각작용은 앞에 나타난 대상물질(塵)을 여의면 실체가 없어지는데, 이 근진(根塵)을 끊어서 없애는 것이 그 수행방법인데, 이것을 끊어서 없애는 인지(因地)에 의하여 항상 머무는 과(果, 깨달음)을 얻으려고 수행한다면, 이것이  어떻게 서로 부합할 수가 있느냐고 아난이 묻는 것입니다. 


[본문]

[世尊如果位中 菩提涅槃 眞如不成 菴摩羅識空如來藏 大圓

鏡智 是七種名 稱謂雖別이나 淸淨圓滿하며 體性堅凝 如金剛王

常住不壞어늘 若此見聽 離於明暗 動靜通塞코는 畢竟無體인댄

猶如念心 離於前塵코는 本無所有니다 云何將此畢竟斷滅하야 以爲修

하야 欲獲如來七常住果리잇고 ]

 세존이시어! 과위 가운데 보리와 열반과 진여와 불성과 암마라식[제9

식]과 공여래장과 대원경지 등 일곱 가지 명칭이 그 이름은 비록 다르나

청정하고 원만하여 그 자체의 성품이 단단하고 응어리져 있음은 마치

강왕이 항상 머물러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보고 듣는 것이 명암과 동정과 통색을 여의고는 필경에 몸[體]이

없는 것이 마치 사물을 생각하는 마음이 앞의 대상을 떠나서는 본래 아

무 작용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필경 아무 것도 없는 허망한 모

[斷滅]으로 수행의 인(因)을 삼아 여래의 일곱 가지 상주과(常住果)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해설]

​깨달음의 7가지 과위의 이름이 보리, 열반, 불성, 암마라식(제9식 또는백정식), 공여래장, 대원경지 등이 이름만 다르지 모두 절대바탕에 안주한 상태를 말하며, 청정하고 전체에 두루하며, 어떤 움직임도 없고, 자재하므로 마치 금강왕처럼 영원히 안정되어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고 듣는 것은 육근을 대표한 것이고, 명암,동정, 통색은 육진을 대표로 예를 들어 말한 것인데, 즉 감각기관의 작용은 앞의 대상경계가 없으면, 마치 몸이 없는 것처럼 아무 작용도 하지 않는데, 이렇게 아무 작용이 없는 허망한 단멸(斷滅) 상태를 수행의 발판으로 삼아서 수행을 시작한다면, 어떻게 깨달음의 7가지 과(果)를 얻을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世尊若離明暗코는 見畢竟空인댄 如無前塵이면 念自性滅이니다 進退循

하야 微細推求라도 本無我心及我心所하니 將誰立因하야 求無上覺

잇고 如來先說하신 湛精圓常 違越誠言하야 終成戱論이리니 云何如來

眞實語者리잇고 惟垂大慈하사 開我蒙恡하소서 ]

 세존이시어! 만약‘명암을 여의고는 보는 작용이 필경 공(空)하다’고

하신 것은 마치‘앞의 대상이 없으면 생각의 성품도 멸한다’라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이리 저리 생각하여 자세하게 찾아보아도 본래 나의 마

과 마음의 대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장차 무엇으로 인을 삼아 최상의

깨달음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여래께서 앞에서‘담정(湛精)하고 원상(圓常)하다’고 설하신 진실한

말씀에 위배[違越]되어 마침내 희론(戱論)이 된다면 어떻게 여래를 진

실한 말씀을 하시는 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큰 자비를 드리우

시어 저희들의 어리석음을 열어 주소서.”

[해설]

 아난의 생각으로는 명암,동정,통색 등의 12상을 여의게 되면 六識이 六塵과 연결이 끊어져 버리는데, 마음(육식)이 작용하는 것은 六塵을 내용으로 하여 감정과 상념을 내는 것인데, 육진과 연결이 끊어져 버리면 마음(六識)에는 나타낼 바가 하나도 없어서, 마음(육식) 자체가 없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난의 의심은 이렇게 마음이 空해져서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게 되면 심지어 여래의 깨달음의 7가지 과(果)를 얻기 위해  발판(因)을 삼을 것도 없게 되니, 결국은 열반을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12相(六塵)을 떠남으로써 감춰져 있는 진여의 본성이 나타나게 되고,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이 묘진여성을 초발심으로 삼아 깨달음의 과지(果地)에 합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인데, 오히려 아난은 이것을 거꾸로 보아서 12相(六塵)을 떠남은 단멸(斷滅)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초발심으로써 여래장의 인지(因地)를 세울 수 없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설법을 아난이 들어서 알기는 했으나, 완전히 그 내용은 깨치지 못하고 오히려 대상에 반연된 마음으로만 부처님의 설법을 잘못 받아들였기 때문에 아직 의심에 막혀 있는 것입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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