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롭다'라는 햇불을 들고 비춰보라

2022. 5. 15. 13:29성인들 가르침/슈리 푼자

질문자 : 욕망을 가지지 않는 것이 생각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욕망들이 없는 곳에 도달하면 생각들이 떠오릅니까? 아니면 생각들이 없어집니까? 

 

슈리 푼자 : 생각 그 자체는 욕망입니다. 생각은 어떤 것에 대한 이전의 욕망 때문에 일어납니다. 

욕망과 생각은 함께 일어납니다. 

 

질문자 : 추상적인 사고는 어떻습니까? 

 

슈리 푼자 : 추상적인 사고란 어떤 것입니까? 추상적인 사고란 " 나는 니르바나이다. 나는 생각이 없다. 나는 자유롭다"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추상적인 사고입니다. 추상적인 사고란 생각의 없음입니다. 생각이 없는 상태가 추상적인 사고입니다. 그러면 왜 생각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질문자 : 당신께서는 "발자국들을 남기지 말라" 하셨고, 저는 그 말씀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살아가는 올바른 완벽한 길인 것처럼 들립니다만, 이미 존재하였던 발자국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 기억은 그러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슈리 푼자 : 그렇습니다.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이러한 니르바나의 세상을 동경하지 않습니까? 그러한 동경이 당신 손에 있는 촛불, 당신 손에 있는 불꽃, 당신 손에 있는 횃불이 되도록 하십시오. 

'나는 자유롭고 싶다'는 햇불이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한 욕망들로 가득 차 있는 방으로 들어가면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질문자 : 그것들을 보게됩니다. 

 

슈리 푼자 :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이 햇불은 단지 보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또한 태우기 위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욕망을 본다면, 그것은 탈 것입니다. 계속 하십시오. 그렇게 하십시오. 

기억의 이 방안에서 볼 수 있는 어떠한 욕망과 좋아하는 어떠한 생각이라도 집어 들고서 그것을 앞에 놓고 바라보십시오. 서두르십시오! 당신은 햇불을 쥐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기억 속에 있는 것을 비추십시오. 

제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불타는 햇불을 손에 들고 있을 때, 당신 앞에 있는 생각은 불이 붙습니다. 생각은 불이 붙어 타게 되는 것이지요. 당신 앞에 있는 것을 보십시오. 무엇이 보입니까? 

 

질문자 : 욕망 그 자체가 보입니다. 햇불로 비추니 그것이 보입니다. 

 

슈리 푼자 : 당신은 아직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설명을 하갰습니다. 햇불을 손에 쥐십시오. 생각이나 욕망을 앞에 두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보십시오. 제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을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손에 햇불을 쥐고, 마음 속에서 당신 앞에 떠오르는 대상에 그 햇불을 비추십시오. 만일 그것이 수건이라면 "수건이 보입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앞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그냥 그것을 말하십시오. 추측을 하라거나 어떠한 철학적인 답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당신이 불평하고 있던 기억의 저장고 속으로 햇불을 비추어 무엇이 보이는지를 말해 달라는 것 뿐입니다. 당신은 이것을 마치 풀어야 할 퍼즐인 양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당신에게 보이는 것을 말해 달라는 것 뿐입니다. 당신이 말하듯이, 만일 당신에게 옛날의 생각들로 가득  찬 기억이 있다면, 그 중 하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말해 보십시오! 언제나 수천 가지 생각이 주의를 끌려고 싸우고 있을 것입니다. 

그 중 하나를 골라서 앞에 내려놓고, 그것을 바라 본 뒤, "이것이 제게 보이는 생각입니다."라고 말해 주십시오. 

자, 어서 말해 보십시오.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립니까? 

 

질문자 : 아 - - 스승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한 개의 생각 뿐입니까? - - - 스승님께서 정확하게 원하시는 것이란 - - - -.

 

슈리 푼자 : 바로 그것입니다. 똑바로 들으십시오. 제가 지금 말한 것을 속으로 반복한 뒤, 대답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이 햇불을 손에 들고 비추어 그것이 비추는 것을 말하십시오. 마음 제일 앞에 있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질문자 : 생각이 없습니다. 

 

슈리 푼자 : 바로 그것입니다. '생각없음'. 당신은 그것이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 햇불을 들고 생각이나 욕망을 찾는다면 모든 것은 다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니르바나의 상태입니다. 그것 말고는 어떤 것이 니르바나라 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서 당신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생각이 없어지만, 시간도 없어집니다. 

시간이 없음은 마음이 없음을 의미하고, 마음 없음은 기억이 없음을 의미하며, 기억이 없음은 저장된 불필요한 자료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저장된 자료가 없다는 것은 삼사라가 없음을 의미하며, 삼사라가 없다는 것은 생과 사의 순환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생과 사의 순환이 없다는 것은 고통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그 모든 것을 끝내는 방법입니다. 시간도 전혀 걸리지 않는 일입니다. 지금 당장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질문자 : 그 햇불을 들고 있을 때, 저는 건강해 지고 싶은, 몸에 아무런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욕망을 봅니다. 그러한 욕망은 어덯게 해야 합니까? 

 

슈리 푼자 : 괜찮습니다 그러한 욕망은 가져도 좋습니다. 

 

질문자 : 이런 것은 가져도 된다구요? 

 

슈리 푼자 : 몸은 외부에 있는 것입니다. 건강을 유지하며 건강해지려는 욕망을 가지는 것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러한 건강을 가질 때,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그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이 몸이란 무엇인가?' 몸은 내부의 것인가, 외부의 것인가? 이 몸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십시오. 당신은 '나는 몸을 가지고 있다' 고 말합니다. 이 말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몸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이 '나'는 무엇입니까? 당신과 이 몸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질문자 : 제가 몸입니다. 

 

슈리 푼자 : 그러고는 당신은 "나는 건강한 몸을 가지고 싶다" 라고 말합니다. 

 

질문자 : 그렇습니다. 저는 건강한 몸을 원합니다. 

 

슈리 푼자 : 좋습니다. 그러면 다시 "이 몸을 소유하고 있는 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질문자 : 몸을 소유하고 있는 '나'는 현재 건강합니다. 

 

슈리 푼자 : 이 '나;에게로 돌아가서 좀 더 알아 보도록 합시다. 그것은 당신에게 매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 '나'에게로 돌아가면 아주 건강한 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곳으로 가서 스스로 보십시오. 

이 질문의 원천으로 돌아가면, 당신은 그것의 답을 얻을 것입니다. 천천히 그곳으로 돌아가십시오. 

당신은 "나는 건강한 몸을 원한다"로 시작합니다. 그것을 원하는 '나'에게로 돌아가서 무엇이 거기에 있는지를 보십시오. 당신은 이것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천천히 하십시오. 

우선, 제 말의 뜻을, 즉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도록 하십시오. 

'나'가 주어이며 "건강한 신체를 원한다"가 술어 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주어와 함께 머물고 술어를 무시하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나'로 시작하십시오. 그것의 근원으로 돌아가 탐구를 끝내도록 하십시오. 이를 위해 명상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당신이 나타났던 길을 따라 그대로 되돌아 가십시오. 당신이 나왔던 대로 그 같은 길로 되돌아 가십시오. 

 

질문자 : 좋습니다. 몸이 간강한 '나'를 필요로 합니다. 

 

슈리 푼자 : 좋습니다. 이제 이 '나'는 건강한지 병들었는지를 알아보십시오. 이 '나'는 어떠합니까? 병든 '나'입니까?, 아니면 건강한 '나'입니까? 

 

질문자 : 건강합니다. 

 

슈리 푼자 : 만일 그것이 건강하다면, 저는 당신에게 이 '나'가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건강합니다. 당신이 건강하다고 말하는 이것, 즉 이 '나'를 붙들고 놓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그 밖으로 나온다면, 아마 고통과 질병, 불행과 죽음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냥 그 밖으로 나와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보십시오. 

 

질문자 : 제가 그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슈리 푼자 : 당신이 이 편지를 저에게 쓰지 않았습니까? 이 편지에서 당신은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감사를 표할 길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말들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최고의 표현입니다. 침묵은 최고의 표현이며 최고의 상태입니다. 그것으로 산다는 것은 매우 드믄 상태입니다. 당신은 " 감사를 표할 말들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 침묵 속에 있다면, 어떠한 말도 필요치 않습니다. 지금까지 사전에서 발견된 그 어떤 말도 이 침묵이라는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합니다. 말은 바로 태초로 들어 갑니다. 그리고 그 진술은 계속해서 " 그리고 그 말씀은 신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은 곧 말씀입니다. 하지만 말들 너머에, 즉 단지 하나의 말이기도 한 신 너머에, 어느 누구도 말하지 못하는 또 다른 것이 있습니다. 모두가 말을 사용하며 모두가 신이나 혹은 어떠한 다른 말에 대해서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경험이 아닙니다. 진정한 경험 속에는 어떠한 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러한 침묵을 발견했다면, 어떠한 말도 필요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있기에 매우 좋은 곳입니다. 그것은 당신에게 충분한 것이 도리 것입니다. 

 

질문자 : (긴 침묵)

 

슈리 푼자 : "나는 자유롭다"라는 것은 건강한 사고 입니다. 이 생각을 계속 지니고 있으면 모든 것이 즉시 건강해 질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사람이 고통에 시달릴 것입니다. 항상 당신을 바쁘게 사로잡는 다른 생각들은 진정한 건강을 가로막는 질병일 뿐입니다. 

이러한 질병을 피하기 위해서는 "나는 자유롭다", "나는 니르바나에 있다" 와 같이 오로지 이러한 자유에 대한 생각을 간직하고 계십시오. 건강한 마음은 또한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마음을 위해서는 "나는 자유롭다"는 생각을 가지십시오. 이것이 가장 건강한 생각입니다.  

당신이 "나는 몸이다"라고 말할 때, 이것은 병든 생각입니다. 

만일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당신은 묘지에 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몸은 언젠가는 묘지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이와 같은 "나는 몸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당신은 묘지에 살고 있는 것이지만, 

반대로 "나는 몸이 아니다." 라는 생각은 아주 건강한 생각입니다. 왜 나쁜 생각을 해야 합니까? 

만일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좋은 생각하는데 사용하도록 하십시오. 

"나는 자유롭다"라는 이 생각보다 더 나은 생각은 없습니다. 

만일 "나는 자유롭다"라는 이러한 생각을 고수할 수 없다면, 그 대신 들어오는 다른 생각들이 당신을 고통 속에 빠트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는 이 선택권이 있습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선택하는 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되며,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당신입니다. 

만일 마음이 " 나는 속박되어 있다" 라고 결정한다면, '속박'이 바로 당신의 정체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나는 자유롭다" 라고 결정한다면, '자유'가 바로 당신의 정체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질문자 : "나는 자유롭다"는 말도 일종의 애착 아닙니까? 만일 진정으로 자유롭다면,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말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나는 자유롭다'는 한 가지 생각이 사람을 자유로운 상태로 데리고 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 생각에 항상 집착하는 것도 또 다른 집착 아닙니까? 

 

슈리 푼자 : 이 생각은 다른 애착들이 떨어져 나갔다는 표시나 징후입니다. 당신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지게 될 때만이 이 생각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이 생각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다른 모든 생각들이 다 소각된 후에만 일어납니다. 

다른 생각들이 다 떨어져 나간 뒤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거기에는 멈출 수 없는 힘이 있어서 그 힘이 당신을 목표까지 데려다 줍니다. (~ 이하 생략)

 

                                                                     -빠빠지와의 삿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