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공부(66)

2015. 7. 6. 09:58성인들 가르침/능엄경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66회]


제2장 대승의 위없는수행법을 설하시다.


2-1. 초발심의 두 가지 결정의(決定義)


2-1-1.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본 뜻을 열어 보임.

[본문]

[爾時世尊哀愍會中緣覺聲聞 於菩提心未自在者 及爲當來佛滅度後

末法衆生發菩薩心 開無上乘妙修行路 宣示阿難 及諸大衆]

그때에 세존께서 모임 가운데 있는 연각과 성문들이 보리의 마음에

자재하지 못한 자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앞으로 닥칠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 말법의 중생들이 보리의 마음을 발할 자들을

위하여 무상승(無上乘)의 오묘한 수행의 길을 열어주려고 하시어

아난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해설]

그 당시 법회에 모인 그 자리에 연각이나 성문 수준의 소승 구도자들이 대승적인 깨달음에 대하여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므로, 이들의 무지에 대하여 부처님께서 연민심이 생기셨고, 또한 앞으로 부처님이 이 세상을 떠나신 뒤에, 또한 수천년의 먼 세월이 흘러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진리를 대중들이 까맣게 잊어버리는 말법시대가 다가와서도 보리의 깨달음을 구하고자 하는 구도자들을 위해서 위 없는 높고 오묘한 수행 방편을 인도해 주시기 위해서 아난과 대중들을 향해서 입을 여셨습니다. ​이것이 지금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본 뜻입니다

2-1-2. 인지(因地)의 발심(發心)이 과지(果地)의 각(覺)과 같을 것


[본문]

[如等決定發菩提心 於佛如來妙三摩提不生疲倦 應當先明發覺初心二決定義]

"너희들이 결정코 보리의 마음을 내어 여래의 오묘한 삼마지에 피로하고

게으름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응당 먼저 깨달음을 발하려는 첫 마음을

일으킨 때에 두 가지 결정의 의미를 밝혀야 하나니라.

[해설]

'너희들이 보리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결심했다면, 여래가 가르쳐 준 수행을 할 때에 피로함과 지루함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즉 탄탄하고 안정된 수행삼매 속에 계속 있게 하기 위하여, 당연히 초발심을 일으키기 전에 우선 두 가지의 결정적인 의미를 스스로 명확하게 밝혀서 숙지한 상태에서 수행에 들어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 부처님이 삼마제에 대하여 말씀하시려고 합니다. 여기서 삼마제란 삼마발제 또는 삼마지라고도 하며, 생멸인연의 모습을 관찰하는 수행의 방편입니다.  삼마제 수행은 여러가지 다양하게 그 종류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수행에서도 처음에는 마음을 어느 한곳에 집중해서 망상이 나오지 않고 산란치 않게 하면서 동시에 생멸인연의 모습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다 보면, 저절로 그 배면에서 지켜보는 주시자 영역으로 빨려 들어가는 삼매에 젓게 되는데, 이 삼매상태에 익숙해 짐으로써 점차로 이원적인 생멸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경지에 들게 되는 안정된 상태를 얻게 될 수가 있는데, 처음에는 이원적인 대상으로 집중수행을 하다가 점차로 비이원적 수행으로 넘어가는 이러한 수행도 일종의 소위 정혜(定慧) 또는 지관(止觀) 수련이라고 볼 수도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수행을 끊어짐없이 열심히 하면 점차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의식의 동정(動靜)을 넘어서서 생멸심을 없애서 여래장에 안정될 수가 있습니다..


여기 능엄경에서 "두 가지 결정적인 뜻"이란 능엄경의 삼마제 수행에 있어서 나침반과 같은 필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지침을 말합니다. 이것을 완전히 숙지하지 않고서는 능엄 수행에서 올바른 수행과 그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두 가지 결정적인 뜻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 인지(因地)의 발심(發心)이 과지(果地)의 각(覺)과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因地가 果地와 일치하려면 허망한 생멸심을 버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생멸심과 모든 현상을 관찰하는 수련이 필요하며, 이러한 관찰하는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변하는 것이고, 무엇이 항상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인지를 스스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런데 항상 변하는 망(妄)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다섯가지 오염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야야 합니다. 따라서 부처님이 오탁(五濁-다섯가지 오염된 것들)에 대해서 다음부터 설명하십니다.

둘째, 번뇌의 근본과 그 발업윤생(發業輪生)의 과정을 이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번뇌의 근본(바탕)과 그 번뇌가 일어나서 커가고 증식하는 생주이멸(生住異滅)하는 현상은 육식(六識), 육근(六根)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임을 관찰하고 그 육근(六根)의 작용을 역이용해서 번뇌를 벗어날 것을 부처님이 이후에 설하고 계십니다.


[본문]

[云何初心二義決定인고 阿難第一義者 汝等若欲捐捨聲聞하고 修菩薩乘

入佛知見인댄 應當審觀因地發心 與果地覺으로 爲同爲異아하라 阿難

若於因地 以生滅心으로 爲本修因하야 以求佛乘不生不滅 無有是處

니라 ] 

무엇이 처음 발심할 때 갖추어야 할 두 가지 결정된 이치인가? 아난아!

첫째 이치는 너희들이 만약 성문을 버리고 보살의 수행을 닦아서 부처님

의 지견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응당 인지(因地)의 발심이 과지(果地)의 깨

달음으로 더불어‘같은가 다른가’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

 아난아! 만약 인지의 구하고자 하는 마음[生滅心]으로 근본 수행을 삼

아 부처님[佛乘]의 불생불멸을 구하려 한다면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해설]

여기 능엄경에서는, 구도자가 경전이나 이론만을 공부하다가 결국 실수행으로 들어 갈때에 이원적인 생멸심으로 시작하지 않고 곧바로 대승적인 보살행의 비이원적인 수행으로 들어가려면 수행목적이 부처님의 비이원적인 여래장을 얻는 것이므로 처음 수행을 시작하는 단계부터 이원적인 생멸심이 아닌 비이원적인 입장을 취해서 수행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수행을 시작하는데는 생멸심부터 시작하는 단계가 있고, 아예 처음부터 비이원적인 수행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은, 처음에는 경전이나 이론적인 공부를 하는데, 이때는 성문(聲聞)수준이라고 하며, 생멸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것이죠. 또 호흡수련이나 위파사나 같은 것도 처음에는 주체와 객체가 분리된 이원적인 생멸심으로 수행을 시작합니다. 물론 이런 기초 수행을 점차로 익혀서 더 깊히 들어가면, 마음의 집중이 되고, 마음이 한곳에 머무는 것이 자주 일어나면 점차로 삼매를 경험하고 따라서 점차로 비이원적인 수행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대략 일반적인 수행 단계는, 개아적 생멸심 -> 우주자아적 원인체(유심삼매) -> 절대진아(무심삼매), 이렇게 삼단계로 크게 나누어 보면, 처음에는 육체적 개아의 마음인 생멸심으로 수행을 시작하게 되므로, 이때는 이원적인 분별마음을 매개로 수행을 합니다. 이 수행으로 마음을 올곳이 한곳에 집중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도록 정(定)수행을 하면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우주적 자아단계(유심삼매)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이때까지는 구도자는 어쩔수 없이 이원적인 생멸심을 가지고 수행을 하게 됩니다. 즉 호흡수련, 염불수행, 만트라 수행, 다라니 수행, 등 어떤 소리나 색갈,형상,경전구절의 의미 등 육식(六識)으로 어떤 대상에 집중하는 수행은 모두가 생멸심을 가지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어떤 대상을 가지고 마음 집중을 하는 이원적인 수행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어떤 것일까요? 이때는 생멸심의 마지막 단계인 "내가 있음" 우주적 자아단계인 존재의식, 즉 베단타에서 말하는 원인체와 초원인체 삼매까지 밖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보통 범부들이 사용하고 있는 생멸심의 끝에 까지 올 수는 있는데, 이곳은 부처님이 말하는 여래장이 아니라, 즉 절대 진아가 아니라, 그 이전에 우주적 자아라는 원인체 또는 대원인체까지 밖에는 올 수가 없습니다. 파동적으로 말하자면 이때는 생멸심이 생겨난 근원이며, 가장 미세한 생멸심의 존재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이 우주적 자아단게에서 더 깊은 단계로 들어 가려면, 비이원적 수행을 해야 절대 참나를 향하는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이때는 무엇을 한다는 유위적인 것이 없습니다. 무엇을 한다고 시도하면 이원적인 생멸심 단계로 타락해 버립니다. 보통 '하는 바 없이 한다'는 무위적 수행을 한다라고 하는데, 위와같이 다른 경전이나 가르침에서는 처음에는 육식(분별의식)을 가지고 수행을 해서 보리, 열반을 얻는다고 가르치는데, 여기 능엄경에서는 육식(六識), 즉 분별심은 생멸심이니깐 안되고, 육근의 순수한 비치는 성품, 즉 육식을 뺀 육근의 순수하게 비치는 성품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여래장과 비슷하므로 이 육근 작용을 이용해서 수행을 하라는 가르침이 나중에 다시 나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능엄경에서는  부처님이 초발심때부터 비이원적인 자세로 시작해야 결국은 비이원적인 과(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능엄경 본문에서 '인지(因地)란 처음의 닦을 때의 마음을 말합니다. '과지각(果地覺)'이라는 것은 성불할 때의 마음입니다.  첫 수행 시작할 때의 발심한 마음이 차후에 성불할 때의 깨달음과 같은지 다른지를 스스로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처음 발심한 결정적 마음이 목표한 불지견(佛知見)의 마음과 일치해야 그 올바른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중생들의 마음은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분별,생멸심이기 때문에 인지(因地)와 과지(果地)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즉 생멸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마음으로 수행을 시작하면 그 결과 역시 그 생멸심 수준의 과(果)를 얻으므로  생멸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위 말하는 비유로 모래를 삶아서 맛좋은 밥을 지을려고 하는 것과 같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능엄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생멸심이란 허망한 오대(五大)의 객진번뇌(客塵煩惱)에 의지해서 반연하는 망상심(妄想心)인데, 이러한 허망한 생멸심으로 불성의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지만 얻을 수가 없고, 그저 생멸심의 허망한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사마타 법문을 통해서 생멸심이 무엇이라는 것을 배웠으므로, 생멸심을 단박에 끊고 비이원적인 불성의 정체(正體)를 붙들고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因地와 果地를 일체시키기 위해서는 생멸(生滅,이원성)의 마음을 버리고 불생멸(不生滅,비이원성)의 마음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주장하는 수행원리는  불성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과정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아니라, 본래부터 바탕에 지니고 있는 불성을 되찾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있는 순수하고 깨끗한 절대본체인 불성이 본각(本覺)이라면 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불성은 시각(始覺)이라고 합니다. 인지(因地)와 과지(果地)를 일치시킨다는 것은 사마타를 통해서 정각(正覺)을 세워서 시각(始覺)을 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시로 변하는 생멸심은 정각(正覺)을 감추는 망상(妄想)의 파도에 불과하므로 그 망상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그것을 깨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멸의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능엄경에서는 생멸심이 생기는 원인은 다음에 나올 오탁(五濁)을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간단히 말해서 생멸심으로 인(因)을 삼으면 생멸과(生滅果,이원적인 결과)를 얻게 되므로, 불생멸심(不生滅心,비이원적인 마음자세)으로 인(因)을 삼아 수행을 해야 불생멸과(不生滅果,비이원적인 결과)를 얻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데, 초발심때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서 이것을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 생멸심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이 항상 변하는 허망한 대상이고, 무엇이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인가를 관찰하는 수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부처님은 다음에 세상의 모든 현상을 관찰해 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2-1-3. 세간의 변하는 것들을 관찰해 보라.

 [본문]

[以是義故汝當照明諸器世間하라 可作之法皆從變滅이니 阿難汝觀世間

可作之法하라 誰爲不壞 然終不聞爛壞虛空이니 何以故空非可作일새

由是始終無壞滅故니라 ]

 이러한 까닭에 너는 응당 모든 중생이 의지하는 기세간(器世間)을 비추

어 보아라. 가히 만들어진 법은 다 변하여 없어질 것이다. 아난아! 네가

지금 세간의 만들어진 모든 법을 살펴볼 때에 무엇이 무너지지 않는 것

냐?

 그러나 허공이 허물어졌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허공은 본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허물어져 없어지지 않는

다.

[해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온갖 현상들을 잘 관찰하여 보면 모든 만들어진 것, 유위적인 것은 변하여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변하여 없어지는 것들, 우리 몸을 비롯해서 세상 모든 것이 변하면서 생주이멸(生住異滅)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허공이라는 것이죠. 허공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부서지지도 않는 것인데, 이것은 바로 모든 현상은 허공 안에서 생겼다가 머물렀다가 어디로가 떠나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없어지는 허망하고 실체가 없는 내용물이지만, 그것들을 말없이 감싸고 있는 허공이라는 형상없는 그릇은 무시무종(無始無終)하여 생겨나지도 않고 허물어지거나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모든 이원적 대상인 물질 및 현상과 심리작용,모든 존재물들은 생주이멸하는 허망한 것이지만, 보이지 않고 모양없는 주시자는 항상 영원하다는 것을, 세상만사를 조용히 관찰해 봄므로써, 그 대상들을 보는 여래장의 각명(覺明), 즉 견(見,주시자)은 영원한 것이 아니겠느냐?하는 원리를 비유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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