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선사] 행장(行壯)- 가신 이의 모습(5)

2024. 9. 23. 21:43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스님은 바로 천암스님께 절하고 나와 송강 땅에 들어가서 요당스님과 박암스님을 찾아뵈었으나, 그들은 감히 스님을 붙잡아 두지 못하였다.

그 해 봄 삼월, 스님은 대도 법원사로 돌아와 다시 지공스님을 뵈었다.

지공스님은 스님을 방장실로 맞아들여 손수 차를 딸아주고, 드디어는 가사 한 벌과 불자 하나와 인도 글로 스님의 바른 눈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적은 종이 한 장을 주었다.

지공 스님은 스님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맡기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차는

밝고밝은

빛,

내가 즐기는 과자는

바르고 바른

쉼(正安)이니,

해마다 이 마음

어두워질 수 없는 약이지.

이리 보아도

또 저리 보아도

한결 같은

그대여,

마음 밝힌

그대에게 천 자루의

칼을 준다.

 

스님은 답했다.

 

스승께서 주신

이 차

받들어 마시고,

이 몸 다시 일어나 세 번

절을

올립니다.

참다운 건 언제나

이 소식뿐,

예나 지금이나

이 소식뿐.

 

스님은 이 절에서 한 달 가량 지내다가 다시 지공스님 곁을 떠났다.

그리고는 여러 해 동안 옛 연나라 땅의 산천을 두로 돌아 다녔다.

스님의 덕과 수행은 황제에게 까지 알려졌다.

그래서 스님은 황제의 뜻을 받아 대도에 있는 광제선사에 주지로 머물게 되셨다.

그리고 병신년 시월 보름 날에는 스님이 첫 설법을 하는 법회를 여셨다.

황제(원나라의 황제인 순제) 원사 야선첩목아를 시켜 금란가사와 예물을 보냈고,

황태자도 금란가사와 상아 불자를 보냈다.

이날 법회에는 높고 낮은 많은 벼슬아치들과 여러 백성들, 그리고 이 산 저산에서 온 큰 스님들과 내노라는 수행자들이 함께 모였다.

스님은 가사를 받아들고, 황제의 시킴을 받고 나온 내시에게 물었다. "저 붉은 산과 흐르는 강물과 누런 땅,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풀과 나무들이 다 부처님의 몸인데, 빛나는 이 가사를 어디다 입혀야 하겠습니까? "

내시는 모르겠다고 했다.

스님은 왼쪽 어깨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여기다 입혀야 합니다."

스님은 다시 법회에 온 사람들에게 물으셨다.

"맑고 텅 비고 잠잠하여 처음부터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눈부신 가사는 어디서 나왔습니까?"

모두 말이 없었다.

"겹겹이 깊은 궁궐, 거룩한 말씀 속에서 나왔습니다."

스님은 말씀하시고 나서 가사를 입고 황제를 위해 빌어 주셨다.

그리고 다시 향을 사르고 말씀하셨다.

"이 한 조각의 향을 인도에서 오신 백팔 대조사인 지공큰스님과 평상스님께 받들어 올려,

진리의 젖을 먹여 주신 고마움을 갚겠습니다."

 

지정 17년 정유년, 스님은 광제사를 떠나 옛 연나라 땅의 이름난 산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다시 법원사로 돌어와 지공스님께 물으셨다.

"이제 제자는 어디로 가면 좋겠습니까?"

지공스님이 말씀하셨다.

"이제 자네 나라로 돌아가게나. 돌아가서 산이 셋이 있고 강이 두 줄기로 흐르는 곳(三山兩水)을 찾아서 그곳에 머물면 부처님 가르침이 저절로 일어날 것일세."

 

무술년 봄 삼월 스므사흗날, 스님은 지공스님에게 절하고 요양을 거쳐 고려로 돌아 오셨다.

그 뒤 평양이나 동해 같은 곳에서 인연을 따라 불법을 말씀하시고,

경자년 가을에는 오대산에 들어가 상두암에서 지내셨다.

그 무렵 중국 절강성에서 온 고담스님이 용문사를 오가면서 편지글을 보냈는데,

스님은 이런 게송을 지어 보내셨다.

 

하늘에서 불쑥

튀어 나온

스님

고담 노스님,

지금은 임제의 가르침이

꺼지려는

때,

한 발 지혜의 칼을 번쩍 드시는

순간,

끝없는 번뇌 번뇌

다 사라진다.

 

고담스님은 흰 종이에 한 장으로 답했는데,

겉봉투에 "군자는 천 리나 멀리 떨어져 살아도 매 한가지다"라고 써서 보냈다.

스님은 이것을 받아보자 웃으면서 던져버리셨다.

시자가 주워 뜯어보았더니 그것은 빈 봉투였다.

 

                                                                               -무비 역주 <나옹선사 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