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20. 19:26ㆍ성인들 가르침/능엄경
5. 마음은 법과 어울리는 곳에 있는 것 같다
아난이 말하였다.
"제가 늘 부처님께서 사부대중(四衆)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생김으로 인하여 갖가지 법이 생기며, 법이 생김으로 인하여 갖가지 마음이 생긴다고 하심을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 생각하니 곧 생각하는 그 실체가 바로 저의 심성(心性)입니다. 어울리는 곳에 따라서 마음도 있는 것이니 역시 안과 밖과 중간 세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阿難言我常聞佛開示四衆호대 由心生故種種法生하고 由法生故種種心生하시니
我今思惟호대 卽思惟體實我心性이라 隨所合處心卽隨有하니 亦非內外中間三處니라>
[해설]
아난이 전과는 달리 새로운 관점에서 마음이 있는 장소를 말합니다. 즉 마음이 어떤 고정된 장소에 자리잡는 것이 아니라, 법이 생기는 곳에 마음도 상호작용으로 작용하므로 법과 어울리는 곳에서 마음이 생긴다고 주장하고 있읍니다. 그래서 일정한 한 곳에 마음이 있는 곳이 아니라, 안과 밖, 그리고 중간에서 법과 어울려서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제시해 봅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지금 말하기를 법이 생김으로 인하여 갖가지 마음이 생겨나서 어울리는 곳에 따라 마음도 있다고 하지만 이 마음은 본체가 없는 것이어서 어울릴 곳도 없을 것이다. 만약 본체가 없으면서도 어울릴 수 있다면 이는 십구계(十九界)가 칠진(七塵)으로 인하여 어울리는 것이니 그럴 이치가 없나니라. 만약 본체가 있다면 가령 네가 손으로 네 몸을 찌를 적에 너의 아는 마음이 다시 안에서 나오느냐 밖에서 들어오느냐? 만약 안에서 나온다면 몸 속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고 만약 밖에서 들어온다면 먼저 얼굴을 보아야 할 것이다."
<佛告阿難汝今說言호대 由法生故種種心生호대 隨所合處하야 心隨有者라하니 是心無體卽無所合이요 若無有體而能合者인댄 則十九界因七塵合이니 是義不然하니라
若有體者인댄 如汝以手自挃其體에 汝所知心爲復內出가 爲從外入가 若復內出인댄 還見身中이요
若從外來先合見面이니라 >
[해설]
아란의 이런 생각에 대하여 부처님이 옳지 않음을 밝히시는데, 마음이 실체가 있는 것이냐, 아니면 마음이 실체가 없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반박을 하십니다.
첫째, 마음이 법과 접촉하는 곳에 따라 존재한다고 했는데, 마음이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서로 어울린다는 것이 말이 안되므로, 이것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마치 19계(界)가 7진(塵)으로 인하여 합(合)한다는 말처럼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19界란, 원래 6根,6塵,6識을 합해서 18계라고 하는데, 19界라는 것은 이름만 있지 실체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역시 7진(塵)이라는 말도, 원래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여섯 뿐인데, 7塵이라는 것은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실체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마음이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어디에서 마음이 나와서 법과 합하는 가를 물으십니다. 즉" 만약 실체가 있다면, 네가 손으로 네 몸을 찌를 적에 너의 아는 마음이 다시 안에서 나오느냐 밖에서 들어오느냐? 만약 안에서 나온다면 몸 속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고, 만약 밖에서 들어온다면 먼저 얼굴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깐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몸 속을 보지도 못하니깐 안에서 나왔다고 할 수도 없고, 밖에서 나왔다고 할 수도 없으니깐, 실체가 있다고 하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이 실체가 없는데 어디서 와서 법과 어울리겠느냐 그 말씀입니다.
아난이 말하였다. “보는 것은 눈이요, 마음은 알기만 하는 것이니 반드시 보아야 한다
고 하심은 옳지 않습니다.”
<阿難言見是其眼이요 心知非眼이니 爲見非義니이다 >
[해설]
마음이 몸안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지금 몸 가운데를 보아야 겠다고 하니 마음이 뭐 봅니까? 눈이 보는 것이지. 마음이 여기 있는데 뭘 봅니까? 이런 말입니다. 그러니깐 부처님이 여기에 대답을 하십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만약 눈이 능히 본다면 네가 방 안에 있을 때에 문이 능히 보느냐?
또 이미 죽은 사람도 그 시체가 아직 식기 전에 눈이 있으니 응당 볼 수 있어야 하며,
만약 본다면 어떻게 죽은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佛言若眼能見이면 汝在室中하야 門能見不아 則諸已死도 尙有眼存할새 應皆見物
이며 若見物者云何名死리요 >
[해설]
부처님 말씀이 '본다는 것이 방안에 사람이 있어야 문을 통해서 밖의 것을 보지, 사람은 없이 문만이 그 물건을 보지 못한다. 네 눈이 있었기 때문에 문을 통해서 밖의 것을 보는 것이다. 그러니 눈은 문과 같고 마음은 사람과 같으니까, 사람은 없이 문만이 능히 볼 수 없으니깐, 눈만 있고 마음이 없으면 보지 못한다. 그러니까 마음이 있어야 본다, '그말씀입니다.
아난의 말은 마음은 보는 것이 아니고, 알기만 하는 거라니깐, 부처님은 마음은 알기도 하고 보기도 한다, 마음이 없이 눈만이 어떻게 보느냐, 그러니깐 이것은 마음이 없이 눈만이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아란의 말과 같이 설사 눈이 본다고 하면,
죽은 사람도 눈이 있는데, 방금 죽은 사람의 눈은 망가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나 오래되면 썪겠죠. 마음이 없이 눈만이 본다고 하면, 죽은 사람도 마음은 없지만, 눈은 있으니, 그 눈을 가지고 물건을 보아야 되지 않겠느냐, 이 말씀입니다.
아난아! 너의 느끼고 알고 하는 마음이 반드시 체(體)가 있다면 그 체가 하나냐, 여럿이냐? 지금 너의 몸에 있어서 온 몸에 두루한 것이냐, 두루하지 않는 것이냐?
<阿難又汝覺了能知之心이 若必有體인댄 爲復一體아 爲有多體아 今在汝身하야 爲復徧體아 >
[해설]
이 마음에 체(體)가 있다고 한다면, 체가 하나냐는 이말은 온 몸에 마음이 하나뿐이겠느냐,라는 말입니다. 일체(一體)라는 말은 사지(四肢)전체에 마음이 하나뿐이라는 말입니다.
일체라는 말과 편체(遍體)라는 말이 거의 같지만 일체라고 할 때는 온 몸 사지가 다 마음의 체가 하나라는 말이고, 편체란 마음이 온 사지에 두루해 있느냐는 말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겠지만, 일체다, 다체다, 편체다, 불편체다 할때는 그렇게 차별을 내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만일 마음에 체가 있다면 , 하나라든지, 여럿이라든지, 온몸에 두루했다던지, 한쪽에만 있다던지, 이래야 된다는 것이죠. 그렇게 네 가지를 물어놓고 낱낱이 일체도 아니고, 다체도 아니고, 편체도, 불편체도 아니라는 말을 합니다.
만약 하나의 체라면 네가 손으로 한쪽 팔을 찌를 때에 사지(四肢)가 응당 모두 아픔을 깨달아야 할 것이며, 만약 한 곳을 찔렀는데 사지가 다 깨달아 아프다면 찌르는 곳[所在]이 응당 따로 없어야 할 것이요, 사지가 다 깨달아 아픈데도 만약 ‘찌르는 곳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너의 하나의 체[一體]라는 말은 저절로 성립되지 못할 것이다.
<若一體者인댄 卽汝以手로 挃一支時에 四支應覺할새 若咸覺者인댄 挃應無在로
若挃有所인댄 則汝一體가 自不能成하리라 >
[해설]
손을 가지고 팔 하나를 찌를 때에 사지가 한꺼번에 다 깨달아야 되는데, 즉 마음의 체가 하나이니까 깨달으면 다 알지, 왼팔을 찌를 때에 왼팔에서만 알고, 다리에서나 오른 쪽 팔에서는 모른다고 하면, 아는 체도 있고 모르는 체도 있으니, 일체라고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일체라고 한다면 한군데를 찌를 때에 사지가 한꺼번에 깨달아야 할 텐데, 지금의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니 일체라는 말이 안맞는다는 말입니다.
만약 다체(多體)라면 다인(多人)을 이룰 것이니 어느 것으로 자기를 삼을 것인가?
만약 체(體)가 온 몸에 두루 퍼져 있다면 앞에서와 같이 찌르는 곳은 하나일지라도
아프기는 응당 사지(四肢)가 다 아파야 할 것이다.
<若多體者인댄 則成多人이니 何體爲汝아 若徧體者인댄 同前所挃이요 >
[해설]
사람 하나에 마음 하나씩이니깐 마음의 체가 여럿이면 곧 여러 사람이어야 될 테니 다체(多體)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온몸에 두루해 있다면 어딜 찌르든 마음이 두루해 있으니깐 한번 찌를 때 온몸이 다 알아야 될 것입니다. 즉 편체(遍體)라는 말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체가 온 몸에 두루한 것이 아니라면 머리가 부딪치고 또한 발도 다쳤을 때에
머리는 아파도 발은 몰라야 하거늘, 지금 우리는 그렇지 아니하니
<若不徧者인댄 當汝觸頭亦觸其足하면 頭有所覺足應無知어늘 今汝不然하니 >
[해설]
마음이 우리 몸에 있는데는 있고 없는데는 없다하여 두루해 있지 않았다고 한다면 머리를 만지고 발도 만져 보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두루치 않다면 어느 한 곳에 있을 테니까.
머리에만 있다고 한다면 , 머리는 깨닫는 바가 있지만, 발은 알지 못할 테니 머리에만 있고, 발에는 없어야 불편(不遍)이라고 할텐데, 머리도 만지고 발도 만지면 머리도 알고 발도 알아서, 열군데 만지면 열군데 다 아는 것이니, 불편(不遍)이라는 말은 안맞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물건을 생각할 때에 물건과 마음이 합(合)하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것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일체냐, 다체냐,편체냐, 불편체냐가 다 성립되지 않으니 , 그 마음의 체(體)가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말 한 ‘어울리는 곳을 따라 마음도 있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是故應知隨所合處하야 心則隨有함은 無有是處니라 >
[해설]
따라서 아란이 말한 법과 어울리는 곳에 마음도 따라서 생긴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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