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슈타 요가] 창조에 관하여(3)

2023. 6. 16. 22:05성인들 가르침/바시슈타 요가

 

라마가 물었다.

오, 성스러운 현자이시여! 마음의 원천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이 일어납니까?

이것에 대하여 저를 자비롭게 깨우쳐 주십시오.

 

바시슈타가 답하였다.

우주의 소멸 후 다음시대가 오기 전에,

온 대상적인 우주는 완전한 평온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 후에 영원하며 태어나지 않고 스스로 빛나는 지고한 신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며 전능합니다.

그는 생각할 수 없으며 묘사할 수 없습니다.

아뜨만 등의 여러 이름으로 알려졌지만, 이것들은 견해일 뿐이고, 진리는 아닙니다.

그는 존재하고 있지만 세상은 그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는 또한 몸 속에 존재하고 있으면서도 멀리 있습니다.

셀수 없는 광선들이 태양에서 나오듯이,

비슈누와 같은 수많은 신들이 그로부터 나타납니다.

바다 표면에서 물결이 일어나듯이, 무한한 세상들이 그로부터 나옵니다.

그는 우주적 지성이며, 무수한 지각의 대상들이 그 속으로 들어 갑니다.

그는 빛입니다. 참나와 세상은 그 안에서 빛납니다.

그는 창조된 모든 것의 특징을 부여합니다.

신기루가 반복해서 나타나고 사라지듯이, 그 안에서 세상들이 나타나고 사라집니다.

그의 형태(세상)는 없어지나, 그의 참나는 변치 않습니다.

그는 모든 것 속에 거주합니다.

그는 가려져 있지만 그는 넘쳐흐릅니다.

그의 단순한 현존만으로도 이 외형상의 활력이 없는 물질적 세상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은 늘 활동적입니다.

그는 모든 곳에 존재하며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그의 생각들이 물질화 합니다.

오,라마여! 이 지고한 참나는 지혜 아닌 다른 방법에 의해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종교적 수행들을 하는 것으로는 그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 참나는 멀리 있는 것도,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접근하기 어려운 것도, 먼곳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 안에서 희열(지복)의 경험으로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자신 안에서 깨달아 집니다.

고행과 금욕, 자선과 종교적 맹세들을 지키는 것으로는 신에 대한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성스러운 이들과의 만남, 참된 경전에 대한 공부는 도움이 됩니다.

그것들은 무지와 미혹을 물리치기 때문입니다.

이 참나만이 실재라는 것을 확신할 때,

그는 슬픔을 넘어 해방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고행이나 금욕들은 스스로 부과한 고통입니다.

다른 이들을 속여서 얻은 부를 가지고 행한 자선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것들은 자선의 진정한 결실들을 없앨 뿐입니다 !

종교적 의식들은 허영심을 증가시킵니다.

신에 대한 무지를 처방하는 유일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감각적 쾌락을 향한 갈망을 확고하고도 단호하게 버리는 것입니다.

 

라마가 물었다.

이 신은 어디에 있으며, 제가 어떻게 그분에게 갈 수 있습니까?

 

바시슈타가 말했다.

신이라고 묘사되는 그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는 몸 안에 거주하고 있는 지성입니다.

비록 우주는 그가 아니지만, 그는 우주입니다.

그는 순수한 지성입니다.

 

라마가 말했다.

어린 소년조차 신은 지성이라고 말합니다.

이 특별한 가르침을 이해하기에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시슈타가 답했다.

아, 순수한 지성을 대상적 우주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지각력이 있는 것이 우주이며, 지각력이 있는 것이 영혼(지바)입니다.

지각력이 있는 것은 인식 가능한 것을 만들며 그래서 슬픔에 빠집니다.

인식 가능한 것을 멈출 때, 인식할 수 없는 것 즉 순수한 지성을 향한 주의의 흐름이 있게 됩니다.

그때 완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슬픔 너머로 갑니다.

인식 가능한 것의 멈춤이 없이는,

그 사람의 주의는 인식 가능한 것으로부터 방향을 바꿀 수 없습니다.

단지 지바(개인)가 이 삼사라 속에 관련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고한 신이 알려지면, 슬픔은 끝납니다.

 

라마가 물었다.

성스러운 분이여 ! 신에 대하여 설명해 주십시오.

 

바시슈타가 답했다.

우주가 존재하기를 멈출 때 그 안에 나타나는 우주적 지성이 신입니다.

신 안에서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중단되는 듯이 보입니다.

신은 공(空)입니다. 그 안에 우주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신 안에서는 우주적 의식조차도 신처럼 가만히 서 있습니다.

 

라마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면 신을 깨달을 수 있으며, 우리가 실재한다고 여기는 우주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깨달을 수 있습니까?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하늘의 푸름이 실재하지 않듯이,

우주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확고히 자리 잡을 때만 신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원론은 단일성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이원론은 이원론을 암시합니다.

창조물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때만 신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88)

 

-스와미 벤까데사난다 지음, 김병채 옮김 <바시슈타 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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