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20. 19:31ㆍ성인들 가르침/능엄경
7. 일체 집착하지 않는 것이 마음인 것 같다.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어! 저는 예전에 부처님께서 대목건련과 수보리와 부루나와 사리불 등 사대제자와 함께 법륜을 굴리실 때에 항상 ‘알고 분별하는 심성(心性)이 이미 안에도 있지 않고, 또한 밖에도 있지 않으며, 중간에도 있지 아니하여 어디에도 있는 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는 일체에 집착하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삼으신 것이니 저의 집착함이 없는 이것으로 마음을 삼으면 어떻겠습니까?”
<阿難白佛言世尊我昔 見佛與大目連須菩提 富樓那舍利弗 四大弟子로 共轉法輪하야
常言覺知分別心性이 旣不在內하고 亦不在外하며 不在中間하여 俱無所在라하니 一切無著名之爲心이라 則我無著으로 名爲心不잇가 >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알고 분별하는 심성(心性)이 어디에도 있는 바가 없다’고 말하니 세간과 허공 가운데 물에 있거나 육지에 있거나 날아다니는 등, 모든 물상(物象)을 온갖 것[一切]이라 부른다. 네가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대상이 있는데 다만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대상이 없는데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대상이 없는데도 집착 운운(云云)하는 것은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은데 어떻게 집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며, ‘대상이 있다’고 분별하면서 ‘집착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이미 집착한 것이니 ‘집착이 없다’고 부를 수 없다.
<佛告阿難하사대 汝言覺知分別心性이 俱無在者라하니 世間虛空에 水陸飛行하는 諸所物象名爲一切와 汝不在者는 爲在爲無아 無則同於龜毛兔角어늘 云何不著이며 有不著者는 不可名爲니라 >
대상이 없으면 아주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아니라면 곧 대상이 있는 것이니 대상이 있는 줄 알았다면 곧 마음이 있는 것이다. 어찌 집착이 없다[無着]고 할 수 있겠느냐?
<無相則無요 非無則相이라 相有則在이니 云何無著이리요 >
그러므로 네가 말한 ‘일체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마음이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是故應知 一切無著名覺知心이라함은 無有是處니라 >
[해설]
아난은 전에 부처님께서 "깨닫고 알고 분별하는 마음'의 본성은 이미 몸 안에 있는 것도 아니며, 몸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어느 곳에도 있는 데가 없어서 일체에 집착이 없는 것을 마음으로 삼는다"고 하신 말씀을 들어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는 것을 마음이라고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부처님에게 아룁니다.
부처님은 일체 현상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 한 말이냐, 아니면 없는 것에 대한 것이냐고 되묻고,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집착이라면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이 본래부터 없는 것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고, 만일 존재하는 것이 대한 것이라면 이미 '있다'는 그 자체를 분별한 것이므로, 그 "있음"에 집착한 상태이므로 집착하지 않는다는 이름을 붙힐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깨닫지 못한 범인은 "있다"는 현상을 분별하는 마음(妄心)이 작용하고 있으므로, 그 분별심 자체가 바로 집착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난이 주장하는 '일체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마음이다"라는 말은 있을 수가 없다고, 부처님이 아난의 마음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일곱번째로 깨드리십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부처님은 아난과의 질의 응답을 통하여 참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아난의 생각을 추궁해 갑니다.
아난은 대답을 통해서 ①몸 안에 있다. ② 몸 밖에 있다. ③ 눈뿌리에 있다. ④ 몸의 안과 밖에 있다. ⑤ 몸안과 밖, 중간 세곳에 있다. ⑥ 중간에 있다. ⑦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 마음인 것 같다, 등 7가지로 말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 대답을 모두 부정하십니다. 부처님은 참마음의 소재를 묻는 것인데, 아난은 망심(妄心)을 진심(眞心)이라고 잘못알고 대답하니 부처님이 부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 부분을 후세 능엄경 주석가들은 소위 칠처징심(七處徵心) 또는 칠번 파심(七番破心)이라고 부릅니다.
* 부처님께서 칠번파심(七番破心)한 이유
-그릇된 망상을 깨뜨리기 위한 것임.
처음에 아난은 '수숭하고 청정하고 묘하고 밝은 부처님의 외모'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부처님을 따라와 출가를 하였다고 말했읍니다.
이에 부처님이 그 마음이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물었고, 아난이 이에 대한 답을 일곱번 했으나 모두 부처님에게 깨부숨을 당합니다.
그런데 애초에 아난이 부처님에게 삼관법문(三關法門, 사마타,삼마,선나)가 어떤 것인지 물었는데, 부처님은 그에 대한 답변은 안해 주시고, 우선적으로 아난에게 마음이 어느 곳에 있는지 따져 물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먼저 참마음이란 무엇인가를 설하시지 않고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물었을까요?
아난의 답을 일곱번 깨뜨리기 이전에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아난아! 너희들은 응당 ‘일체 중생이 시작 없는 옛날부터 나고 죽음을 계속하는 것은 다 항상한 참마음[常住眞心]의 청정하고 밝은 그 본성의 체[性淨明體]를 알지 못하고, 가지가지 망상(妄想)을 사용하는 까닭이니 이 망상이 본래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 생사에 윤회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일반 중생들은 식온(識蘊)자체에서 일어난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육신과 그에 따른 몸- 마음의 분별심에 집착할 뿐, 몸-마음이 일어나기 이전 자기의 참모습인 무한하고 모양없는 참마음을 모릅니다. 여기에서 아난은 은연 중에 마음이 육신 안에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집착하였읍니다. 아난은 몸의 여러기관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분별망상을 진실한 참마음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 몸 마음의 분별심으로 부처님의 수숭한 외모의 모습만을 좋아하고 따랐지, 부처님이 지니고 있는 본래 자성자리, 아란 자기의 본래 참마음의 공적한 이치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네가 말한 것과 같아서 참으로 사랑하고 좋아한 것은 마음과 눈으로 인한 것이라면 만약 마음과 눈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면 번뇌를 항복받을 수 없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국왕이 적으로부터 침략을 받고서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討伐)할 적에 그 군대가 마땅히 적병이 있는 곳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과 같나니라. 너로 하여금 생사의 세계를 유전케 하는 것은 마음과 눈의 허물이니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는데 마음과 눈이 어느 곳에 있는냐?"
위에서 말하는 마음이란 참마음이 아니라 망상(妄想,분별식)을 말합니다.
중생은 망상이라는 적에게 점령당하여 생사(生死)를 윤회하고 있습니다. 이 망상,즉 몸-마음으로 일어난 분별심 망상을 쳐부수기 위해서는 먼저 망상이 있는 곳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허망한 망상을 돌이켜 참마음으로 되돌아 가려면 반드시 우선적으로 오온(五蘊)에 대한 잘못된 아집(我執)을 타파해야 한다고 합니다. 뿌리가 깊게 박힌 허망한 아집은 수행을 한다해도 능엄삼관대정(楞嚴三觀大定)의 삼매가 아니면 타파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부처님은 능엄삼관대삼매를 가르쳐 주기 전에, 그보다 앞서서 우선적으로 마음의 소재를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아난은 지금까지 망상의 분별심을 실재의 참마음으로 잘못 알고 그것에 집착하고 있었음이 문답에서 드러납니다. 그래서 아난으로 하여금 그 망심심이 참마음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치게 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7번이나 아난의 대답을 반복해서 부정하신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참마음이라면 처소(處所)가 있어야 할 텐데, 일곱 군데 다 있지 않으니 그럼 어떻게 된 것이냐? 이것이 궁금한 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부처님의 본뜻은 마음이 있는 곳(처소)이 없으니, 있는 곳이 없으면 그것은 허망한 것이고, 참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일러주기 위해서 말씀하셨는데, 실지로 아난(우리 중생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은 끝까지 마음이 있는 장소가 어딘가에는 있긴 있을 텐데 아마 내가 모르고 있나 보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부처님이 지금 여기서 그 처소에 마음이 없다는 말씀만 하셨지, 어디에 마음이 있다는 말씀은 안하셨죠.
왜냐하면 우리가 분별하는 이 마음 자체가 허망한 것이니, 처소가 있을 수 없고, 실재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眞心)이라야 처소가 있다는 진리를 여기서 말없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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