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19. 10:53ㆍ성인들 가르침/능엄경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68회]
2-1-4. 오탁(五濁)
ㅇ. 번뇌탁(煩惱濁)
[본문]
[又汝心中에 憶識誦習하고 性發知見하고 容現六塵하나니 離塵無相이오 離
覺無性이어든 相織妄成하면 是第三重名爲煩惱濁이니라 ]
다시 너의 마음속에 기억하고 의식하고 외우고 익히고 하여 성품에서 지견
(知見)을 발하고, 용모로는 육진(六塵)을 나타내니 경계를 여의면 현상이 없
고, 견문각지(見聞覺知)를 여의고는 성품이 본래 없는데, 서로 짜여 망(妄,
想陰)을 이루니 이것이 제삼중(第三重)으로서 이름이 번뇌탁(煩惱濁)이다.
[해설]
위 한문 본문에서 '억식송습(憶識誦習)'이라는 말은 다시 풀면 억습(憶習), 식습(識習),송습(誦習)이라고 풀어서 쓸수가 있는데, 위의 한글해석에는 그렇게 안나왔지만, '기억하는 습', '아는 습', '송하는 습', 이렇게 '습(習)'자가 '억,식,송(憶,識,誦)'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글자입니다. 따라서 억습(憶習)은 과거의 일을 기억하는 습이고, 식습(識習)은 현재의 것을 아는 습이며, 송습(誦習)은 미래의 것을 짐작한다는 습입니다. 즉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의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해서 외면서, 좋다 나쁘다 분별하는 감정의 습이 생기기 때문에 , 지견(知見)이 생긴다고 말한 것입니다. 또 기억하고 현재를 의식하고 마래를 생각하려면 그러한 대상 경계가 있어야 되는데, 그 대상이라는 것이 바로 육진(六塵)을 말합니다.
따라서 과거,현재,미래의 일을 생각하는 작용이 주체가 되고 육진이 대상이 되므로, 육진의 대상을 벗어나면 생각하는 작용도 없고, 생각하는 작용이 없으면 육진 경계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육진 경계를 여의면 기억하고 의식하고 외우는 습의 모양이 없고, 육식의 작용인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그 각(覺)을 여의면 육진(六塵)의 성품이 없다는 것입니다. 위 해석에서 '성품이 본래 없다'는 것은 육진의 성품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유지(有知), 무지(無知), 알고 모르는 그런 생각들이 서로 짜여서 본래 마음바탕을 흐리게 하므로 이것을 번뇌탁(煩惱濁)이라고 합니다. 이 번뇌탁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陰) 중에서 세번째 상음(想陰)으로 부터 생깁니다. 유식학적으로 말하면 전육식(前六識)의 작용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고작용, 즉 생각의 발생으로 본마음을 흐려지고 한 것이므로 번뇌탁이라고 한 것입니다.
아드바이트 베단타 계통에서는 이 단계를 미세체 안의 '마음의 껍질'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마음이란 보통 생각하고 사고 하고 분별하는 겉모습의 의식의 사고작용을 통틀어서 말합니다
ㅇ. 중생탁(衆生濁)
[본문]
[又汝朝夕에 生滅不停하야 知見每欲留於世間하고 業運每常還於國土어든
相織妄成하면 是第四重名爲衆生濁이니라 ]
또 네가 조석으로 생멸이 멈추지 아니하여 지견은 늘 세간에 머물고, 업의
흐름은 항상 저 국토에 옮겨가는데, 그 가운데 서로 짜여 망(妄,行陰)을 이
루니 이것이 제사중(第四重)으로서 이름이 중생탁(衆生濁)이다.
[해설]
조석으로 생멸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이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는 작용으로 분별마음이 계속 활동하며 움직이는 것을 말하는데, 생멸(生滅)작용이란 바로 마음의 파동성 움직임을 말합니다. 이렇게 의식의 파동성이 대상을 따라서 수시로 움직이고 변화하면서 흐르므로 이것을 행음(行陰)이라고 하는데, 이 행음(行陰)으로부터 중생탁(衆生濁)이 생깁니다. 즉 의식의 파동성의 움직임 그 자체가 행음(行陰)인데, 이로 인해서 '나'라는 개인성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개인성이 바로 '중생(衆生)을 말합니다. 앞서 색(色)은 사대(四大)물질(육체)을 말하는 것이고, 수(受)는 물질을 받아들이는 감수(感受)작용, 즉 전오식(前五識)을 말하며, 상(想)은 생각하는 작용이고, 우리의 생각이 불안정한 파동성이므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꾸 변천해 가는 것을 행음(行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어느때는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가만히 있는 것 같은 미세한 존재의식조차도 그것이 가장 미세하지만, 파동성이므로 역시 아주 작은 파동성이 움직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이 있기 시작하면 그것은 움직이는 파동의식이며, 더욱이 육체감관작용으로 오염된 분별의식은 더욱 복잡하게 이중,삼중,사중으로 변천해가는 움직임이 있읍니다. 그런데 이것이 파동성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항상 시간에 연계되어 움직이는데, 마치 끊어지지 않는 외길의 철길을 계속 달리는 기차처럼, 뒤에 오는 생각이 앞의 생각을 추월하지 못한다는 것이 행음의 작용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러한 끊어짐없는 생각의 일직선 움직임의 작용을 하는데, 중생의 생각은 이 세상의 삶에 집착해서 머물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오래 살려고 생에 집착해서 매일 비싼 보약을 남몰래 달여 먹는다든가, 죽은 후에도 묘자리 좋은데 쓰려고 미리 준비하는 짓들은 모두 이 세간에 집착하는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죠. 업의 흐름(業運)이라는 것은, 業이라는 것은 어떤 행위의 진행상황을 말하므로 이것은 의식의 파동성의 흐름을 말하는 것으로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계속 흘러가는 것을 말합니다. 즉 업의 움직임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계속 변화해서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들 중생들의 생각은 계속 여기 머물러 있으려고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업의 흐름은 계속 강물의 흐름처럼 쉼없이 흘러가려고 하는데, 중생의 생각(고정괸념)은 계속 세간에 머물려고 하니깐, 업의 흐름과 반대로 흐르는 우리(중생)의 지견(고정관념)이 서로 짜여져서 망(妄,미혹)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여기 본문 문장으로 말하자면, 중생의 지견은 세간에 머물려고 하고, 원래 자연적인 업의 흐름은 계속 흘러가는 것이므로, 계속 있으려는 생각과 반대로 자연적으로 흐르는 업의 작용이 서로 뒤섞여서, 있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닌, 이러한 혼탁한 상태를 중생탁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중생탁이란 '나'라는 개인성의 자만심, '내것'이라는 소유욕 을 가진 중생의 개인성을 말합니다. 이 단계를 유식학적으로 본다면 제 7식(識)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드바이트 베단타 계통에서는 미세체 안에 있는 "지성의 껍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ㅇ. 명탁(命濁)
[본문]
[汝等見聞元無異性언마는 衆塵隔越하야 無狀異生이라 性中相知나 用中相
背하야 同異失準이어든 相織妄成하면 是第五重名爲命濁이니라 ]
너희들이 지금 보고 듣고 하더라도 원래 다른 성품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
니고, 다만 뭇 번뇌가 가로막아 까닭이 없이 다른 것이 생기는 것이다. 성품
가운데에는 서로 알고 비추는 것이나 작용하는 가운데 서로 배반하여, 같고
다름이 기준을 잃고 서로 짜여 망(妄,識陰)을 이루게 되니 이것이 제오중(第
五重)으로서 이름이 명탁(命濁)이다.
[해설]
우리는 중생이 되어 육신을 가지고 있으니깐 이 육체의 각 개별적인 장치를 통하여 미혹되어 눈으로 보기만 하고, 귀로는 듣기만 하여, 이러한 각 기관들이 따로 따로 각기 작동을 하여 보고 듣고 느끼는데, 우리의 본래부터 있는 여래장 묘진여성인 불성자리는 이 몸이 생기기 이전에도 있었고, 이 몸이 죽어서도 있는 것인데, 불성자리는 보기만 하고 듣기만 하는 것이 없어서, 보고 듣는 것이 원래 서로 다른 것이 없고 다 같은 여래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진(六塵)은 따로 따로, 색을 보고 소리를 듣게 된 것 때문에 까닭없이 다름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사대(四大)가 육근(六根)을 이루고, 육근(六根)이 보고 듣는 것등으로 경계벽을 막아서 서로 통하지 못하게 하여 다른 것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성품 가운데에는 서로 알고 비추는 것>이란 말은 제 8식 안에서는 보는 것이나 듣는 것, 맛보는 것등이 다 같다는 것이고, <작용하는 가운데에는 서로 배반하여>라는 말은, 같은 종자가 육식(六識)에서는 그 작용이 서로 각각 다르게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같고 다름이 기준을 잃고 서로 짜여 망을 이루게 되니>라는 말은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른 것이 아니고, 다른 듯하면서도 같은 것이 아니니, 이러한 것들이 서로 짜여서 식음(識陰)을 이루게 되어 여래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 5겹(重)이라고 해서 명탁(命濁)이라고 합니다. 즉 식음 자체가 명탁이라고 하는 것인데, 제8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곳이 바로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의 파동이 생겨나는 지점이므로, 생명이 일어나므로써 여래장을 흐리게 한다고 해서 명탁(命濁)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여래장의 한점에서 돌연히 움직이면서 미세한 첫 생명파동의식이 발생하는데, 이 첫번째 일어나는 미세한 생명파동의식이 바로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의 핵점을 말하며, 이 존재의식 안에서 육체의 생명이 생기므로 명탁(命濁)이라고 부른 것 같습니다. 유식학적으로 보면 제8아뢰아식에 해당하며, 인도 아드바이트 베단타 계통에서는 지복의 껍질 또는 원인체와 대(초)원인체 단계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생은 위에서 열거한 오탁(五濁)에 의해서 여래장인 묘각명심(妙覺明心)의 전체성을 잃고 생멸심(파동성 의식)의 망상(妄想)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여래장을 가로막은 생멸심(파동의식)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러한 오탁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이것들을 벗어나야 합니다. 오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능엄경에서는 탁한 진흙탕물을 맑게 정화시키는 비유를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수행을 통해서 흙탕물 속의 진흙을 가라앉히듯 객진 번뇌를 가라앉히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릇 밑바닥에 가라앉은 진흙을 완전히 제거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서 근본 무명을 완전히 끊고 열반의 청정한 묘심(妙心)에 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지(因地)의 마음을 이와같이 맑게 하여 수행해야 과지(果地)의 수증(修證)도 원만해져서 열반의 묘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도자가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갖추어야 할 기본적 자세인 이결정의(二決定義) 중에 첫번째의 설명입니다.
능엄경에서는 이 오탁을 맑히는데 적당한 수행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이후에 나올 원통근(圓通根)을 통한 수행법입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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