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각과 욕망들은 과거에 속한 것들이다.

2022. 6. 14. 22:22성인들 가르침/슈리 푼자

슈리 푼자 : 그냥 침묵하십시오. 이 방법 밖에 없습니다. 침묵하지 않고는 어디에서도 평화를 찾을 수 없습니다. 활동과 생각은 평화를 주지 않습니다. 

 

질문자 : 저는 과거에 겪었던 경험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즉 제몸의 도처에 있는 에너지, 강력한 희열감 등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앉아 있으면서도 이 과거의 기억 때문에 그와 같은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한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느낌은 "만약 그것이 이와 같지 않다면 진짜일리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제가 침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저는 이 세상의 어떤 것, 극적이면서 실체적인 어던 것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슈리 푼자 : 어떤 것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기대는 마음이 계획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 마음은 그것을 만족시키거나 경험하고 싶어 하면서 그 계획을 쫓아갑니다. 이런 일이 계속 될 때, 마음은 조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마음을 침묵시켜야 합니다. 이 말은 마음 속에서 기대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이 기대는 어디서 비롯됩니까?" 그 근원으로 돌아가 보십시오. 

기대를 가졌지만 어떤 만족도 어떤 평화도 얻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기대를 가지는 것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몇분간의 시간을 내어 그 기대가 어디서 오는지 알아보십시오. 그 근원이 무엇입니까? 

만약 당신이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을 때, 또는 그 기대를 충족하고자 할 때 밖에서 만족을 찾을 수 없다면,

안을 들여다 보고 그것이 일어나는 곳을 찾으십시오. 그것을 찾으려고 하십시오. 밖으로 내달리기보다는 밖으로 내달리는 마음을 붙잡아 그 근원으로 데리고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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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 : 빠빠지, 생각이 없다면 욕망이 있을 수 있습니까? 생각이 없는 욕망이 있습니까? 

 

슈리 푼자 : 생각은 당신을 외부의 대상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모든 생각은 대상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주체인 '나'는 하나의 대상인 생각을 생각합니다. 당신이 생각을 하게 되면,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바로 성립됩니다. 이 과정에서 각 대상은 과거에 속하는 어떤 것이 됩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당신 자신의 실재가 아닙니다. 

자유를 갈망하십시오. 그러면 그 갈망이 당신을 생각 없는 곳으로 데려 갈 것입니다. 

 

질문자 :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제 안에 숨겨진 욕망의 씨앗이 있을 때 제가 그 욕망의 대상을 본다면, '나는 그것을 원한다'는 생각이 즉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생각과 욕망이 함께 무의식적으로 모르는 사이에 일어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슈리 푼자 : 바로 그것이 제가 말하려는 것입니다. 모든 생각들과 욕망들은 과거와의 관계를 만들어 냅니다. 생각은 과거의 기록인 기억에서 가져온 대상들에 대한 집착입니다. 당신은 과거를 상대로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주체인 당신은 당신이 과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들인 욕망의 대상들을 항상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에 "나는 자유롭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십시오. 아주 강렬하게 그것을 원하십시오. 

그러면 주체도, 객체도,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질문자 : "나는 자유롭고 싶다"라는 이 생각은 저의 내부에서 발아하여 자릴 수 있는 씨앗과 같습니까? 

 

슈리 푼자 : 자유롭고 싶다는 이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습니까? 몸의 내부 혹은 몸의 외부에도 '나'는 없습니다. 의사가 부검할 때, 그는 몸 안에서 '나'를 찾아내지 못합니다. 당신이 몸의 엑스선 사진을 찍어도, 당신은 몸 안 그 어디에도 '나'를 찾을수 없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몸이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내부'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정으로부터 또한 몸의 내부에 틀림없이 '나'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 몸은 누구의 것인가?"라고 질문함으로써 이러한 추측들에 질문을 한다면, 당신은 자신에게 "그것은 나의 것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물건들을 소유하고 있는 '나'는 재산들에 대한 소유권을 갖기 전에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까? 이 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몸이 출현하기 전에 '나'가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입니다. 

만약 몸이 있기 전에 '나'가 존재했다면, 그것은 몸이 태어날 때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몸의 탄생으로 생기는 생일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가 특정한 날에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이 '나'를 탐구하십시오. 

'나'가 외부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지금쯤 발견되었을 것입니다. 

탐험가들이 모든 곳을 다녀왔으며, 심지어 달에도 갔다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디에도 '나'를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내부에서 '나'를 찾아봤지만, 아무도 거기에서 또한 그것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왜 찾지 못했을까요? 

왜냐하면 그것은 내부나 외부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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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 푼자 : 베다들은 수천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이라고 합니다. 

'베다'라는 말은 지식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들은 지식의 책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베다 조차도 지식은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라 말합니다. 

베다에서는 '네띠-네띠', 즉 '이것이 아니다. 이것도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지식이 어떤 것이라고 하지만, 베다들은 진리란 말로 할 수 없는 어떤 것임을 인정합니다. 

 

질문자 : 도덕경의 시작부분에서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말로 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다."

 

슈리 푼자 : 진리는 언제나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한 열망을 할 뿐, 그것이 뭐라고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 것을 얻는다든지, 획득한다거나 성취하려는 뜻을 품어서는 안되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왜 안된다는 것일까요? 우리가 얻는 이러한 것들은 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소유물이 되지만, 언젠가는 잃게 될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얻는다면, 이것은 그 획득이 있기 이전에 획득이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그러한 확득이 과거의 어떠한 시점에서 없었다면, 그 획득은 소멸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언젠가 당신을 떠나 멀리 가버릴 것입니다.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에도 늘 존재하는 텅 빔, 바로 이것이 영원한 진리입니다. 

이것이 지식이며, 참지식입니다. 

다른 종류의 지식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읽는다든지 이해하며 실행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들은 참지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있고, 알 수 있고, 획득할 수 있는 이 모든 것은 진리가 아니기에, 그것들을 상관말고 그대로 두십시오. 진리는 그 외의 다른 어떤 것입니다. 

 

질문자 : 지고의 헌신을 성취하는 것은 노력을 통해서 가능합니까? 아니면 전혀 노력을 하지 않음으로써 가능합니까?

 

슈리 푼자 :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모든 종류의 노력을 다 버리십시오. 이러한 모든 유형의 노력들이 당신을 떠날 때, 어떠한 달성이나 어떠한 성취도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빠빠지와의 삿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