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선사 구도기] 일생패궐(一生敗闕) - 1

2024. 4. 15. 22:02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일생패궐(一生敗闕) 

 

1-1. 내가 스물네 살 되던 기해년(己亥年,1899년) 7월 어느 날 금강산 선계사 보운강원에서 우연히 보조국사의 <수심결>을 읽다가, "만약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있고 성품 밖에 법이 있다는 생각에 굳게 집착하여 불도를 구하고자 한다면, 비록 티끌과 같은 한량없는 세월동안 몸과 팔을 태우며 云云, 내지 모든 경전을 줄줄 읽고 갖가지 고행을 닦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모래로써 밥을 짓는 것과 같아서 한갓 수고로움만 더할 뿐이다. "라는 대목에 이르러, 나도 모르게 온 몸이 떨리면서 마치 죽음에 당도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1-2. 게다가 장안사 해은암(海恩庵)이 하릇밤 사이에 전소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더욱더 무상(無常)한 것이 마치 타오르는 불과 같았다. (그리하여) 모든 일이 다 헛된 일임을 절감하였다.

 

2-1. (신계사 강원에서) 하안거를 마친 뒤 도반 含海禪師(함해선사)와 함께 짐을 꾸려 행각길에 올라 점점 남쪽으로 내려가 성주 靑岩寺 修道庵에 이르러, 鏡虛和尙의 <금강경> 설법 가운데. "무릇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만일 모든 형상이 상(相)이 아님을 간파한다면 곧바로 여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라는 대목에 이르러, 문득 안광(眼光)이 확 열리면서 삼천대천 세계가 눈 속으로 들어오니, 모든 사물이 다 자기 아님이 없었다 (한암의 첫번째 깨달음, 1899년 가을-윤창화)

 

2-2. (수도암에서) 하룻밤을 묵고 나서 (다음 날) 경허화상을 모시고 합천 해인사로 가는 도중에 (문득 화상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 古人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가네. 다리가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

내가 답하였다 "물은 眞이요, 다리는 妄입니다. 妄은 흘러도 眞은 흐르지 않습니다. "

경허화상께서 말씀하셨다. "이치로 보면 참으로 그렇지만, 그러나 물은 밤낮으로 흘러도 흐르지 않는 이치가 있고, 다리는 밤낮으로 서 있어도 서 있지 않는 이치가 있는 것이네."

내가 다시 여쭈었다. "일체 만물은 다 시작과 끝, 本과 末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본래 마음은 탁 트여서 始終과 本末이 없습니다. 그 이치가 결국 어떠한 것입니까?"

경허화상이 말씀하셨다. "그것이 바로 圓覺境界이네. <經>에 이르기를 '思惟心(사량분별심)으로 如來의 원각경계를 헤아리고자 한다면, 그것은 마치 반딧불로써 수미산을 태우려고 하는 것과 같아서 끝내는 태울 수 없다'고 하였네."

내가 또 여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여래의 원각경계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화두를 들어서 계속 참구해 가면 끝내는 깨달을 수 있게 된다네."

"만약 화두도 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떻습니까?"

"화두도 妄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문득 실각 (忽地失脚)한 것이니, 그곳에서 바로 '無'자 화두를 참구하게나.

 

2-3. 해인사 선원에서 동안거를 보내고 있던 중 하루는 게송을 하나 지었다.

"다리(脚) 밑에는 푸른 하늘이요, 머리 위에는 땅아 있네.

쾌활한 男兒가 여기에 이른다면

절름발이도 걷고 눈먼 자도 볼 수 있으리

北山은 말없이 南山을 마주하고 있네."

 

경허화상께서 이 게송을 보시고는 웃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 '脚下靑天과 北山無語' 이 두구는 옳지만 '快活男兒와 跛者能行'句는 틀렸다"하시었다.

 

2-4. (해인사에서) 동안거를 지낸 뒤 화상께서는 통도사와 범어사로 떠나셨지만, 나는 그대로 남아 있다가 우연히 병에 걸려 거의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다. (해인사에서) 하안거를 마치고 곧비로 만행길에 올라 통도사 백운암에 이르러 몇 달 있던 중, 하루는 입선을 알리는 죽비소리를 듣고 또다시 개오처가 있었다 (한암의 두번재 깨달음)

 

2-5. ( 그 뒤) 동행하는 스님에게 이끌려 범어사 안양암에서 동안거를 지내고, 다음 해 봄에 다시 백운암으로 돌아와 하안거를 보내고 있었다. 당시 경허화상께서는 청암사 조실로 계셨는데, 급히 편지를 보내 나를 부르셨다. 나는 행장을 꾸려 가지고 청암사로 가서 화상을 뵈었다.

청암사에서 하안거를 지낸 다음, 가을에 다시 해인사 선원으로 왔다.

계묘년(1903년) 여름, 해인사로부터 화상을 조실로 모시고자 청하였다.

그때 화상께서는 범어사에 계시다가 해인사 선원으로 오시어 선원 대중 20명과 함께 하안거 결재를 하셨다.

 

-한암선사 연구(한암의 자전적 구도기 <일생패궐> 윤창화) 민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