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9. 22:09ㆍ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진리 그 자리, 여러분이 그 진리 한마디 들어야 한다.
그 법문을 듣고 다만 하루에 반시간이라도 돌이켜 반조를 해봐야 한다.
선(禪)을 선나(禪那)라 하기도 하고 정려(靜慮)라고도 한다.
생각을 고요히 해서 분주한 생각을 쉬고 고요한 데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들어간다고 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 들어가고 나올 것이 어디 있나.
본래 고요한 자리지.
또 선을 기악(棄惡)이라 하는데 악한 것을 버리는 것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 악한 생각을 가지고는 선(禪)을 못한다.
또 선을 정수(正受)라고 한다. 바로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이 마음은 지극히 고요한 데 들어갈수록, 눈으로 어떤 경계를 보거나, 귀로 소리를 듣거나,
보고 듣는데 바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고 탁하거나 마음 속에 한찮은 생각이 있으면,
모든 보고 듣는 것을 바로 못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자리는 지극히 닦으면 바로 받아들인다.
듣는 것도 바로 듣고 보는 것도 바로 보고 모든 일이 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부처님의 바른 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남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내 자성(自性)을 속이지 않고 남도 속이지 않고, 이렇게 하는 것이 정수(正受)다.
참선은 많은 말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눈만 꿈쩍거려도 알고, 손만 한 번 들어도 아는 것이 이 도리니까.
화두(話頭)라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지만 조사(祖師)가 수핼자를 위해서 바로 일러준 것인데,
천칠백가지 공안(公案) 가운데 하나만 들고 참구(參究)하여 화두가 타파되면,
나의 이 본성을 아는 때가 오는 것이다.
앉으나 누우나 생각을 끊임없이 해서, 도 닦는 사람들은 전문적으로 물이 흘러가듯 해야 한다.
앉으나 누우나 항상 그 화두를 눈앞에 대하기를 사람을 서로 대한 것과 같이 해서 잠시라도 중단하면 안된다.
금강과 같은 그런 큰 용기와 뜻을 세워서 죽나 사나 하는 그런 심정으로 공부를 하되,
한 생각을 만년과 같이 해서 내 마음의 광명을 돌이켜 비추게 해야 한다.
살피고 다시 살피어 마음 가운데 망상과 하찮은 생각이 붙으려 해도 붙을 수 없어야 한다.
파리가 오만군데 다 붙지만 불이 훨훨 붙는 데는 못 붙듯이.
망상의 파리도, 듣는 데 붙고, 보는 데 붙고, 일상생활에 붙지 않는 데가 없이 붙어서, 사람의 애를 먹이지만, 지혜의 불이 훨훨 붙는 데는 붙으려고 해도 붙을 수가 없다.
공부를 하려고 앉아 있으면 혼침에 빠져 잠이 오거나 이 생각 저 생각 산란심이 오게 마련인데,
아것을 오래 닦아 잠과 산란한 마음을 물리치고 홀연히 어떤 경지를 보거나 어떤 소리를 들으면
홀연히 의정(疑情) 덩어리가 타파 될 때, 자기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경봉스님 법문집 <니가 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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