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15. 20:46ㆍ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미세한 의문(1)
앞 절(節)에서, 강의를 듣고 있던 사람이,
"어떻게 이 생명체와 무생물들의 우주가 어떤 속성도 없는 '그것'으로부터 창조될 수 있습니까?"
라는 의문을 제기했는데, 여기에 대하여 설명을 하겠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브라흐만은 영원하고 움직임이 없는데,
그 표면에서 환상의 실재하지 않는 거짓 모양이
마치 물위의 파문(波紋)들처럼 나타나 보여지는 것입니다.
근원적인 것, 절대적 실재인 파라브라만은 영원히 자유롭고,
완전히 모든 움직임을 넘어서 있습니다.
그 곳으로부터 미세해서 드러나지 않은 원초적 근본 환상(물라마야)의 존재가 생겨났습니다.
강의를 듣고 있던 청자(聽者)가 질문을 했습니다.
" 브라흐만은 하나이고, 형태도 없고, 자유롭고, 모든 활동을 초월해 있고, 변상(變相)도 없는데,
어떻게 그 안에서 환상의 모습이 나타날 수 있습니까?
브라흐만은 지속적이고 속성도 없는데 어떻게 거기서 어떤 욕구가 나올수가 있습니까?
속성이 없는 그 안에, 속성을 가진 어떤 것이 없이는 어떤 욕망도 나올 수가 없습니다.
원래부터, 속성을 가진 것이 아니기에,
브라흐만은 무속성(니루구나)이라고 부릅니다.
이 속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입니까?
무속성인 것에 속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음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자기에게는 어떤 속성도 없으며,
온갖 일을 행하면서도 또한 어떤 일도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다(爲無爲)라고 말합니다.
비천하고 무지한 사람들은 그 사람의 신적(神的)인 무위행(無爲行)의 놀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누가 파라브라만의 위대함을 알수 있겠습니까? 알수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비천하고 무지한 개인들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경전에서 말하는 내용을 무시하고 파라브라흐만의 위대함을 나름대로 설명하려고 애를 씁니다.
온갖 행위를 다 행하고 나서 속성없는 것이 무위자(無爲者)라고 과감에게 말합니다.
원래 속성이 없는 것 안에서는 어떤 행위도 없습니다.
행위하는 자(有爲者) 혹은 무위자(無爲者)는 누구입니까?
유위자(有爲者)와 무위자(無爲者)라는 생각은 전적으로 거짓입니다.
근본적으로 어떤 속성도 없는 그것에 어떻게 의지적인 행함(有爲行)이 있을 수가 있으며,
그리고 도데체 창조를 만들고자 하는 그런 욕구를 누가 가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신의 욕구이라고 말하지만,
속성이 없는 신이 어떻게 그런 욕망을 가질 수 있습니까?
이것을 어떻게 이해되겠습니까?
이 삼라만상을 누가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 일이 저절로 일어났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이 삼라만상의 창조란 신 없이 건설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만물이 신 없이 창조되었다면, 신을 위한 자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은 신이 부재(不在) 중이어서 찾을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신이 만물의 창조자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그가 속성(屬性)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보이며,
속성이 없이는 신의 개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만약 신이 근본적으로 무속성이라면, 누가 이 삼라만상을 만들었을까요?
행위자의 성질은 선천적으로 파괴될 수 있는 속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모든 생물과 무생물들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환상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거꾸로 된 논리인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환상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저절로 발생하거나 확산되었다고 말한다면,
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신이 스스로 존재하며, 속성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는 환상과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까?
이 말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창조의 과업이 전적으로 환상의 책임이라고 말한다면,
헌신자들을 고양시키는 신의 말씀이 어떻게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신은 없고, 오직 환상만 있다면,
환상의 해체에 책임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헌신자인 우리를 보호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모든 이야기에서, 환상이 스스로를 창조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만물의 주(主)님"만이 홀로 환상의 창조자이십니다.
그렇다면, 신은 무엇이며, 환상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제 이 모든 의문사항들이 자세히 설명되어야 합니다."
<* 맨 위에서 11번째 줄부터 여기까지가 강연을 듣고있던 제자의 질문 내용(미세한 의문) 입니다.>
강연하던 스승이
"지금 듣고 있는 사람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의를 집중해서 다음의 설명들을 들어 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위에서 견해가 다른 사람들의 다양하고 미세한 의문들이 제기되었습니다.
그것들 모두에 대하여 차근 차근 설명해 나가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이 창조물들을 만들고 확장시켰으며,
만약 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환상이 존재할 수 있었겠느냐? 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은 속성이 없는데 어떤 욕망을 품은 그런 무엇인가가 있겠으며,
환상은 저절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비실재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환상)이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으며,
환상은 처음부터 신의 힘(삭티)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만약 환상이 실재한다면, 어떻게 그것이 지혜 깨달음(Jnani)으로 해소될 수 있으며?,
단순히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깨달은 자의 입장에서 보면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환상)은 타고날 때부터 거짓인데,어째서 누구든지 영적인 수행을 해야만 하냐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에게 헌신하는 방편을 따르는 것이 환상에서 벗어나는 수단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환상은 비실재이며, 무지의 열로 인해 나타나 보인다고 말하며,
영적인 수행은 눈에 보이는 세계가 비실재하는 환상이라 것을 알도록 치유하는 약이라고 말합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적 수행이 이루어졌고, 수많은 의견들이 제시되어 혼란을 야기시켰습니다.
그리고도 여전히 환상은 버려지지 않았는데도,
왜 그것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걸까요?
요가와 베다의 지혜, 사스트라, 그리고 신화(푸라나스) 문헌에서는 모두 환상이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이들 많은 설명에서는 환상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환상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도 이 일에 대하여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그것이 비실재한다고 말할 때에, 그것은 더욱 실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진아 지혜가 없고 어떤 깨달은 성인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비실재하는 환상이 실재처럼 보입니다.
사람은 마음 속에 어떤 결심을 굳이면 그에 따라 결과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환상이란 거울 앞에 놓여진 것은 무엇이든지 비쳐져서 보여지는
거울 속의 반사상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이 오직 브라흐만일 뿐인데, 환상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고 말하죠?
마찬가지로, 버터 기름은 고체이든 액체이든 오직 버터 기름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체와 액체의 비유가 브라흐만에게 적용되기에는 부적정하며,
이런 용어로 말하더라도 변하지 않고 항상 하나만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모든 것이 브라흐만이라고 말하지만,
망상(妄想)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러한 이해는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신은 오직 홀로인데, 어떻게 '모든 것'으로서의 그런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가? 라고 말합니다.
확실히 '모든 것이 브라흐만이다'라는 경이로움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오직 '하나'만이 진실하기 때문에,
어떤 "다른 것(他)"도 가져 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브라흐만은 쉽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모든 것은 완전히 거짓이고 사라지지만,
브라흐만은 유일하게 남아 있고 실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런 말이 경전 내용에서 뒷받침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장신구들은 금일 뿐이기 때문에 차이가 없으며,
그것을 통합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불필요한 고생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절대본체)에 대하여는 어떤 비유를 사용한다해도 부족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사물에 대하여 어떤 개념을 덧붙여서 사용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비현현된 것(절대본체)에다 어떤 직유(直喩)를 붙여서 현상화된 것으로 비유해서 표현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녹아있는 액체 형태의 금을 본 후 장신구를 본다면,
그 장신구들은 모두가 단순한 금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금은 무겁고 특정한 노란 색의 특성을 지닌 뚜렷한 형태이기 때문에,
직유(直喩)하는 것으로는 브라흐만에게는 완벽하게 적용될 수가 없습니다.
직유는 모두 제한적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직유는 제공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바다와 파도가 다르지 않다는 직유는 종종 묘사되고 있습니다.
어떤 직유는 가장 적절하고, 어떤 것은 중간급이며, 어떤 것은 열등합니다.
하나의 직유는 명확성과 이해력을 가져오고, 또 다른 직유는 파괴되고 의심만 더욱 증가시킵니다.
사실은, 바다와 파도의 직유조차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움직이지 않는 브라흐만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바다 그리고 그 파도와 동일시 될 수 있습니까?
환상의 마법으로 된 대상물들은 실재(實在)로 간주될 수가 없습니다.
환상의 마법은 단지 상상일 뿐입니다.
그것은 다양한 형상으로 보이지만 항상 모두가 브라흐만일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많은 사람들이 서로 논쟁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이 남아 있습니다.
자, 이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음에 나오는 설명을 들어 보기 바랍니다.
환상의 비실재는 이해되지만, 브라흐만 속에서는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비록 우리가 그것이 무속성(無屬性)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이 말은 기본적으로 거짓말입니다.
실재하지 않는다거나 사실이 아니라는 말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인데,
누가 무슨 짓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속성이 없는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행위자는 본질적으로 형태가 없으며, 그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으로써 간단하게 듣는 사람의 의심이 해소 될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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