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용서하라

2024. 2. 16. 21:10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질문 : 내면의 몸에 주의력을 집중하려고 했을 때 아주 불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안하면서 다소 어지러운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말하는 것을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툴레 : 당신에게는 내면의 몸에 집중하기 전까지는 인식하지 못했던 감정의 찌꺼끼가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거기에 주목하십시오. 그 감정은 당신이 그 아래 쪽에 놓여 있는 내면의 몸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 할 것입니다.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은 거기에 대해 생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감정을 지켜보고, 그것을 충분히 느끼면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분노, 두려움, 슬픔 등의 감정은 쉽게 정체가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들이 있습니다.

막연하게 불안하고 무겁고 위축되어 있거나 감정도 아니고 신체적인 감각도 아닌 어중간한 느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중요한 것은 그 느낌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인식하는 것입니다. 주의력은 변화의 열쇄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집중은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의력은 한줄기 빛과도 같습니다. 완전히 집중된 의식의 힘은 모든 것을 그 자체로 환원시킵니다.

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는 유기체 안에서는 감정이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감정은 존재의 표면 위에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물결이나 파문과 같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몸 안에 있지 않을 때는 어떤 감정이 몇칠이고 몇 주일이고 당신 안에서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다른 감정들과 만나 함께 섞여서 업장이 되고, 기생충처럼 오랜 세월 동안 당신 안에 살면서 에너지를 파괴하고, 육체적으로 질병을 일으키고, 당신의 삶을 불행하고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를 기울여 그 감정을 느끼면서 스스로를 지켜보십시오.

비난이나 자기연민, 원망과 같은 불만스러운 마음의 유형에 매달려 있지 않은지 점검하십시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 마음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어떤 상황이나 조건을 용서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미래에 대해서도 용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용서란 불만을 버리고 슬픔을 떠나 보내는 것입니다.

일단 당신의 불만이 거짓 자의식을 강화할 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자연스레 그렇게 됩니다. 용서는 삶에 저항하지 않고 삶이 당신을 통해 살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과 괴로움을 느끼고, 삶의 에너지 흐름이 극도로 제한되며, 그 결과가 육체적인 질병으로 생기곤 합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용서하는 순간, 마음으로부터 힘을 받개 됩니다.

용서하지 않는 것은 마음의 본성이며, 마음이 만들어 내는 거짓 자아는 투쟁과 갈등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합니다.

마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당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십시오.

몸 안으로 들어가서 '존재'로부터 발산되는 활기찬 평화와 고요를 느끼십시오.

예수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에 먼저 용서하라" 고 했던 말의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