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9)

2014. 11. 20. 19:29성인들 가르침/능엄경

6. 마음이 중간에 있는 것 같다.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 문수 등 여러 법왕자와 함께 실상(實相)을 하실 때에 ‘마음은 안에도 있지 않고 또한 밖에도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만히 생각해 볼 때에 ‘몸속에 있다’고 하자니 안을 보지 못하고, ‘밖에 있다’고  하자니 서로 알지 못해야 하는데 지금 서로 잘 압니다.

 안으로 아는 바가 없으므로 ‘안에 있다’고 할 수도 없고, 몸과 마음이 서로 잘 아니 ‘밖에 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서로 잘 알고 있으면서 안으로는 보지 못하니 아마도 근진(根塵)의 중간에 있는 것 같습니다.”

<阿難白佛言호대 世尊我亦 聞佛與文殊等諸法王子 談實相時 世尊亦言

하사대 心不在內하며 亦不在外니다 如我思惟함에 內無所見하고 外不相知하니

內無知故在內不成하고 身心相知하니 在外非義 今相知故 復內無見하니

當在中間이니다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근진(根塵)의 중간이다’고 하니 중간이라고 하더라도 장소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네가 지금 너에게 묻는다. 그 중간이라 하는 것이 어디를 리키느냐?

처소(處所)가 따로 있느냐? 몸[身]에 있느냐?

<佛言汝言中間하니 中必不迷하야 非無所在리라 今汝推中하니 中何爲在 爲復 爲當在身 > 

 

몸에 있다고 할 때, 갓[邊]이면 중간이 아닐 것이요, 중간에 있다면 이는 결국 앞에말한 안에 있는 것[內在]과 같을 것이다.

 <若在身者인댄 在邊非中이요 在中同內니라 >

 

만약 그 중간(中間)이라 하는 것이 바깥에 따로 있다면 그 지점이 뚜렷이 있어 표시수가 있느냐, 표시할 수가 없느냐? 표시할 수가 없다면 아주 없는 것이요, 표시할 수 있하더라도 어디라고 고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표시하여 중간을 삼았다 하더라도 보는 바에 따라서 동(東)에서 보면 서(西)요, 남(南)에서 보면 북(北)을 이루는 것과 같으리니 표시 자가 혼란스럽고 마음도 응당 어지러울 것이다.”

<若在處者인댄 爲有所表 爲無所表 無表同無하고 表則無定하니라 何以故

人以表 表爲中時 東看則西 南觀成北인달하야 表體旣混하고 心應雜亂

하리라 >

 

아난이 말하였다. “제가 말씀드린 중간은 ‘몸 바깥에 있느냐, 몸 안에 있느냐’의 두 가지 뜻이 아니고, 부처님께서 ‘눈과 대상[色]이 인연이 되어서 안식(眼識)을 생한다’고 하심과 같이 눈은 분별이 있고 색진(色塵)은 앎이 없으니 식(識)은 그[根塵]중간에서 생기는 것이요, 바로 그곳이 마음이 있는 곳이라 여겨집니다.”

<阿難言我所說中 非此二種하니 如世尊言하사대 眼色爲緣하야 生於眼識인달

眼有分別하고 色塵無知어든 識生其中하니 則爲心在니다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마음이 근(根)과 진(塵)의 중간에 있다면 그 마음이 둘을 겸했느냐, 겸하지 아니했느냐?

<佛言汝心若在根塵之中인댄 此之心體 爲復兼二 爲不兼二 >

 

만약 마음이 근진(根塵)의 중간에 있어 이 둘을 겸했다면 사물과 마음이 서로 섞여 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사물은 마음과 같이 앎이 없어서 서로 적을 이루어 양립할 것이니 어느 곳에 중(中)을 세우겠느냐?

<若兼二者인댄 物體雜亂하리니 物非體知일새 成敵兩立어늘 云何爲中이리요 >

 

만약 둘을 겸하지 아니했다면 지(知)도 부지(不知)도 아니어서 체성(體性) 그 자체립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중간이 어떤 것이다’고 주장 할 수 있겠느냐?

<兼二不成인댄 非知不知 卽無體性이니 中何爲相이리요 >

 

그러므로 네가 말 한 ‘마음이 근진의 중간에 있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是故應知 當在中間호미 無有是處니라 >


[해설]

아난이  다시 전에 부처님께서 설하신 '마음은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씀을 예를 들어서, 마땅히 마음이 중간에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이에 부처님이 그 중간이 정확히 어디에  위치해 있는 것이냐고 추궁하고, 만약 몸 주변에 있다면 ​중간이 아닐 것이고, 만약 다른 곳에 있다면 어딘지 표시할 곳이 있어야 하는데, 표시할 곳이 있다 하더라도 그 위치가 중간으로서 바로 일정하게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떤 사람이 푯대로서 표시하여 중간이라고 삼았을 때에 동쪽에서 보면 서쪽이 될 것이고, 남쪽에서 보면 북쪽이 될 것이니, 표시자체가 이미 어지러워 의미가 없고, 마음도 역시 따라서 어지러우니 중간이란 있을 수 없다고 아난의 의견을 부정합니다.

아난은 다시 중간이란 그러한 물질적인 위치가 아니라, '눈과 색의 경계'가 연(緣)이 되어 안식(眼識)이 생기는 것과 같이, 눈은 분별심을 아는 것이 있으나  색진(色塵,물질대상)은 분별앎이라는 것이 없는 것인데, 식(識)이 그 중간에서 생기는 것이니, 그렇다면 그곳이 바로 마음이 있는 곳이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마음이 눈뿌리와 색진(色塵)의 중간에 있는 것이라면, 이러한 마음의 체(體)는 양쪽에 아울러서 있어야 되는데, 색진(色塵,물질)은 눈과는 다르게 분별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므로,눈의 분별함을 아는 성품과 물질(색진)의 분별함을 모르는 성품이 함께 존재하게 되니 서로 충돌하고 어지러워서 참마음이 될 수가 없으며, 만일  양쪽에 아우르지 않고 중간에서 작용한다면,  분별함을 아는 것도 아니고 분별함을 모르는 것도 아니어서 , 중간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중간에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부정합니다.  이렇게 아난의 여섯번째  망상인, 마음의 체(體)가  눈뿌리와  색진(대상물질)의 중간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타파해 버리십니다.

                                                                                       -무한진인-


'성인들 가르침 > 능엄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능엄경 공부(11)  (0) 2014.11.24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10)  (0) 2014.11.20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8)  (0) 2014.11.20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7)  (0) 2014.11.20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6)  (0) 2014.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