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수행(2)

2024. 9. 11. 21:34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ㅇ. 침묵을 통한 우빠사나

 

[본문]

장의 자리에 하느님을 모셔두고 마음을 하나의 실재(진아) 안에 끊임없이 고정하는, (자신의) 참된 성품에 대한 저 숭배의 행위를 성취한다면 그것이 곧 침묵의 이익임을 알라.

 

[본문]

다른 어떤 집착도 없이 은총을 붙드는 것, 곧 순수한 상태를 붙드는 것이야말로 다른 것이 일체 없는 침묵의 상태라네.(자기탐구를 통해) 그 상태에 머무는 법을 배워 항상 그것으로 안주하는 것이 참된 정신적 숭배임을 알라.

[사두 옴 해설]

오늘날 우리들 중 많은 사람은 '정신적 숭배'를 한다는 것은 꽃백단향액, 과일, 화만(꽃목걸이) 등 필요한 것들을 다 모아서 신께 바친다고 상상하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마음활동일 뿐이다. 본 연에서는, 그것은 올바른 정신적 숭배가 아니며,

위에서 말한 진아 안주, 곧 '침묵을 통한 숭배'야말로 진정한 정신적 숭배라고 가르친다.

 

ㅇ. 간접지(間接知)

 

[본문]

미혹된 마음의 원습 자체는 수숭한 직접체험인 순수한 진아지에 의해서만 사라질 것이네. 만일 (몸의) 진짜 괴로움(갈증과 열기)이 신기루의 물에 의하여 해소된다고 하면, 개아들의 괴로움도 거짓된 저 간접지에 의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네.

[해설]

간접지는 매개된 혹은 간접적인 지(知), 즉 책들을 통해서 수집된 (창문과 성찰에 의한)진아에 대한 지(知)를 의미하며, 즉각적인 혹은 직접적인 지(知), 즉 (일여내관을 통해서 얻은) 진아에 대한 직접체험과 반대된다.

 

[본문]

순수한 지고아의 체험이 비이원적 지(知)의 직접체험이라네. 거짓된 간접지를 특별하게 여겨서 <지(知)>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나찰들을 '덕 있는 자들'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네.

[해설]

문학에서는 가치 없는 것을 지칭할 때 가치 있는 이름을 사용하여 그것을 간접적으로 조롱하는 것이 하나의 관행이다. 사악한 죄인들로 잘 알려진 나찰들을 이따금 '덕 있는 자들'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이런 방식이다. 본연에서 스리 바가반은 간접지를 '지(知)'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취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간접지는 사실 무지 그 자체일 뿐이기 때문이다.

 

[본문]

기만적 미혹을 소멸하는 견고한 지(知,진아지)는 심장 속에 존재하는 실재(내가 있다) 에 대한 탐구에서만 일어난다네. 경전에 대한 명료한 탐구라 하더라도, 그것은 종이에 그려진 요리해 먹지 못하는 박과 같다는 것을 알라.

 

[본문]

그림에 있는 이글거리는 불로 음식을 요리해 먹는다면 개아가 허기를 달랠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심장 안에서 에고가 소멸되어 얻는 지(知, 실제적인 진아지)에만 불행을 소멸하는 진아의 평안과 지복이 있고, 언어적 지식에는 그것이 없다는 것을 알라.

 

[본문]

마음을 빛나게 해주고 마음 속에서 빛나는 신성한 하느님의 참된 형상으로서 심장 속에서 일어나는 의식(知)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완전한 지고아의 행복은, (지적인) 논변만으로 얻어질 수 없다네.

 

                                                                                                                            - 진어화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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