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선사] 행장(行壯)- 가신 이의 모습(2)

2024. 5. 6. 21:31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그 달에 매화 한 송이가 피었다.

지공스님은 매화꽅을 보고 이런 시를 지었다.

 

꽃앞도 푸르스름,

피었구나

매화야

그렇듯 한 송이만

피었구나

매화야

하늘과 땅 사이라

짝할 이 그 누굴까?

알아 무엇하리

가버린 날들이야.

앞날이여,

길이길이

고운 빛만 몰고 오리니,

그 내음 깨지는 곳마다

기뻐하리

우리 님.

 

스님이 이 게송에 이렇게 답했다.

 

해마다

눈 올 때면

매화야

너는 피었겠지.

나비는 훨훨 돌아오고

별은 바삐 날아가도,

목을 빼어 기다릴 뿐

세봄인 줄 몰랐구나.

이 아침, 매화꽃

다시 피고

그 꽃 한 송이

살포시 문,

가지 끝을 따라

온 하늘 온 땅 가득

왔구나

봄아,

 

하루는 지공스님이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참선이란

안이 없는 안,

진리란

밖이 없는 밖이어서,

뜰 앞의 잣나무라,

아는 이는 사랑하리.

번뇌없는 언덕

맑게 개인 날

모래를 세는 아이가

그 모래를 알 듯.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안은 들어가도 없고,

밖은 나와도 없으니,

땅마다 티끌마다

부처되기 좋은 곳,

뜰 앞의 잣나무여,

더없이 뚜렷하니

오늘은 초여름 사월 초닷새.

 

하루는 지공스님이 (나옹)스님에게 물었다.

" 이 승당 안에 달마가 있는가 없는가?"

"없습니다."

"그대는 저 밖에 있는 재당(스님들 식당)을 보는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리고는 바로 승당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공스님은 시자를 보내 물었다.

"선재동자가 선지식 쉰세 분을 두루 찾아 뵙고 미지막으로 미륵보살을 뵈었지.

그때 미륵보살이 손가락을 한 번 튕기니 문이 열렸고, 그래서 선재는 들어갔네.

그런데 자네는 어찌하여 안팎이 없다고 하는가?"

(나옹) 스님이 말했다.

"그때 선재는 그 속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

시자가 그대로 전하니 지공스님이 말했다.

"이 중이야말로 고려의 종놈이다."

 

하루는 지공스님이 말했다.

"자네, 보경사에 간 본적 있나?"

"가 봤습니다."

"문수와 보현이 거기 계시던가?"

"잘 계십디다."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

"그런 말씀을 하십디다."

"차나 마시고 가게나."

 

그 뒤 어느 날 스님은 게송을 지어 지공스님에게 올렸다.

 

이 마음 어두우면

산은 산, 물은 물인데,

이 맘 밝아지면

티끌 티끌이 한 몸이네.

어둠이랑 밝음이랑 함께

거두어 버리니,

닭은 꼬끼오, 새벽마다

꼬끼오.

 

지공스님은 말했다.

"나도 아침마다 징소리를 듣는다네."

스님의 그릇을 알아본 지공스님은 열 해 동안 판수(板首, 절에서 참선하는 스님 가운데 가장 윗스님)로 있게 했다.

 

                                                                                               - 무비 역주 <나옹선사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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