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14. 22:16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ㅇ. 우파사나(Upasana)
註 : 우파사나는 숭배, 즉 몸을 통해서 (얘공), 말을 통해서 (염송 또는 찬송), 혹은 마음을 통해서(명상) 신을 붙드는 것이다.
[본문]
오염을 가져오는 좋지 않은 원습들을 소멸함으로써 지(知)의 광채로 빛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심장 속에서 지극히 순수하게 빛나는 하느님의 연꽃 발을 본 헌신자들이라네.
[본문]
악마적 성질은 무가치한 결과만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신적인 성질만 내면에서 계발하라. 풍요롭게 신적 성질들을 빛나게 해줄 우빠사나만이 영혼을 구제할 힘이 있다네.
[사두 옴 해설]
여기서 우빠사나는 진아를 붙드는 것, 즉 진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뜻한다고 이해해야 하며, 이것이 곧 자기탐구이다. 왜냐하면 자기탐구만이 모든 신적 성질을 하사하기 때문이다. '성질'의 sampat라는 단어는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외적으로 노력하여 얻어지는 모든 것은 개아에게 불행을 안겨 줄 뿐이다. '신적 성질'만이 노력하여 얻을 가치가 있고, 이것은 오로지 자기탐구에 의해서 계발된다.
[본문]
비이원적 지(知)는 (성취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하느님(시바)의 두 발에 대한 참된 사랑, 곧 헌신이 강렬해지면, 무지를 소멸하는 확실한 빛인 참된 신적 은총의 도움을 통해 그것을 성취하기가 수월해진다네.
[본문]
하느님의 두 발을 꽉 붙들어 심장 속에 사랑으로 고정하면 미혹의 속박을 절단할 수 있고, 그것이 절단되면 심장이 열리면서 지고한 지(知)의 참된 빛을 볼 수 있다네.
[해설]
여기서 독자들은 "하느님의 두 발". "은총" 등의 용어들이 진아를 의미할 뿐이라는 스리 바가반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본문]
개아의 머리가 시바의 두 발에 고정되어 (그것과) 하나가 되면, 그 개아는 시바 그 자신이 되어 빛날 것이네. 왜냐하면 하찮은 에고가 움직임을 잃고 소멸하면 움직임 없는 진아로서 실재의 상태에 머무를 것이기 때문이네.
[해설]
파도의 성품은 움직이는 것이고, 바다의 성품은 움직임 없이 머물러 있는 것이다. 만일 이리저리 움직이는 파도가 바다를, 즉 고요히 머물러 있는 바다의 성품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파도의 형상을 잃고 잠잠해져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바다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즉, 움직임이 없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아, 곧 이리저리 움직이는 마음이 시바, 곧 진아를 사랑한다면, 그는 자신의 개아 성품, 즉 움직이면서 별개의 한 개체로 있는 성품을 상실하고, 시바 속에서 해소되어 시바 그 자신이 될 것이다.
[본문]
그대를 얽어매는 강한 거짓된 속박을 끊어 버리고 구원 받으려면, 강력한 사랑이 솟구치는 마음으로, 한시도 허비하지 말고 하느님의 활금빛 연꽃 발에 대한 명상을 하라.
[사두 옴 해설]
스리 바가반은 <자기탐구>의 마무리 장에서 "항상 진아에 다한 명상을 닦아, 해탈의 지고한 지복을 성취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연에서 권장하고 있는 것은 진아에 대한 명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본문]
진아 안주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마음 안에서가 아니고서는 신(진아)의 참된 형상을 깨달을 수 없다네. 그러니 마음이 우리 떠난 소처럼 돌아다니거나 피곤해서 혼침에 떨어지지 않고, 단 하나의 표적(진아) 위에 견고히 머무르게 훈련하라.
[해설]
본 연에서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 즉 그것이 사깔라(다수성의 상태)와 께발라(無의 상태)에 의해 영향받지 않게 하는 것이 이른바 진아 안주 혹은 삼매라는 것을 말해준다.
[본문]
"나는 몸이다"라는 미혹된 관점에 의해 결함있는 감각기관들이 끌고 오는 다른 대상들에 대한 모든 집착을 소멸하라. 침묵의 마음 자체가 순수한 보배링김(빛의 링감)이니, 잘 지니면 무한한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네.
[본문]
완전함으로 빛나는 신을 숭배하기에는 어떤 날이나 좋은 날이고, 어떤 행성이나 좋은 행성이며, 어떤 요가나 뛰어나게 길한 요가이고, 어떤 오라이(orai)나 길시라네.
註 : 요가나 오라이는 점성학에서 계산하는 하루 중 특별한 때이다.
[스리 무르가나르 해설]
날, 행성, 요가, 오라이들은 마음의 개념 안에 있으므로, 그 중 어떤 것은 길하지 않고 세간적 활동만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중의 어느 것도, 신에 대한 진정한 숭배인 자기주시를 하고 싶어 하는 구도자에게는 어떤 해도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을 넘어서 있는 진아와 관계되기 때문이다. 스리 냐나삼반다르가 행성들의 효과를 정복하기 위해서 부른 10개 연과, 타밀성자들의 다른 노래들은 이러한 시간 요인들 중 어느 것도 신의 은총의 힘 아래 들어가는 헌신자에게 어떤 장애도 될 수 없음을 보증해 준다.
[본문]
어떤 사람에 의해 신심이 생겨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 만일 어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생겨난다면, 그 갓난아이인 신심 자체를 까마데누인 양 아무 의심없이 보호하고 양육하라.
[해설]
까마데누는 사람이 원하는 어떤 것도 베풀어 주는 신성한 소(소원성취우)이다.
마찬가지로, 신이나 스승에 대한 온전한 믿음은 헌신자에게 일체 모든 것을 하사해 줄 것이다.
믿음의 경이로운 힘이 그와 같다.
-스리 무루가나르 지음, 대성 옮김 <진어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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