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3. 22:35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ㅇ. 대상적 주의
[본문]
고요히 있기(존재-의식으로 머무르기)만 하면 지고의 지복이 빛나는데,
오호라, (우리는) 자기 스스로 몸시 헤멘다네.
오고 감이 없는 실재로서의 우리 자신을 탐구하여 (알고) 기뻐하며 그 수승한 지혜를 체험하라.
[해설]
이 연에서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고요히 있기만 하면 항상 얻을 수 있는 지복을 얻기 위해 힘들게 수고하며 헤메는 것은 부질없다고 말한다.
[본문]
우리 자신이 진아로서만 생겨나 존재함에도 마치 어떤 다른 것인양 자신의 진아(나) 일 뿐인 자기를 추구하는 데 매달리는 것은, 진아가 자기와 무관한 '다른 것'인양 보일지라도 제 진아가 (지기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네.
[본문]
자기 자신에 다름 아닌 진아를 타자로 생각하여, 자신의 노력으로(수행으로) 그것을 성취하려고 힘들게 애쓰는 것은,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붙잡으려고 쫓아가는 것과 같네.
[본문]
실재인 진아의 '의식의 빛'으로서 심장 안에 존재하는 '나'가 분명히 드러나므로,
거짓 없는 눈(知)인 저 실재 만이 직접지각되고, 눈에 보이는 것들, 곧 시각기관에 다가오는 대상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탐구하여 알라.
[본문]
간단없이 심장 속에서 늘 빛나는 존재-의식의 형상을 미세하게 살펴서 분명하게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내습하는 짙은 미혹의 에고가 걸어오는 싸움인 대상지(對象知)에 매혹되어 마야에 떨어진다네.
ㅇ. 대상적 주의의 단절
[본문]
"자신의 진리를 알라"고 경전에서 말하는 진정한 의도는,
다른 대상들에 대한 분별인 거짓된 앎(대상知)이 없게 하려는 것일 뿐이네.
왜인가? "내가 있다"라는, 누구에게나 있는 그 자신의 진리는, 해 그 자체처럼 빛나기 때문이네.
[해설]
우리 자신의 진리는 모두의 안에서 "내가 있다"로서 항상 빛나고 있으므로, 그것은 새롭게 알아야 할 어떤 것이 아니다. 따라서 경전에서 "그대 자신의 진리를 알라"고 할 때, 그 진정한 의도는 우리 주의를 "내가 있다"로 돌리게 하여, 2인칭과 3인칭 대상들에 대한 주의를 포기하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런 대상적 주의야말로 그릇된 지(知), 곧 무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전의 의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새롭게 알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그릇된 앎을 포기시키려는 것일 뿐이다. 바꾸어 말해서, 우리가 대상적 주의를 그냥 포기해 버리면, 그것 자체로 우리가 항상 진아를 알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이해될 것이다.
[본문]
대상지(對象知)로써 찾으면 빛나지 않는 은총의 밝음이, 대상지가 소멸하면 빛날 것이네. "내가 신부를 바라볼 때는 그녀가 아래를 내려다보겠지만, 내가 바라보지 않을 때는 그녀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나를 바라볼 것이네."
[해설]
이 연의 후반부는 <띠루꾸랄> 제1094연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서는 진아를 신부에 비유하는 특이한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와향적 마음을 통해 진아를 하나의 대상으로서 알려고 하면, 그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외향의 그침 자체가 진아 쪽으로 내향하는 것이므로,
외향이 그칠 때 진아가 자동적으로 빛을 발할 것이다.
여기서 독자들은 위 비유를 다음과 같이 잘못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
"신부는 신랑이 자신을 바라보지 않을 때만 신랑을 바라본다.
따라서 진아는 우리가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 즉 우리가 바깥 세계에 주의를 기울일 때만 스스로 드러날 것이다."
이것은 위 비유를 제시할 때 의도한 의미가 아니다.
올바른 해석은 이런 것이다.
"마음으로는 진아를 알 수 없지만, (2인칭과 3인칭 대상들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들을 아는) 마음의 본성이 소멸될 때, 그럴 때만 그것이 자동적으로 빛을 발할 것이다."
[본문]
저것도 바라보지 말고 이것도 바라보지 말라.
그대가 어떤 것도 바라보지 않고 그냥 있을 때,
그 강력한 '있음'의 바라봄에 의해서,
그대는 무한한 의식-허공의 광대한 눈인 실재가 될 것이네.
[본문]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그분의 두 발에 내맡길 때 열리는 허공인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 분명해지지 않고는, 개아의 마음의 힘이 받아들여 평가하는 지성으로 극히 미세한 실재를 알 수는 없다네.
[본문]
모든 기예와 학(學)을 듣고 배워서 이해했음에도 (가치 있는) 어떤 상태도 분명하게 알지 못한 채 추구하며 방황하지 말라. 사랑의 형상으로 안주하고 있는 실재로 충만하여,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지고의 상태라네!
-스리 무루가나르 지음 <진어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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