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의 상태

2022. 12. 6. 23:15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진아의 상태(속성과 형태)

 

신전(神殿) 안에는 신(神)의 형상이 있고, 신전 지붕 꼭대기에 까마귀가 앉아 있다면,

까마귀가 신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왕궁에서 회의가 열리는데 원숭이가 기둥 꼭대기에 올라타고 앉아 있으면

원숭이는 회의 참석자보다 우월하다거나 현명하다고 간주되지 않을 것입니다.

 

브라민 사제들이 목욕을 하러 가서 학이 계속 물 속에 서 있다가 떠나지만,

학이 브라민보다 낫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브라민들 중에 어떤 이는 다른 사람들보다 행동과 일상이 더 잘 훈련되어 있고,

개는 가만히 앉아서 잘 행동하지만, 개가 브라민보다 낫다고는 말하지 못합니다.

 

브라민은 먹잇감의 표적에 초점을 맞추는 고양이처럼 대상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똑같지 않을 수 있지만,

누가 브라민보다 고양이가 더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브라민은 차별을 알아 차리고 분별할 수 있지만,

파리는 구별하지 않고 어떤 곳에도 착지(着地)하지만,

파리가 진아 지혜를 깨닫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읺을 것입니다.

 

가난하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은 비싸고 적절한 옷을 입을 수 있는 반면에,

진아 깨달음을 실현한 사람은 옷을 거의 입지 않거나 아예 입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지만,

그의 신분은 여전히 현명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영적 성취에 대해 공개적으로 보여주거나 큰 쇼를 할 수 있지만,

그 모든 행동은 속세에서 진행되는 일일 뿐입니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내면의 성취입니다.

 

사람은 명예와 명성을 얻을 수도 있지만, 내면에서는 깨어 있지 않습니다.

신을 찾아내지 못하는 사람은 자살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다양한 신을 숭배하는 자는 신의 영역에 도달하고,

조상을 숭배하는 자는 조상의 영역에 도달하며,

귀신을 숭배하는 자는 그들의 영역에 도달할 것입니다.

 

숭배하는 방식이 그들이 성취할 거주처를 결정합니다.

속성 없는 것(니르구나)을 숭배하면 속성이 없는 자기 자신이 됩니다.

 

속성없는 것을 어떻게 예배합니까?

하나가 지적되어야 하는데, 속성 그 자체가 완전히 없습니다.

어떤 '다른 것'도 허용하지 않고 완전하게 속성이 없는 사람은 진실로 축복받습니다.

 

궁극적인 성취는 신(하나님)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진정한 진아임을 보기 위해서는 분별력을 활용해야 합니다.

 

깊은 명상과 탐구를 하게 되면 신은 형태가 없고,

자기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이든 간에 환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그다'라는 소함(Soham)의 강력한 결의를 가지므로써.

이 자각 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됩니다.

 

지금은 추측이나 짐작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실재(實在)는 지금 현재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 있습니다.

찾을 수 있는 몸에 국한된 느낌은 없습니다.

 

성취된 사람(Siddha)은 더 이상 정신수행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있다고 말하는 것은 상상일 뿐입니다.

해방된 사람에게는 속박같은 그런 것은 없습니다.

 

영적인 수행으로 성취 될 모든 것은

이미 자신 안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열망자"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도공에게 왕국이 주어진다면,

어째서 그는 더 이상 (항아리를 운반하는) 당나귀를 돌볼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

왜 그는 도공의 일을 계속하고 싶어해야 합니까?

 

이와 비슷하게, 성취해야 할 모든 것이 여러가지 치유법과 정신수행을 통해서 이루어졌을 때,

더 이상 정신 수행을 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자신 스스로가 실재(實在)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더 이상 무엇을 성취해야 하며,

정신적인 수행으로부터 무슨 결실을 얻겠습니까?

무슨 이유로 어떤 특정한 영적 수행의 길에서 불필요하게 헤메야 되겠습니까?

 

몸은 오대 원소로 이루어져 있고,

개인존재는 브라흐만의 일부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절대 진아인 파라마트만과 확고한 하나됨을 깨닫고,

그것이 되십시오.

 

표면적으로 보면 "나'라는 느낌이 보입니다.

그것을 세밀하게 탐색해보면 찾을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원소들을 분석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다른 것으로 사라지는지를 관찰함으로써

순수한 진아만이 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아는 그 자체의 진실한 성품으로 존재합니다.

개인은 또한 개인의 자아로써 존재하고,

환상은 환상으로써 전체에 펼쳐져서 존재합니다.

 

이런 식으로 만물이 존재하며, 사람도 또한 스스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 속에 내재해 있는 실재(實在)를 조사하고 탐구하는 사람만이

진아 지혜를 가진 진인(Jnani)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만약 모든 것을 알면서도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이러한 유형의 앎(지식)은 마음의 특정한 상태나 정신적인 태도 속에 있는 단편적인 지식입니다.

 

그 앎(지식)이 태도나 마음 상태로만 보여질 때.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현시되는 모든 것은 변화의 대상이며 모두가 완전히 사라지게 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남아있는 것은 어떤 속성도 없는 '그것'입니다.

이것을 깊히 분석해서

이것이 자신임을 깨닫는 것이

이해를 넘어서 있는 절대진리의 증표입니다.

 

분별력으로 사람은 실재(實在) 그 자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은 이미 그가 성취하려고 노력했던 바로 '그것'입니다.

 

만약 거지였던 사람이 왕이 되면 왕처럼 행동합니다.

그는 거지일 때만 거지처럼 행동합니다.

 

베다와 여러 가지 경전과 신화 책에 관한 많은 설명이 있습니다.

"성취한 사람(Siddhas)"과 진인(Jnanis)은 그들의 뜻을 깨닫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무엇이 본질이며, 무엇이 비(非)본질인지를 깊히 탐구해서 자신이 바로 브라흐만의 성품임을 깨달았을 때,

어떤 적절하거나 또는 부적절한 행동을 할것인지

혹은 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생기지 않습니다.

 

농사꾼은 왕의 명령으로 두려워하게 되지만,

왕이 되면 가난과 함께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베다 경전은 자신의 설명에 따라서 어떻게 취해야 합니까?

사스트라는 경전의 과학을 어떻게 공부하겠습니까?

순례지는 그 자신을 어떻게 방문할 수 있습니까?

 

불멸의 감로는 스스로를 어떻게 마실수 있습니까?

무한함이 무한을 어떻게 볼 수 있으며, 신이 어떻게 신이 되려고 노력합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평온함이 어떻게 평온하지 않음을 버릴 수 있습니까?

항상 무속성(無屬性)으로 있는 자가 어떻게 무속성을 깨버릴 수 있겠습니까?

항상있는 사람의 참된 본성이 어떻게 스스로 그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까?

 

안약이 어떻게 안약에 적용될 수 있습니까?

돈이 어떻게 돈을 벌수 있습니까?

광명(빛)이 어떻게 그 자체를 경험할 수 있습니까?

 

정신수행이 어떻게 스스로 수행할 수 있습니까?

명상의 대상이 어떻게 스스로 명상할 수 있습니까?

무심(無心)이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습니까?

 

<스승과 제자와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