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마음은 모두에게 하나인가, 아니면 각자가 다른가 ?

2022. 12. 8. 22:26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내면마음은 모두에게 하나인가, 아니면 각자가 다른가 ?

 

"내면의 마음(antahkarana)은 모두에게 하나인가요, 아니면 모든 사람이 다른 것인가요?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면의 마음이 전체가 하나인지, 아니면 모든 사람이 다른지에 대해서, 강의를 듣는 청자(聽者)가 물었습니다.

이제 이에 대한 답변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의 내면 마음은 하나입니다.

분별력을 사용하면 이것에 대한 체험을 할수 있고,

의심에서 벗어남으로써 확신을 주는 이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에 대한 답변입니다."

 

강의를 듣고 있던 청자(聽者)가 연사(演士)에게 말했습니다.

" 만약 내면마음이 모든 사람에게 하나라면, 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약 하나라면, 왜 음식을 먹을 때 한 사람이 만족하면, 다른 모든 사람도 만족하지 않거나,

왜 한 사람이 평안할 때에 모두가 평안하지 않으며, 한 사람이 죽으면 왜 모두가 죽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 행복할 때 다른 사람은 슬퍼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면마음의 하나됨을 식별하는 방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감정과 느낌이 다 다르고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마음과 맞지 않기 때문에,

내면 마음이 '하나'라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만약 내면 마음이 하나라면, 한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비밀을 지키면서 숨길 수 없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면 마음이 하나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의견이 서로 어긋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만약 뱀이 사람을 물러 오면 그 사람은 겁에 질려 도망칩니다.

내면 마음이 하나라면 그런 적개심이 없어져야 합니다. "

이렇게 강의를 듣는 청자(聽者)가 의문을 표명했습니다.

 

연사(演士)가 말했습니다

"초조해 하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려서 설명을 잘 들어 보기 바랍니다. "

 

내면 마음은 지혜(의식,자각)를 의미합니다.

지혜는 "앎" 또는 "자각하는 것(의식하기)"의 성품이며,

이 앎(지혜) 속에서 신체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의식이 있는 뱀이 물려고 오면, 의식이 있는 사람은 알아채고 도망갑니다.

양쪽에서 작용하는 것이 앎(지혜)임을 확인해 보십시오.

 

만약 앎(지혜)의 작용을 살펴보면, 양쪽에서 작용하는 것이 내면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여러분은 앎(지혜)의 형태 속에서 이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내면마음은 내면의 형태 속에서는 하나입니다.

이것은 모든 생명체에게 아는 것 또는 자각되는 성질이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이 보는 눈으로, 모든 사람이 맛보는 혀로, 듣기, 만지기,

냄새맡는 작용도 모두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공통적입니다.

 

세상의 모든 동물,새, 벌레,개미, 그리고 다른 생물들은

동일한 앎(지혜)이나 자각(自覺)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물은 차갑고, 모든 사람에게 불은 뜨겁다는 사실은

내면 마음만이 아는 능력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모두 서로 다른 육체의 다양한 성향에 따른 것이지만,

감각에 대한 앎은 내면 마음의 자각 기능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의 내면은 하나이며, 이것은 명확하게 확인됩니다.

이것의 경이로움은 모든 곳에서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 이 의문이 해소되었으니, 이 문제에 대하여 더 이상 추측이 없어야 합니다.

알려지는 모든 것들은 하나의 내면 마음에 의해 알려집니다.

 

모든 존재가 음식을 먹고, 두려움으로 숨는 것을 알고,

도망가는 것을 아는 것은 앎(지혜)을 통해서 입니다.

 

벌레와 개미에서, 브라흐마 신과 다른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동일한 하나의 내면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체험을 통해서 이 사실의 경이로움을 아십시오.

 

크든 작든 불은 불이며, 소량이든 많든 물은 물입니다.

무언가 적다거나 많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내면 마음의 앎(지혜)의 공통적인 기능입니다.

 

앎(지혜)의 정도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덜하고 어떤 곳에서는 더 많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앎(지혜)의 본질은 동일합니다.

이 앎의 성질없이 움직이는 존재는 없습니다.

 

앎(지혜)은 내면마음을 의미합니다.

내면마음은 비슈누 신인 창조물의 유지자인 의식의 일부라는 것을 아십시오.

이 앎(지혜)을 통해서 비슈누 신이 생명체를 보호합니다.

 

지혜(앎)가 없으면 생명체는 파괴됩니다.

지혜(앎)의 결핍은 타모구나(타마스)라고 불리우는 무지(無知)의 특성입니다.

이것은 타모구나의 도움으로 파멸시키는 시바 신(루드라)의 작용입니다.

 

앎(지혜)과 무지(無知)의 혼합은 라조구나(라자스)의 성질입니다.

생명체를 탄생케 하는 것은 앎(지혜)과 무지의 혼합입니다.

 

앎(지혜)은 행복을 낳고 무지는 슬픔을 낳습니다.

출산 후 행복과 슬픔은 피할 수 없습니다.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알지 못하는 지성(知性)은

창조주 브라흐마 신의 신체 기능임을 이해하십시오.

그 물질적 육체의 창조자는 라조구나 또는 브라흐마 신입니다.

 

이것이 창조, 유지, 파괴입니다.

나는 이 강연에서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이것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설명한 내용은 자신이 작접 체험을 통해서 스스로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와의 대화>

 

 

 

 

'성인들 가르침 > 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섯 가지 해체(解體)  (0) 2022.12.15
현상계의 씨앗에 대하여  (0) 2022.12.13
진아의 상태  (0) 2022.12.06
진아에 대한 의심의 제거  (0) 2022.12.02
육체가 끝나게 되면  (0) 2022.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