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15. 22:05ㆍ성인들 가르침/바시슈타 요가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지각이나 인지의 대상을 이해하고자 하므로 의식은 살아 있는 영혼인 지바가 되며,
외적으로는 반복되는 역사인 삼사라에 관련됩니다.
아는 자인 의식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인지의 대상에 대한 거짓 개념이 멈출 때,
지바는 평온을 되찾습니다.
규칙적이거나 불귀칙적인 방법으로, 하나였던 마하지바는 개체적인 지바가 됩니다.
그 지바는 이전의 삶으로부터 이원성과 개체성의 감각을 이어 받습니다.
설명이 불가능하며 늘라운 방법으로 이 무한히 다양한 이름과 형태(몸)를 낳는 의식의 신비로운 힘을 자아라 합니다. 같은 의식이 자신을 음미하거나 경험하기를 바랄 때, 의식은 알 수 있는 우주가 됩니다. 미숙한 사람만이 이것 안에서 실제적인 변형이나 현혹된 겉모습을 봅니다.
의식만이 존재하며 다른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물입니다. 파도들은 물입니다.
이 파도가 바다의 표면에서 유희할 때, 물결이 만들어 집니다.
우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다가 물결의 개체성을 바라보고 인식하듯이,
의식은 개체적인 것들을 독립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아라는 것이 생겨납니다.
이 모든 것은 의식이 지닌 신비한 힘의 놀라운 유희입니다.
그것이 우주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자아가 존재하게 될 때, 의식과 다르지 않은 자아는 이 우주를 구성하는 여러 원소들에 대한 개념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그 원소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 속에서 다양성이 일어납니다.
오, 라마여 !
지바와 그 자신의 원인에 대한 생각조차도 버림으로, '나'와 '너'라는 모든 거짓 개념들을 없애도록 하십시오. 이 모든 것이 사라질 때, 실재와 비실재간의 중앙에 있는 진리를 깨달을 것입니다.
이 모든 '구름'이 없어질 때, 하나의 분리할 수 없는 전체가 빛납니다.
그것은 결코 빛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실재이며 무엇이 거짓인지를 모릅니다 !
이 의식은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알려지기를 원할 때, 그것은 우주로써 알려집니다.
마음, 지성, 자아, 다섯 원소들, 새상 등 이 모든 셀 수 없는 이름들과 형태들은 오로지 의식일 뿐입니다. 사람과 그의 삶과 일은 구별할 수 없습니다.
정적인 모습과 동적인 모습도 그렇습니다.
지바와 마음 등은 의식 안에 있는 모든 진동들입니다.
바시슈타가 계속 말했다.
그 의식은 "나는 잘릴 수 없다. 나는 태워질 수 없다. 나는 젖을 수 없다. 나는 건조될 수 없다.
나는 영원하며, 모든 곳에 있으며, 변함이 없고, 움직임이 없다."라는 것을 알면서, 여기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논쟁하고 혼한시키기를 좋아 합니다. 그들은 정말로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오, 라마여 !
우리는 혼란 너머에 있습니다.
무지하고 미혹된 사람들은 변화없는 것 안에서 변화를 상상합니다.
하지만 참나 지식을 지닌 현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의식 속에서 보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 라마여 !
의식만이 자신의 내부에서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않고 공간으로서 퍼져 있습니다.
그 후에, 의식은 움직임의 성질을 지닌 바람으로 나타납니다.
그 다음에 의식은 불로, 물로, 광물성을 가진 흙으로, 살아 있는 존재의 몸으로 나타납니다.
외적 대상에 대한 개념을 없애 버리면, 참나 지식이 일어납니다.
의식 안에 활동이 없고 무지가 있을 때, 깊은 잠의 상태가 옵니다.
그러므로 의식만이 늘 존재해 있기 때문에, 공간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세상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열이 불에, 흰색이 조개 껍질에, 움직이지 않음이 산에, 유동성이 물에, 달콤함이 사탕수수에, 버터가 우유에, 밝음이 조명에, 기름이 겨자씨에, 흐름이 강에, 단 것이 꿀에, 장신구가 금에, 향기가 꽃에 있는 것처럼, 우주는 의식에 있습니다.
의식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존재합니다. 세상은 의식의 몸입니다.
어떤 분리도, 어떤 차이도, 어떤 구별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주는 실재한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실재하는 이유는, 우주자신의 실재인 의식이 실재하기 때문입니다.
실재하지 않는 이유는, 의식과 별개로는 우주가 우주로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의식은 나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분이나 가지가 없습니다.
의식 안에서 산, 바다, 땅 , 강 등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의식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따라서 의식 안에는 부분들도 가지들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주 등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의 원인인 의식 역시 실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말은 의미없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경험에 반대되는 것이며,
의식의 존재는 부인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삼일째 저녁이 되었고, 모임은 해산되었다.)
-스와미 벤까떼사난다 지음, 김병채 옮김 <바시슈타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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