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31. 22:38ㆍ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일생패궐(一生敗闕) - 윤창화 번역
2-6.
하루는 (대중들과 함께) 차를 마시던 중 어떤 수좌가 <禪要>에 있는 구절을 가지고 경허화상에게 여쭈었다.
"(고봉화상의 <선요>에 보면) 어떤 것이 진정으로 참구하는 것이며, 진정으로 깨닫는 소리인고?
답하기를 南山에서 구름이 일어나니 北山에서는 비가 내리도다." 이런 말이 있는데,
묻겠습니다만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화상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한다면 그것은 마치 자벌레가 한 자를 가고자 할 때 (완전히) 한 바퀴 굴러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시고는,
대중들에게 "이것이 무슨 도리인고?"하고 물으셨다.
내가 답하였다.
"창문을 열고 앉으니 담장이 눈앞에 있습니다."
화상께서 다음 날 (하안거 해제일) 법상에 올라 대중들을 돌아보시면서 말씀하셨다.
"遠禪和(漢岩 重遠)의 공부가 開心의 경지를 넘었도다. 그러나 아직은 무엇이 體이고 무엇이 用인지 잘 모르고 있도다."
이어 洞山화상의 법어를 인용하여 설하셨다.
"'여름 끝 초가을에(해제 후) 사형사제들이 각자 흩어져 떠나되, (곧바로) 一萬里 풀 한 포기도 없는 곳(번뇌망상이 없는 곳)으로 가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노라.
나라면 '늦여름 초가을 사형사제들이 각각 흩어져 떠나되, 길 위의 잡초를 낱낱이 밟고 가야만 비로소 옳다'고 말하리니, 나의 이 말이 동산의 말과 같은가 다른가?"
대중들이 아무 말이 없자 화상께서 말씀하셨다.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 스스로 답하겠다." 하시고는
아무런 말씀도 없이 마침내 그냥 법상에서 내려오시어 방장실로 돌아가셨다.
2-7.
(해인사에서) 하안거를 지낸 뒤 화상께서는 범어사로 떠나셨다.
대중들도 모두 흩어졌으나 나는 병에 걸려 그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전등록>을 보다가 약산화상과 석두화상의 대화 중에 "한 물건도 作爲하지 않는다(一物不爲)"고 하는 대목에 이르러 문득 心路(망심, 중생심)가 뚝 끊어지는 것이 마치 물통 밑이 확 빠지는 것과 같있다. (한암의 세번째 깨달음)
(그리고) 그해(1903~4) 겨울 경허화상께서 북쪽(갑산)으로 잠적하신 뒤로는 더 이상 빌수가 없었다.
2-8.
甲辰年(1904)에 다시 통도사로 가서 돈이 생겨 병을 치료했지만 고치지도 못한 채 인연을 따라 6년 세월을 보냈다. 庚戊年(1910) 봄 묘향산 내원암에서 하안거를 보냈다.
가을에 금선대로 가서 겨울과 여름 두 철을 지내고, 가을(1911)엔 맹산 우두암으로 가서 겨울을 지냈다. 다음 해 (1912) 봄 어느 날 함께 지내고 있던 도반(사리)이 식량을 구하려 밖으로 나간 사이에,
혼자 부엌 아궁이에 불을 붙이다가 홀연히 發悟하니, 처음 수도암에서 開悟할 때와 더불어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한 줄기 활로(활구)가 부딪치는 곳마다 분명했다(한암의 네 번째 깨달음, 확철대오)
그리하여 '아!' 하고 다음과 같은 聯句의 게송을 읊었다.
3-1.
하지만 말세를 당하여 불법이 메우 쇠미하여 明眼宗師의 印證을 받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경허화상께서도 머리를 기르고 유생의 옷을 입고서 갑산 강계 등지를 왔다 갔다 하다가,
이 해(1912)에 입적하셨으니 어찌 餘恨을 다 말하 수 있으리오?
그래서 이 한 편의 글을 써서 스스로 꾸짓고 스스로 맹서하노니,
한 소식 명백하기를 기약하노라.
咄(쯧쯧)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3-2-1.
부엌에서 불을 붙이다 홀연히 눈이 밝았네.
이로부터 본래 길(古路)은 인연을 따라 淸淨했네.
만일 누가 나에게 달마 西來意를 묻는다면
'바위 밑 물소리, 그 소리에 젖지 않는다'하리.
3-3-2.
삽살개는 나그네가 수상쩍어 짖어대고
산새는 사람을 조롱하듯 지저귀고 있네.
만고에 빛나는 마음 달(지혜광명)이여
하루아침에 세간의 風塵을 다 떨쳐버렸네.
-한암선사 연구(한암의 자전적 구도기 <일생패궐> 윤창화) 민족사-

<한암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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