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7. 22:00ㆍ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스님은 평산스님을 떠난 뒤 명주에 있는 보타락가산으로 가서 관세음보살님을 뵙고,
다시 육왕사로 돌아와서는 석가모니부처님께 절했다.
그 절의 큰스님인 오광스님은 이런 게송을 지어 스님을 찬탄했다.
버티고 앉아
대낮처럼
두 눈썹 사이
번개칼
걸어두고,
죽이고 살려내고
그때그때
멋대로네.
소양 땅
신령한 그 나무인가.
아, 저런 엉터리에게로 갔구나.
부처님 크신 법이여.
스님은 다시 설창스님을 찾아뵙고 명주 땅으로 가서 무상스님도 뵈었다.
또 고목스님을 찾아뵙고는 한참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고목스님이 물었다.
"그렇게 앉아 있을 때는 어떻게 마음을 쓰는가?"
"쓸 마음이 없습니다."
"쓸 마음이 없다면 날마다 어떤 것이 그대의 몸을 끌고 왔다갔다 하는가?"
스님이 눈을 치켜뜨고 바라보니 고목스님이 말했다.
"그것은 그대 부모에게 받은 눈이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무엇으로 보는가?"
스님은 악 ! 하고 할을 한 번 하고는 말했다.
"어떤 것을 태어낳느니 태어나기 전이니 라고 말합니까?"
고목스님은 스님의 손을 잡고 말했다.
"고려가 바다 건너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스님은 옷소매를 떨치고 나와 버렸다.
임진년 사월 초이튿날, 스님은 무주 땅 복룡산으로 가서 천암 원장스님을 뵈었다.
마침 그날은 공부가 쟁쟁한 스님들을 천여 명 모아 놓고, 천암스님의 뒤를 이을 눈 밝은 스님을 가리는 날이었다. 스님은 이런 게송을 지어 천암스님에게 올렸다.
말씀은
우레
침묵은 천둥
누구인가.
이 속에서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는
그렇구나
부질없는 저 영산의
법희여,
부처님이란 다만
오고 감이 없는
여기이기에
스님은 곧 절차에 따라 천암스님의 방에 들어갔다.
천암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는 길인가?"
"정자선사에서 오는 길입니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어디서 왔는가?"
"오늘은 사월 초이튿날입니다."
"눈 밝은 사람은 속이기가 어렵구나"
천암스님은 이렇게 말하고 바로 자기의 선법을 잇게 했다.
스님은 천암스님을 모시고 여름 안거를 보내고 여름이 끝날 즈음 천암스님에게 떠날 인사를 드렸다. 천암스님은 스님을 떠나보내는 글을 이렇게 썼다.
"석가 어른은 팔만 사천이나 되는 엄청난 법문을 하셨다.
하지만 이것은 죄다 쓸데없는 한갓 말뿐이다.
뒷날 가섭이 빙긋 웃으니 백만의 사람과 하늘이 어쩔 줄을 몰랐고,
달마가 벽만 바라보고 앉아 있음에 이조는 눈 속에 서 있었다.
또 육조는 방아를 찧었고, 남악은 기왓장을 갈았으며,
마조가 한 번 내지른 소리에 백장은 몇칠 동안 한 소리도 들을 수 없었고.
이 말을 전해 들은 황벽은 혀가 한 질이나 빠졌다.
하지만 이런 말로만은 장로나 수좌가 된 일이 없다.
참으로 이것은 이름을 붙일 수가 없고 모양으로 그릴 수 없으며,
치켜올릴 수도 없고 헐 뜯을 수도 없다.
그러나 그대는 다만 텅 빈 하늘처럼 되어,
부처도 보지 말고 조사도 보지 말고, 보통 사람도 거룩한 이도 보지 말며,
삶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도 보지 말며,너니 나니 하는 것도 보지 말라.
이쯤 이르러서도 여기는 이쯤이라고 할 어떤 것도 없으며,
텅 빈 허공이라는 모습도 없으며, 어떤 말도 들러 붙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진리란 모습도 이름도 다 떠나버려, 사람이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지혜의 칼은 쓰고 나면 서둘러 갈아 두어야 한다.
지혜의 칼이란 쓰고 바로 쓸 수 있는 것인데, 더 갈아야 한다.
함은 무슨 소리인가? 만약 그대가 이 칼을 쓸 수 있다면 이 늙은 이의 목숨이 그대 손 안에 있을 것이요, 만약 그렇지 못하면 그대 목숨이 내 손 안에 있을 것이다. 악 ! "
-무비 역주 <나옹선사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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