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3. 23:09ㆍ성인들 가르침/바시슈타 요가
라마여 !
자유(목샤)의 영역으로 가는 길 입구에는 네 문지기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자기 반조(自覺), 탐구심, 만족, 좋은 만남입니다.
현명한 구도자는 이 네 가지, 아니면 최소한 그들 중 하나만이라도 우정을 부지런히 길러 나가야 합니다.
바시슈타는 계속하였다.
라마여 ! 의심과 베일과 마음의 불안 없이 순수한 가슴과 수용적인 마음으로 해방의 본질과 수단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십시오.
왜냐하면 지고의 존재를 깨달을 때까지 삶과 죽음이라는 두려운 고통은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지의 삶이라는 무서운 뱀을 지금 여기서 정복하지 않는다면, 그 뱀은 현재 뿐 아니라 앞으로 올 수많은 삶에서 끝없이 고통을 만들 것입니다
이 고통은 무시할 수 없지만, 내가 전하는 지혜에 의해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오 라마여!
반복되는 삶(삼사라)의 슬픔을 극복한다면,
그대는 여기 이 세상에서 브라마나 비슈누 같은 신으로 살 것입니다.
환영이 사라지고 자기 본성의 탐구에 의해 진리를 깨달았을 때,
마음에 평화가 깃들고 가슴이 지고의 진리로 도약하며,
마음의 모든 혼동된 생각의 물결들이 가라앉고,
중단없는 평화가 흐르고 , 가슴이 궁극의 희열로 충만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가슴 속에서 깨달을 때,
바로 이 세상이 희열의 거주지가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얻을 것도 피할 것도 없습니다.
그는 삶의 결점들로 더렵혀지지 않고, 삶의 슬픔에 닿지 않습니다.
보는 사람 눈에는 그가 왔다가 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습니다.
종교적 의무조차도 불필요해집니다.
그는 힘을 잃은 과거의 경향성들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은 불안을 버리고, 그는 본성인 지복에 듭니다.
그와 같은 지복은 다른 수단이 아닌 참나 지식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를 참나지식에 전념해야 합니다.
오직 이것만이 자신이 해야 할 의무입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삼사라(윤회의 삶)라고 하는 이 무서운 윤회의 바다를 건너려면,
영원하며 변치 않는 것에 의지해야 합니다.
오, 라마여! 마음이 영원 속에 안주하여,
그래서 완전히 스스로 조절되고 평화롭다면,
그만이 사람들 중에서 최고의 사람입니다.
그는 쾌락과 고통이 서로를 좇고 소멸시킨다는 것을 알며,
그런 지혜 속에 자기 제어와 평화가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자는 불타는 집에서 잠자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서 이 영원한 지혜를 얻는 사람은 삼사라에서 자유로울 것이며,
무지 속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불변의 진리는 없을 수도 있다고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설사 그런 진리가 없다해도,
삶의 본질에 대한 탐구로 해를 입지 않습니다.
영원을 추구하는 것은 삶의 변화들에서 오는 고통을 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진리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아는 것으로써 자유로워집니다.
영원은 의식과 의례를 통해서도, 성지 순례를 통해서도, 부(富)를 통해서도 얻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정복과 지혜의 배양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신, 악마, 반신반인, 인간 등의 모든 존재는 걷든지, 넘어지든지 간에 지혜의 결실인 마음의 정복과 자기 반조를 항상 추구해야 합니다.
마음이 평화롭고, 순수하며, 잔잔하고, 미혹이나 환영에서 자유롭고, 얽힘이 없고,
갈망에서 자유로우면, 그것은 어떤 것도 갈망하거나 거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자기반조(자각), 즉 마음의 정복이며,
앞서 말했던 자유로 가는 네 문지기 중의 하나입니다.
선하고 상서로운 것은 자기 반조(자각)에서 나옵니다.
자기 반조(자각)는 모든 악을 몰아냅니다.
이 세상과 천국에서 얻는 어떤 이득이나 즐거움도 자기 조절(자각)의 지복감에 비할 수 없습니다.
자기 반조(자각)를 경험하는 지복감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습니다.
모든 존재가 자연스럽게 그를 신뢰합니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 악마나 악귀까지도 그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 라마여!
자기 반조(자각)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질병에 대한 최고의 치료제입니다.
자기 반조(자각)가 있을 때 먹는 음식은 더 맛있고,그렇지 않을 때는 쓴맛이 납니다.
슬픔은 자기반조(자각)이라는 갑옷을 입은 사람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유쾌한 것과 불쾌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듣고, 만지고, 보고, 냄새맡고, 맛볼 때도
들뜨거나 의기소침해지지 않는다면, 자기반조(자각)가 된 것입니다.
즐거움과 고통의 감정을 조절하고 모든 존재를 동등한 시각에서 본다면, 자기반조(자각)이 된 것입니다. 모든 것 사이에서 살지만 그것들에 영향받지 않고 잠잘 때조차 우쭐대거나 미워하지 않는다면,그는 자기반조(자각)이 된 것이다.
- 스와미 벤까떼샤난다 지음, 김병채 옮김 <비시슈타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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