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깨어있다는 것을 아는 자는 생시 이전에 존재한다

2021. 7. 23. 09:50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여러분이 자신의 진아를 알면 여러분의 모든 욕구가 끝이 날 것입니다.  

개인의 죽음이란 "내가 있다"는 기억의 종말입니다. 

진아지를 위해서는 누구에게 무엇을 기대함이 없이 여러분의 의식을 붙잡고 있으십시오.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내용은 하나의 상상일 뿐이고, 

그것은 시간이 가면 해소될 것입니다.

 

마음의 변상(變相), 곧 여러분의 기억들이 모든 활동의 원인입니다. 

그것들이 끝날 때 그 활동도 멈춥니다. 그러면 행위할 어떤 욕망도 없습니다.

니브루띠(Nivrutti)라는 산스크리트 단어는 참된 물러남, 

즉 모든 활동에서 초연할 때를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나면 자기 자신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존재가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그런 다음 마음의 변상들이 여러분에게 행위를 하도록 강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의 노예가 됩니다. 

 

생각이 없으면 순수한 존재만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의 이름과 형상을 가진 어떤 사람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우리의 활동에 추진력을 부여합니다. 

실은 행위자가 아무도 없고, 모든 활동은 진실하지 않습니다. 

브라만만이 실재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내가 있다"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있음'의 기원에 대한 무지로 인해 마음에 의지합니다. 

"내가 있다"는 우리의 느낌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앎은 머리 정수리에 있는 하나의 혈(穴,구멍)인 브라마 란드라(Bramarandhra, 梵穴)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이 모든 지(知)의 중심입니다. 

 

지금 듣고 있는 여러분의 의식은 지(知)의 바다입니다. 

스승으로서의 의식에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수행도 필요 없습니다. 

활동들은 의식의 친존(親存)에서 일어나는데, 그것이 곧 스승 혹은 신의 두 발입니다. 

여러분의 의식을 숭배하는 것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스승의 표지(標識)들이 그 제자 안에서 계발되고, 그는 완전한 믿음으로 스승의 명을 따릅니다. 

그러면 스승과 하나됨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행동은 여러분 자신이 브라만인 것과 부합해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경계는 무한해집니다. 

스승이 베푼 만트라의 염송은 그 제자의 분리를 없애줍니다. 

'여러분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여러분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 때문에 그의 존재성을 갖는 신일 뿐입니다 

신을 기쁘게 하면 그가 그대와 진아의 만남을 주선하는데, 

그것은 여러분이 성숙되어 자신의 스승을 만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개인성이 끝이 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모든 세간적 친분은 빌린 것일 뿐이고, 그래서 일시적입니다. 

여러분의 스승은 여러분의 진아와 친분을 갖게 되며, 그 무엇도 그것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안간 형상 안의 의식은 큰 중요성이 있고, 의식의 참된 지(知)는 매우 귀중한 가치가 있습니다. 

아무도 진아지를 베푸는 자를 당할 수 없고, 그는 도량이 큽니다. 

여러분의 스승이 여러분의 움직임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지만, 

역으로 여러분이 그의 움직임의 원인이라는 것을 실제로 알 때, 여러분의 일은 끝납니다. 

 

여러분의 모든 활동은 기억속에 저장되는데, 

우리의 참된 성품은 그냥 하나의 기억일 수 없습니다. 

이 기억들은 무한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비슈누의 그가 존재한다는 기억조차도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깨어 있다는 것을 아는 자는 생시 이전에 존재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기억들 이전에 존재하는 자만이 그것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기억과 5대 원소 공히 의식에 의존합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서로 관계될 수 밖에 없습니다. 

기억들은 그것 이전인 자를 알 수 없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다."는 기억들의 한 집합인데, 그것이 세상 속에서 행위합니다. 

 

여러분 자신과 신에 대한 여러분의 모든 상상은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도 죽음을 경험하지 못하는데도, 그에 대한 두려움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집습니다. 

우리에게는 수천가지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기억들입니까?

분별을 사용하여 거기서 벗어나십시오.

여려분 자신의 기억에 기초하여 자기가 한 사람의 남자나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스승의 은총이 있으면 이 "내가 있다"는 기억과 그것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이 브라만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말"이라고 할 때 그것은 누구의 말입니까? 

죽게 되어 있는 인간의 것입니까. 아니면 영원자의 것입니까? 

여기서 말해지는 한 문장이라도 체험한다면,

여러분이 영원자를 깨달을 것입니다. 

 

                                          -대성 번역 <자기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