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10. 11:00ㆍ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원문]
孔德之容 惟道是從
공덕지용 유도시종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
도지위물 유황유홀 홀혜황혜 기중유상 황혜홀혜 기중유물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요혜명혜 기중유정 기정심진 기중유신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자고급금 기명불거 이열중보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
오하이지중보지상재 이차
[해석]
미세한 중심의식이 되어서,
오로지 道만을 바르게 추구해야만 되는데,
道로부터 비쳐져 나타나는 것(의식)들은
오직 어슴푸레하고 모호할 뿐으로 분명치 않아서 믿을 수가 없소.
어슴푸레하고 모호한 그 안에
어떤 모양들이 그려져 있고,
모호하고 어슴프레한 그 안에
어떤 물체들이 비쳐져 보이는 것이외다.
(그러나)
그윽하고 어두운 내면 속 깊은 곳엔
변하지 않는 순수한 바탕이 있는데,
이 변함없는 순수한 바탕이 바로 참된 道이며
그것은 명확하므로 믿을 수가 있는 것이외다.
옛부터 지금까지 그 이름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그것이 만물의 근원(의식)을 거느리며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오.
내가 어떻게 만물의 근원이 그러한 모습인지 알겠소?
바로 이 도의 지켜보는 작용으로 인해서 아는 것이외다.
[해설]
21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구도자가 도를 추구함에 있어서, 의식을 집중하여 미세한 촛점의식이 되어 오직 도의 본체만를 향해서만 탐구해야 되므로,
의식상의 변상인 체험이나 신비경험등을 믿지 말고 오로지 내면 속 깊히 들어가서 한결같이 존재하는 도의 본체에 안주하라는 충고입니다.
또한 도의 본체가 만물을 현시하는 의식을 거느리며 지켜 보고 있듯이,
도에 대한 깨달음도 바로 도의 주시작용으로 인하여 알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孔德之容 惟道是從;
미세한 중심의식이 되어 오로지 도만을 바르게 쫓아가야 하는데,
孔;구멍,매우,심히,비다,깊다. 德; 크다,덕, 의식, 容;얼굴,모습. 惟; 오직,생각하다.
是;이,이것,바르게하다.옳바르게하다. 從;쫏다,따르다.
孔德에서 孔은 구멍이라는 의미이고, 德이란 道의 본체에서 나온 의식을 말합니다.
따라서 孔德이라는 의미는 작은 구멍이나 點과 같이 한군데로 의식의 주의 촛점이 집중된 단일한 중심 의식을 말하는 것이죠.
이렇게 한곳에만 집중된 단일 의식을 아주 미세한 구멍같은 의식이라고 해서
孔德(미세한 구멍의식)이라고 표현한 것 같읍니다.
도 수행자가 조용하게 자기 내면을 향해 집중하고 있으면 처음에는 온갖 망상이 마음 속에서 흐르지만, 점차로 내면 속으로 깊숙히 들어 감에 따라서 마음의 흐름이 고요해지고, 주의가 한곳에 집중되어, 외부의 모든 경계조차 사라진 무경계상태가 무한하게 펼쳐지는 空의식상태가 되는데,
이 空의식을 그대로 주시하며 집중하고 있으면 점차로 앎의식이 사라지면서 암흑의 동굴속에서 꼼짝 못하고 아무 생각도 할 수없는 無知상태가 옵니다.
이때는 마치 거대한 바위 한가운데 박혀있는 수정알처럼, 생각도 할 수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인데,이경우가 바로 의식의 중심 촛점(미세한 의식의 구멍) 속에 있는 공덕의 상태(孔德之容)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 보면 영화 상영시 영사기에서 필림을 통한 그림빛줄기가 스크린에 넓게 펼쳐져서 활동사진을 보여주지만, 그 스크린에 넓게 펴진 빛줄기들을 빛이 나오는 영사기 쪽으로 따라가 보면, 결국 영사기 렌즈 이전에서 한줄기 빛으로 합쳐지는 것처럼, 넓게 펼쳐졌던 의식의 주의가 한점으로 모아져서 한줄기 의식빛으로 집중된 상태를 孔德(구멍의식)으로 표현한 것 같읍니다.
수행자로써는 상당히 깊은 경지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지만, 아직 의식인 "나"라는 정체성은 벗어나지 못한 상태죠.
이상태는 존재핵점에 가까이 접근된 點의식상태 또는 미세한 단일의식상태에 있읍니다.
"나"라는 의식이 사라지기 직전인 의식의 생성초기상태에 접근된 상태입니다.
孔德之容이란 이렇게 미세하게 작은 촛점으로 집중된 의식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죠.
여기서 容자는 의식의 미세한 형태 또는 그런 모양으로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惟道是從; 오로지 이 道만을 바르게 쫏아가 보니,
그래서 孔德之容 惟道是從-을 연결해서 문장을 이어보면,
-미세한 중심의식이 되어 오로지 도만을 바르게 쫏아가 보니,-
이것은 수행자가 이미 아주 깊은 수행경지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보통 개인의식을 넘어서서 전체의식과 하나가 되어, 그 전체의식이 한촛점으로 응집된 중심의식상태가 바로 孔德이라는 존재의식상태를 말합니다.
오로지 道만을 쫏아간다는 것은, 이수준에서는 순수하게 집중된 중심의식상태에서 그대로 있으면서 주시상태로 가만히 있는 것이며, 어떤 탐색행위나 심상이미지를 쫏아서 무엇인가를 찾는 행위를 의도적으로 하는 수준은 넘어선 상태입니다.
만일 이 수준에서 구도자가 무엇인가 행위를 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한다면 에고적인 "나"를 더욱 강화하여, 있는 그대로의 무위적인 절대 본체에 도달할 기회를 스스로 잃어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무엇인가 하고자하는 의지나 노력"은 개인적인 에고의 의지나 욕망이기 때문이죠.
도의 본체인 절대 진아는 무한우주공간처럼 항상 지금 여기 스스로 있는 것이고, 그것이 저절로 드러나게끔 여유있는 기회를 열어 주려면 마음의 움직임을 그쳐야 무한한 우주공간을 향한 틈새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의식이 항상 깨어 있어서 그 무한한 공간과 통하는 작은 틈새가 어떤 기회에 벌어지자마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틈새를 통해서 묶여 있던 의식이 작은 틈새로 날아가 무한우주공간으로 비상하는 것이죠.
마치 무한한 하늘을 날고 싶었던 작은 파랑새가 새장안에 묶여 있다가 새장의 문에 작은 틈새를 발견하자마자 잽싸게 그 틈새로 탈출하여 자유롭게 창공으로 비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한 상시 준비태세가 바로 항상 내면을 향해서 자신을 자각하고 있는 평상시 깨어있음이 스탠바이 상태로 항시 준비되고 있어야 되겠지요.
道之爲物 惟恍惟惚 ;
道로부터 비쳐져 나타나는 것(의식)들은
오직 어슴푸레하고 모호할 뿐으로 분명치 않아서 믿을 수가 없소.
爲;하다,만들다,위하다,되다. 物;물건,모양,형상,일,것,살피다. 惟; 오직,생각하다.
恍;황홀하다,어슴프레하다.惚; 황홀하다,흐릿하다.
道之爲物; 道로부터 나오는 것들(의식의 변상들).
爲物은 만들어져 나오는 것, 또는 어떤 모양이나 형상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의식의 변상들을 말합니다.
惟恍惟惚; 오직 어슴프레하고 오직 모호 할 뿐으로(분명치 않아 믿을 수가 없다)
즉 항상 부질없이 수시로 변하고,있다가 없어지고, 고정된 정체성이 없어서 애매모호하고 헷갈리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惟恍은 너무나 찬란해서 안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惟惚은 너무나 컴컴해서 무엇인지 모르기도 하고,
이 두단어를 연결해서 헷깔리고 애매모호하다는 표현을 한 것이죠.
恍이란 어슴프레하고 미묘해서 알수 없는 모양을 표현한 것이고,
惚도 역시 흐릿해서 확실하게 알수 없는 모양을 표현한 것입니다.
다른 번역서나 주석서들을 보니 이문장을 도자체가 있는 듯 없는 듯 황홀하다는 의미로 풀이해서 쓴 책이 많았읍니다.
그러나 이상태는 도의 직접적인 상태가 아니라,
도에서 떨어져 나온 의식의 변상들, 체험이나 심상등이 허황된 것이라는 것을 묘사하는 문장입니다.
惚兮恍兮 其中有象;
어슴푸레하고 모호한 그(의식) 안에 온갖 모양들이 (의식의 변상으로서)그려져 있다.
여기서 象은 어떤 모양들, 또는 마음에 나타나는 심상이미지를 의미하는 것이죠.
어슴프레하고 희미한 의식빛 속에서 심상들이 나타나 보여진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이미지 심상들은 실체성이 전혀 없는 지나가는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이죠.
수행중에 나타나는 이미지나 체험은 애매모호한 의식의 환상일 뿐이라는 충고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읍니다.
恍兮惚兮 其中有物;
모호하고 어슴프레한 그(의식) 안에 삼라만상의 물체들이 (의식의 변상으로써)비쳐져 보이는 것이외다.
홀혜황혜, 황혜홀혜-라고 글자를 반대로 바꾸어서 두번씩 표현한 것은
부질없이 변하는 의식 속에 온갖 우주삼라만상의 이미지와 물체들이 모두 환상의 그림으로써 의식이 변하는 변상이라는 것을 반복하여 강조한 것이죠.
의식이란 진동하며 움직이는 빛과 비슷하며, 온갖 삼라만상의 물질들이란 이 의식의 빛이 진동하며 그려내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有物이라는 것은 온갖 삼라만상의 물체가 어슴프레한 의식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죠.
구도자가 아무리 미세하고 텅빈 의식으로 되었다 해도 도의 본체에 도달하지 못하면, 어떠한 신비적 능력이나 체험일지라도 모두가 의식의 변상에 지나지 않는것이죠.
모든 우주 삼라만상이 바로 의식에 의해서 현시되는 것이고, 이의식은 항상 변하는 것으로서 무상(無常)한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다음문장은 道의 본체에 대해서 설명한 내용입니다.
窈兮冥兮 其中有精;
그윽하고 어두운 내면 속 깊은 곳엔 변하지 않는 순수한 바탕이 있는데,
窈;고요하다,그윽하다,어둡다,구석지다. 冥;어둡다,깊숙하다,그윽하다.
精;정하다.깨끗하다,정묘함,순수하다,정기,원기,근원,바탕
고요하고 깊은 어둠 속에 결코 변하지 않는
"순수한 정기 또는 바탕"이 한결같이 존재한다.
제1장에서도 "玄之又玄 衆妙之門"이라는 문장이 나오죠.
의식적인 측면에서 어둡고 더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면 만물이 나오는 근원의 문이 있다,는 문장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앞의 문장들은 도의 본체에 이르기 전의 道로 부터 나온 의식의 비춤에서 일어나는 변상(變相)들이 허망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 묘사했읍니다.
이문장으로 넘어와서는, 갑자기- '고요하고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 왔읍니다.
의식이 진동하고 변화하는 영역을 벗어나서 고요하고 깊은 어둠 속으로 더 깊히 들어 온 것이죠.
그 그윽한 어둠의 내면 속에 전혀 움직임없는 "순수한 精氣"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이름지어 부를 수가 없으니깐 순수함 또는 정묘함의 의미인 "精"자로 표현한 것 같읍니다.
이 精은 순수함,일정함,정묘함,변화없음, 근원,바탕, 등의 뜻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변함없는 순수한 본바탕"으로 뜻풀이를 했읍니다.
이것이 항상 변함없이 한결같은 도의 본바탕인 절대진아 상태를 말합니다.
其精甚眞 其中有信;
이 변함없는 순수한 바탕이 바로 참된 道이며
그안에서는 그것이 명확하므로 믿을 수가 있는 것이외다.
甚;심하다,심히,무엇,
그 순수한 바탕은 움직임없이 항상 고정되어 있어 바로 그것이 참된 도의 본체, 이세상 만물의 숨겨진 본질이라는 것이죠.
이전까지는 끊임없이 변화하여 그 정체성이 애매모호하여,진실된 실체가 없었죠.모든 것이 그저 지나가는 의식빛이 그리는 그림자라고 볼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의식이 나오는 가장 밑바탕의 근원에 도달하니 항상 그대로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참된 본질"만이 있는 것이죠.
그윽하고 깊은 어둠 속으로 더 들어오니.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흐르던 의식의 파동이 잠잠해지고, 남은 것은 오직 순수한 허공처럼 "변함없음"만이 남아 있는 것이죠.
그 모든 변화되고 흐르는 의식의 넘어에 있는 변함없는 순수한 본질, 그자체가 바로 우리들의 참된 본성이며, 바야흐로 그 안에 있으면 최종 진리의 명확함과 불변의 진리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옛부터 지금까지 그이름이 없어지지 않은 것은,
도가 만물의 근원인 의식을 거느리며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閱;보다,검열하다,가리다,들어가다,거느리다.주다,부여하다. 甫;크다,많다.
自古及今; 옛부터 지금까지.
其名不去; 그이름이 사라지지 않고(한결같이 존재한다),
以閱衆甫; 만물의 근원을 거느리며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以는 까닭, 이유,등을 나타내는 것으로써 ~때문이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가 있읍니다.
閱은 보다,지켜보다,보살피다,거느리다,라는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거느리며 지켜본다,는 복합적인 번역을 해서 명확하게 뜻을 알리고자 했읍니다.
衆甫는 백서본에서는 衆父라고 되어있는데, 왕필본에서는 衆甫로 개조되어 있지만, 거의 모든 판본이 衆父(만물의 아버지 또는 만물의 근원)로 되어 있읍니다.
따라서 衆甫나 衆父는 다 같은 의미의 '만물의 근원'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衆甫,즉 만물의 근원이라는 것은 "의식의 뿌리,의식의 탄생점"자체를 말합니다.
즉 "내가 있다"라는 존재의식의 탄생점을 말하는데, 존재핵점이라는 것이죠.
인도 힌두교에서는 이스와라 신이라고도 합니다.
衆甫(의식의 근원,존재의식 발생점)을 거느리고 지켜보는 최종 주시자는 바로 의식이 나오기 이전에 존재하는 절대본체상태를 말하는 것이죠.
말하자면 존재의식을 지켜보는 주시자인 마지막 바탕인 진아상태를 여기서는 "精"이라고 한 것이죠.
그 精만이 진실하게 순수하며, 그것만이 항상 변함없이 있으므로 확실한 믿음이 있는 것이죠.
헤아릴수 조차 없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대로 존재하면서, 모든 만물이 생주이멸하는 의식을 지켜보고, 의식의 근원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그 道라는 이름이 없어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부분은 백서본에서는 <以順衆父>로 되어 있어서 "만물의 근원을 따르기 때문이다"라고 번역이 됩니다.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 ;
내가 어떻게 만물의 근원이 그러한 모습인지 알겠는가?
바로 이것(도의 주시작용)으로써 아는 것이다.
여기서 吾는 개인적인 "나"가 아니라, 道의 본체인 전체성이 된 "참나"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衆甫란 의식이 나오고 있는 시초를 말하는 것이죠.
참나(吾)가 어떻게 만물의 근원인 의식이 그렇게 생겨나오는 것을 알겠는가?
이렇게 의문문으로 제시했죠.
따라서 앎의 대상인 "중보"와 주시하는 주체인 "참나"가 문장에 모두 나와있읍니다.
이것은 참나인 도의 본체가 만물이 생겨나오는 의식(중보)를 주시하고 있다는 진리를 도의 본체입장에서 표현한 것입니다.
단순히 개인이 도의 진리에 대한 정보를 본다든가 안다고 하는 묘사가 아니죠.
以此,는 "바로 이것으로써 안다"라는 뜻인데, "이것"이란 바로 "도의 주시하는 작용"을 묘사한 "以閱衆甫"(만물의 근원을 거느리며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가리킨 것입니다.
즉, 도의 본체가 바탕에서 "만물을 생성하는 의식자체를 저절로 주시하는 작용"때문에 이러한 만물의 근원작용을 안다는 것이죠.
이번 21장은 그리 어려운 어휘는 없지만 다른 장과 마찬가지로 몇군데 문장에서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해석될 수도 있읍니다.
예를 들면 孔德之容, 惟恍惟惚, 惚兮恍兮, 恍兮惚兮, 등의 문장을 잘못 이해하면
완전히 전체문장의 줄거리가 다른 방향으로 향해서 삼천포로 빠지게 될 수도 있읍니다.
그래서 서너번 정도 각기 다른 방향으로 해석과 주석을 해 보고는,
결국 마지막에 이글 하나만 남기고 다른 것은 전부 휴지통에 내 버렸읍니다.
감사합니다.
끝까지 읽어 보시느라 수고하셨읍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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