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봉스님 법문] 열 가지 큰 원력(3)

2024. 10. 25. 22:47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예전 당나라에 배휴(裴休)라는 사람이 있었다.

쌍둥이로 등이 맞붙은 기형아로 태어나서 부모가 칼로 등을 갈라 약을 바르고 치료를 해서 키웠는데, 살이 많이 붙은 아이는 형이 되고, 적게 붙은 아이는 동생이 되었다.

형의 이름은 도(度)라 부르고 동생도 도(度)라 썼는데 글자는 같지만 음이 틀리다.

형 도(度)는 법도를 말하는 도(度)라 하고 동생은 헤아릴 때 말하는 탁(度)이라고 불렀다.

휴(休)는 어릴 때 형인 배도의 장성한 후 지은 이름이다.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형인 도는 외삼촌 한테 몸을 의탁하고 있었고,

동생 탁은 어디로인지 혼자 떠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일행선사(一行禪師)라는 도덕(道德)이 높은 스님이 오셔서 외삼촌과 말씀을 하시는데,

배휴가 문밖에서 자기 이야기하는 것을 지나치다 잠깐 들었다.

그 스님 말씀인즉,

"저 아이는 왠 아이입니까? "

"나의 셍질인데 부모가 없어 데리고 있습니다."

"저 아이를 내보내시오."

"부모도 없는 아이를 어떻게 내보냅니까?"

"내가 보니 저 아이를 놓아두면 워낙 복이 없는 아이라서 얻어 벅을 아이인데, 저 아이로 말미암아 삼 이웃이 가난해 집니다. 저 아이가 얻어 먹으려면 우선 이 집부터 망해야 하니 당초에 그렇게 되기 전에 내보내시오."

선사가 돌아간 뒤 배휴가 말했다.

"외삼촌, 저는 어디로든지 가야겠습니다. "

"가기는 어디로 가느냐?"

"아까 일행선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가 빌어먹으려면 일찍 빌어먹을 일이지 외삼촌까지 망하게 해놓고 갈 것이 있겠습니까. 지금부터 빌어먹으려 가렵니다. "

 

자꾸만 만류하는 외삼촌을 뿌리치고 배휴는 얻어먹는 거지가 되었다.

사방으로 돌아다니던 중, 하루는 어느 절 목욕탕에 부인삼대(婦人三帶)라는 아주 진귀한 보배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혼자 생각하기를 이 좋은 보배를 누가 잃어 버렸나, 했다.

구걸해 먹고 사는 처지에 주워다 팔든지 해도 될 텐데,

배휴는 임자를 찾아주려고 보배 임자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보배는 어떤 물건인가 하면 그 고을 자사(刺使) 한테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 삼대 독자인데,

그 어머니가 아들의 명(命)을 구하려고 가산(家産)을 모두 팔아서 멀리 촉(蜀)나라에 까지 가서 이 보물을 구해다가 자사에게 애걸을 하여 그 삼대 독자를 살리려는, 참으로 애절한 사연이 있는 물건이다.

 

그 어머니가 절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행장을 수습하여 간다는 것이 워낙 바쁘게 서둘다 보니 귀중한 보물을 빼놓고 간 것이다. 집에 가서 찾아보니, 부인삼대가 없어서, 허둥지둥 절 목욕탕에 와보니 웬 거지가 목욕탕 앞에 서 있기에 저 거지가 안 가져 갔을까 싶어서 물어보았다.

"내가 주워 챙겨놓았는데 당신이 주인이면 가져가시오. 내가 그 보배를 지켜주려고 여기 있었소."

빌어먹을 처지에 보물을 지켜주고 할 여유가 없었을 텐데 그것을 지켜주어 그 사람이 감격하여 치하를 하고, 보배를 가지고 가서 삼대독자를 살렸다.

 

그후 배휴가 그렇게 좋은 일을 하고 외삼촌 집에 들르니 마침 일행선사가 오셨는데 배휴를 보더니

"얘야, 네가 정승이 되겠구나" 하였다.

배휴가 그 말을 듣고 대꾸했다.

"스님, 언제는 내가 빌어먹겠다고 하더니, 오늘은 정승이 되겠다고 하니 거짓말 마시오. 언제는 빌어먹겠다고 하더니, 이제 외서 또 정승은 무슨 말씀이오."

"전날에는 너의 얼굴상을 봤고, 오늘은 너의 마음 상을 보았다. 네게 그 동안 무슨일이 있었지?"

배휴가 사람 하나 살린 이야기를 하니 "그래서였구나 !"하고 수궁을 하였다.

 

그후 배휴는 일행선사의 말씀처럼 삼공(三公) 영의정이 되었다.

그후 배휴가 어느 절에 가서 그 절에 조사(祖師)님들을 보셔놓은 영각(影閣)에 가서 조사의 영상(影像)을 보고 스님들에게 물었다.

" 선사(先師)의 영상은 저기 걸려있는데, 선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습니까?"

수백명 되는 대중에 있어도 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배휴가 다시 물었다.

"이 절에 공부하는 사람이 없습니까?"

마침 황벽선사(黃檗禪師)가 그 절 부근에 토굴을 파고 있었는데 대중들이 말하기를 아마 그 분이 참선하는 분 같다고 하며 황벽스님을 모셔왔다.

배휴가 황벽에게 물었다.

"선사(先師)의 영상은 저기 있는데, 선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습니까?"

황벽이 벽력같은 목소리로 "배휴야!" 하고 부르자,

배휴가 "예"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황벽스님이 큰 소리로 외쳤다.

"어디에 있느냐?"

이때 배휴가 돌연히 도(道)를 알았다.

그 후에 배휴는 황벽스님을 도와서 불교를 많이 외호하고 불경(佛經)에 서문(序文)도 지었다.

 

                                                                                   -경봉스님 설법집 <니가 누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