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10. 11:03ㆍ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원문]
曲則全
곡즉전
枉則直 窪則盈 敝則新 少則得 多則惑
왕즉직 와즉영 폐즉신 소즉득 다즉혹
是以聖人抱一 爲天下式
시이성인포일 위천하식
不自見 故明
부자견 호명
不自是 故彰
부자시 고창
不自伐 故有功
부자벌 고유공
不自矜 故長
부자긍 고장
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부유부쟁 고천하막능여지쟁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고지소위곡즉전자 기허언재
誠全而歸之
성전이귀지
[해석]
굽히는 것이 곧 온전하게 보존하는 것이오.
구부러진 것은 곧 똑바로 펴지게 되고,
움푹 패인 곳은 곧 채워지게 되며,
낡은 것은 곧 새롭게 될수 있고,
적게 가지고 있으면 곧 더 얻게되며
많이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미혹되는 것이오.
그러므로 성인은 道 하나만을 품는 것으로써
천하를 대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외다.
성인은
스스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밝게 빛나며,
스스로 옳다고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두드러져 나타나고,
스스로 과시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功이 드러나게 되며.
스스로 자만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오래 지속될 수가 있소.
성인에겐 오직 다툼이란 것이 없으므로,
이 세상에서 다툴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소이다.
옛부터 전해내려오는 "굽혀지면 온전하게 보존된다"는 속담이
어찌 빈 말일 수가 있겠소?
진실로 온전한 것은 道로 귀의하는 것이외다.
[해설]
이번 22장은 겸손과 자기를 낮추는 도인의 면모를 묘사한 내용입니다.
曲則全(굽어지면 온전히 보존될수 있다)이라는 옛속담을 중심주제로 해서
도인이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도에 머물러 사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읍니다.
이장은 곽점본에는 빠져 있으며, 백서본에서부터 나타난 내용입니다.
도덕경의 여러장에서 주장하는 일반적인 주제이고,
글자나 문장자체가 특이하게 어려운 곳이 없기 때문에
여러 주석서나 해석서들의 내용도 거의 비슷하게 주석되어 있읍니다.
굽어지든,펴지든,텅 비든 채워지든,얻든,잃든 간에
모든 현상적인 모양은 일정하지 않고 변화되는 것으로 무상할 뿐,
도인은 이러한 변화에 얽매이지 않는 일원적인 道만을 품고 있으며,
그 道안에서만 세상을 내다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功이 있어도 자랑하지 않고,
자기견해만이 옳다고 주장하지도 않고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자만하지도 않지만,
저절로 도인으로서 드러나고, 그 위대한 도의 완성이 세상에 알려지며,
도인의 모든 말이 진리자체가 되며, 그러면서도 숨어서 자기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죠.
도인에게는 대상이 없이 모든 것이 자기자신이므로 다툼과 갈등이 없고,
세상에 나와서도 다툴 수 있는 대상조차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옛말에 <굽혀지면 온전하게 보존될 수가 있다>는 내용은 바로
이러한 도인의 자세라고 말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자기를 온전하게 영원히 보존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道를 추구하여 도의 본체에 귀의하는 것일 뿐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읍니다.
曲則全; 굽히는 것이 곧 온전하게 보존하는 것이다.
曲; 굽다, 則; 곧,즉,~면 즉, 全; 온전하다,전부.
이曲則全이라는 말은 구부러진 나무가 오랫동안 온전하게 보존된다는 옛 속담을 예를 든 것 같읍니다.
이문장의 맨밑에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이라는 문장으로 보아서 백서본 형성시기 이전에
"구부러진 나무는 온전하게 보존될 수가 있다"는 속담이나 세상에 보편적으로 돌고 있는 이와 유사한 교훈이 있었던 것 같읍니다.
즉, 나무가 구부러져서 재목에는 쓸모가 없다면, 사람들이 쓸모없는 나무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베어가지도 않기 때문에 나무자체로써는 오랫동안 생명을 온전하게 보전할 수가 있는 것이죠.
장자의 내편의 "인간세" 편에도 石이라는 목수가 어느사당 앞에 있는 상수리거목이 있지만, 재목으로는 쓸모가 없었서 오래동안 그대로 사당 안에서 온전하게 살이있게 되었다는 대목이 나오죠.
굽힌다,는 의미는 에고적 자기를 낮춘다는 의미입니다.
에고적인 "나"를 낮추고, 드러나게 하지 않음으로써 참나인 도를 온전하게 유지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면에서 겸손하고,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공을 세워도 드러나게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기서는 도인의 기본적인 성향이지만, 보통 속세인의 처세술의 방편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고대 兵家에서도 가장 독특한 병법으로 응용되고 있는 兵法이며,
난세(難世)에 유일하게 생명을 보존 할 수 있는 처세술의 비법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주제입니다.
이 曲則全이라는 말은 구부러져 쓸모없이 방치된 나무처럼
세간적인 측면에서 쓸모없음같이 보이는 도인의 무위적인 도는 온전하게 보존된다는 비유적 측면도 있는 것 같읍니다.
이 曲則全이란 주제가 이 22장의 기본주제이며,
그 아래문장인, 같은 ㅇ則ㅇ.으로 3자씩 구성된 아래 다섯개 문장들은 위의 고칙전과는 의미적으로 약간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문장입니다.
曲則全이란 일원적인 도의 삶으로 자신을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다는 [恒常함]을 의미하지만,
밑에 다섯개의 ㅇ則ㅇ 형식의 문장들은 나타나 보이는 이 현상세계에서의 현상들은 일시적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고,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다른 형태로 변화될 수 있다는 [無常함]에 대하여 묘사한 문장입니다.
枉則直 窪則盈 敝則新 少則得 多則惑
枉;굽다,굽히다. 直;곧다,바르다. 窪;웅덩이,우묵하다. 盈;차다,가득하다. 敝;해지다,깨지다.
新;새롭다. 得, 얻는다. 惑;미혹하다.
枉則直; 구부러진 것은 곧 똑바로 펴지게 된다.
굽어진 것과 곧게 펴진다는 것은 이원성에서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굽어진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곧 똑바로 펴질 수가 있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곧은 것은 굽어질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도의 측면에서는
같은 하나이지만, 현상화 된 상대성의 측면에서 다르게 보이는 것이죠.
그러나 굽음과 곧음은 각각 하나의 변화의 모양일 뿐이라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여기서 曲則全과 枉則直의 차이점을 살펴보자면,
曲則全은 옛속담에서 "구부러진 나무는 (재목으로 쓸모가 없어서) 오래 보존된다"는 뜻이며,
枉則直은 굽어진 모양은 언제가는 곧게 펴지므로, 현상적인 모양은 동일한 하나(도)상태 안에서의 변화일 뿐이라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窪則盈; 움푹 패인 웅덩이는 (물이) 곧 채워지게 된다.
우묵하게 패인 빈 웅덩이는 언제든지 물이 채워질 수가 있다는 것이죠.
이것도 이원적인 겉 모양은 언제든지 상대적인 다른 형태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묘사한 것이죠.
敝則新;낡은 것은 곧 새로워진다.
낡은 것은 이미 변화된 상태이지만 다시 새롭게 변할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少則得; 적게 가지고 있으면 곧 더 얻게된다.
적은 것은 변하여 많아지므로 모자른 것은 얻게 된다는 의미죠.
多則惑; 많이 가지고 있으면 곧 미혹된다.
지나치게 과다한 소유는 그것에 대한 집착이 생겨서 마음을 흐리게 한다는 것이죠.
위의 다섯가지 문장은 한가지 상태가 변하여 다른 상태로 된다는 이원화의 일시적인 변화특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예를 든 것 같읍니다.
한가지 형태나 상태는 그것이 그대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과정 중의 한 양태라는 의미죠.
따라서 굽은 것과 곧은 것, 패인것과 채워진 것,낡은 것과 새로운 것. 모자른 것과 얻는 것. 많은 것과 미혹되는 것.-이렇게 일시적 형태는 항상 그 반대형태로 변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다섯가지 문장은 바로 다음 문장인 "성인은 하나(도)를 품는다"라는 문장을 사전에 비교서술하기 위해서 상대성의 현상적 모양의 변화를 예를 들어 미리 제시해 논 것입니다.
즉, 겉으로 나타난 현상들은 이렇게 변함으로 도인은 항상 변함없는 하나인 도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죠.
대부분의 주석서와 해석서들은 曲則全과 그 밑의 5개의 ㅇ則ㅇ를 동일한 의미로써 일렬로 연속나열해서 주석과 해석들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해석하면 이22장의 주제인 <曲則全>의 의미가 명백하게 전달되지가 않는 것이죠.
是以聖人抱一 爲天下式
是以;이때문에,그러므로. 抱;안다,품다. 式; 법,제도,모범
是以聖人抱一; 그러므로 성인은 하나(도)를 품으므로
爲天下式 ; 천하를 대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위에서 예를 든 5가지의 현상으로 나타난 모양들처럼 변화하는 이원성에서 벗어나서 도인은 변함없는 전체성으로 오직 하나인 도의 본체 속에 있다는 것이죠.
"하나를 품는다"는 뜻은 도의 본체와 하나가 되어 전체성으로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인은 전체가 하나인 도라는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나가는 기본법도로 정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세상은 여러다양한 사람과 수많은 사물의 경계가 복잡다단하지만
오직 전체가 동일한 하나라는 도의 관점에서 세상을 대한다는 말씀입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모든 나타난 현상세계는 모두가 의식 안에서의 일시적인 움직임들 뿐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그나타난 의식의 다양한 변상들을 보고 있는 주시자인 참나(道)는 모든 현상세계의 보이지 않는 이면(裏面)에서 밖으로는 나타나지 않은 채,
내면 속에서 오직 지켜 볼 뿐이라는 것이죠.
不自見 故明
見;보다,보이다,나타나다,드러나다. 明;밝다,밝히다, 높히다. 故;까닭,연유,
스스로를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므로 (오히려) 그 존재가 더 밝게 빛난다.
자기의 존재를 억지로 나타내 보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밝게 드러나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첫문장인 곡칙전에서, 꼬부라진 고목나무가 저절로 재목으로써의 쓸모없음이 되었지만, 오랜세월 거목으로 자라서 사람들이 신령스러운 신처럼 고목나무를 공경하고 우러러 보는 것과 비슷한 의미죠.
不自是 故彰
是;옳다,바르다. 彰; 드러나다,밝다.
스스로를 옳다고 주장하지 않음으로 (오히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스스로 자기 견해가 바르다고 내세우지 않음으로 그의 견해가 오히려 더 드러난다는 의미죠.
이문장도 곡칙전에서, 번듯하지 못하고 꼬부져서 재목감으로는 쓸모없는 고목나무이지만,자기 생명을 지속시키며, 살아있는 나무로써 무성한 가지와 뿌리를 왕성하게 펼치며 살고있는 현상에 관련하여 비유한 것입니다.
자기견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바람을 일으켜서 물결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죠.
그냥 잔잔한 물결자체가 진리 그자체인데, 그 고요함을 주장하기 위해서 다시 거친 물결을 일으켜 보아야 원래진리인 물결이 없는 고요함을 표현 할 수는 없죠.
침묵이 도와 진리에 대한 가장 가까운 표현인데, 반면에 이 현상세계에서는 바탕인 침묵자체는 무시하고 오로지 말과 개념과 겉으로 드러나 나타난 현상만이 관심거리가 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체에 두루 펼쳐져 있는 것은 나타나지 않은 오직 비 현상적인 道, 眞理 밖에는 없죠.
不自伐 故有功
伐;자랑하다,치다,베다. 功; 공적,보람,공
스스로 (功을)과시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功積이 드러난다.
자기功을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기 때문에 그 功의 가치가 더 드러나 보인다는 것이죠.
숨은 자선가의 미덕이 더욱 값어치 있는 것이죠.
남에게 자선을 베풀되 베푼다는 생각조차 없다면 진정한 자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남에게 자선과 봉사를 하고는 그것을 선전하거나, 다른 측면에서 자신의 이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자선행위를 한다면, 이것은 진정한 자선이라고 말할 수가 없고, 자기 피알이나 오히려 자선을 미끼로 이득을 취하려는 비도덕성 이기주의라고 볼 수 밖에 없읍니다.
이문장도 역시 맨 앞의 곡칙전, 꼬부라져서 재목으로 쓸모없는 나무가 온전하다,는 속담의 뜻을 보충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不自矜 故長
矜; 자랑하다. 자만하다.아끼다.長;오래간다.
스스로를 자만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 더 오래 지속될 수가 있다.
矜자는 자랑한다,라는 뜻이 있지만, 바로 위의 문장인 不自伐,도 자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이문장에서는 '자만하다'라는 뜻을 선택해 보았읍니다.
이것은 자기존재,사사로운 자아,소유나 功에 대하여 무관심하기 때문에 오히려 참자신을 오래 보존할 수가 있다는 것이죠.
이문장도 역시 맨 위의 곡칙전의 의미에 맞춘 말로써, 꼬부라져서 쓸모없는 고목나무가 오래 간다는 비유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夫唯; 오직, 대저, 爭; 다투다. 莫; 없다.
오직 다투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서 다툴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성인은 자신을 일부로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스스로를 옳다고 주장하지도 않으며,자기공을 자랑하지도 않고, 자만감도 없으므로 다른 것과 다툴 일이 없다는 것이죠.
따라서 세상에 다툼을 유발할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표현입니다.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豈: 어찌, 虛言; 빈말
옛부터 전해내려오는 "굽히는 것이 곧 온전하게 보존되는 것이다"는 속담이
어찌 빈말이겠는가?
여기서 이 22장의 주제가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속담인 "曲則全"을 주제로 도를 비유해서 말한 내용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읍니다.
굽힌다(曲),라는 것은 에고적 자아를 숙인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에고적인 "나"가 사라지면 바로 그상태가 "도"의 경지죠.
육체가 "나"라고 여기는 자기 동일시가 사라지는 것이 에고적 나를 굽히는 것이며, 이 육체동일시로부터 벗어난 상태가 바로 도, 참나, 깨달음이라는 것입니다.
誠全而歸之
誠;정성,진실 참된. 歸; 돌아오다.귀의하다.
진실로 온전하다는 것은 道로 돌아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완전하다는 것은 오로지 하나일 뿐인 道가 되는 것일 뿐이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之는 지시대명사 "이것"의 뜻이며, "之"란 곧 道를 말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완전한 존재가 되려면 도를 추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설 연휴를 정다운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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