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3. 21:31ㆍ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마하리지가 방문객들과 나누는 대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아주 자연스럽고 즉각적이며 자발적이라는 점이다.
대화 전에 어떤 주제가 결코 정해진 것도 아닌데, 그의 말은 언제나 신선하고 통쾌하다.
최근 몇 년간 일요일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하루 두 번씩 강의를 하는데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그토록 명쾌하게 강의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이러한 특징과 더불어 또 한 가지를 말한다면 마하리지는 언제나 재미있는 웃음을 띠면서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무엇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가?
언제나 한 가지 주제, 당신과 나의 본래 모습, 산, 바깥 세계에 대한 것이다.
마하리지는 어떠한 구체적 주제에 대해서 설파하기 전이라도 모인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거나 하여 괴롭히지 않는다. 모임이 벌어지는 그의 조그만 다락방은 15분 정도면 화끈 달아 오른다.
어떤 때는 겨우 서너명의 사람 밖에 없는 경우도 있으나 그에게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단 한 명의 탐구자만이 있더라도 대단한 열정을 갖고 그의 가르침의 원리들을 연관시켜가며 진리에 대한 진실을 설명한다.
그는 언제나 모든 것을 넘어선 전체적 입장에서 말할 뿐이다.
어느 날 아침 강의에 모인 사람은 단 두 사람 뿐이었다.
그때 돌연 마하리지가 말했다.
"자각(自覺, Awareness)과 의식(意識, consciousness) 사이가 있다면 그 차이는 무엇인가?"
이럴 때 모인 사람들은 그의 뜻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마하리지가 혼잣말로 소리내어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대답을 기대해서 그런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혹시나 그의 생각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하여 대답을 망설인다.
그러나 그럴 때면 "왜 대답하지 않는가?" 하며 그들이 낭비하는 시간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날 아침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마하리지가 자발적으로 말해 나갔다.
"자각(Awareness)은 절대적인 것이므로 우주 구성물질의 밑바탕이 되는 세 가지 속성들(Guna)
즉, 사트바(sattva) 라자스(rajas) 타마스(tarmas) 너머에 있습니다.
반면에 의식(consciousness)은 물질적 자양분으로 구성된 육체에 의지해 존재하고 제한당하여 육체가 소멸하면
따라서 소멸되는 한시적인 것입니다.
아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소위 죽음으로 표현되는 다섯 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세 가지 속성(Guna)에 의해 종속되는 육체의 생명이 없어지고 의식이 사라지는 것은 육체를 종속시키던 세 가지 속성으로부터 자우로워지는 것 뿐입니다.
자각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선행하는, 이유도 지지도 필요없는 근본적인 본래의 상태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본래의 상태에 의식의 개념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존재한다'는 생각이 떠오르게 되고 상대성을 야기시킵니다.
의식은 형태를 갖고 있는 물질 표면에 부딪치는 자각의 반영입니다.
자각을 빼놓고서는 의식을 말할 수 없습니다.
태양이 없이는 그 빛이 반사되어 느낄 수 있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의식 없이도 자각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깊은 잠 속에서는 순간적으로 의식이 없는데(의식이 쉬는 상태이다),
그때에도 자각은 있습니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깨고 난 후 잠을 잤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어 났을 때만 그것을 압니다. "
마하리지는 의식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이렇게 말한다.
의식은 우리와 늘 함께 하는 동요와 같다.
우리를 삶이요, 사랑이요, 환희의 기본적 존재인 자각으로 데려다 주는 것은 의식이라는 동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인 까닭에 그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마하리지에 의하면, 존재의식은 벌써 자각을 향한 움직임이라고 한다.
근본에서 비롯된 마음은 밖을 향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언제나 그것 자체 안에 있는 그것의 근원을 찾으려 한다.
그것이 그 안의 근원을 찾고자 방향을 바로 잡을 때, 그것은 거의 새로운 삶의 시작과 같다.
자각이 의식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내가 존재한다(I am)"가 중단된다.
자각 안에는 생각이 없다. 자각은 의식의 근원일 뿐이다.
마하리지는 훌륭한 정신적 수련은 조용히 앉아 마음의 표면에 무엇이 떠오르는가를 관찰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권한다.
우리가 생각이라고 부르는 것은 수면 위의 잔물결과 같다.
생각은 언제나 무언가를 자기와 동일시하여 자신의 근본을 왜곡시킨다.
생각이란 생각나기 이전의 산물일 뿐이다.
잔물결이 없을 때는 모든 것을 포용하게 되며 마음 또한 잔잔하게 된다.
마하리지는 말한다.
당신 마음의 거울에 온갖 종류의 영상이 생겨나 잠시 비추다가 사라지는 것 뿐이다.
그저 그것들이 오고 가는 것을 여여하게 지켜보라.
방심하여 그것들을 놓쳐서도 안되지만,
그것들에 얽매이거나 끌려다녀서도 안된다.
이러한 주시의 태도는 원치않는 손님들과도 같은 불필요한 모든 생각들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당신 자신의 내부, 즉 "내가 존재함(I AM)" 안에서 마음의 흐름과 싸우거나 판단하거나 개입하지 않고
그저 고요히 그것들의 흐름을 지켜본다면,
알려지지 않고 알려질 수 없는 그 깊은 미지의 근본이 의식의 표면으로 드러나 당신으로 하여금
그 근본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무한한 에너지를 풀어줄 것이다.
-라메쉬 발세카 지음, 이명규 역< 담배가계의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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