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8. 22:12ㆍ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일자성(一者性)만이 있습니다.
달리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세계로 나타나 보이는 것은 무엇입니까?
일체가 신이고, 달리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다양한 장신구들, 혹은 우리가 지각하는 대상들은 거짓입니다.
그 이름들은 아무런 중요성이 없습니다.
모든 이름과 형상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의 브라만이 존재합니다.
'본다'는 것은 겉모습을 본다는 뜻이지만,
브라만은 세간의 대상들로 보이는 모든 것에 편재합니다.
여러분의 의식의 상태가 그와 같이 될 때,
한 개체로서의 여러분 자신과 다른 한 개체로서의 저에 대한 관념은 사라집니다.
'너;와 '나'의 이원성이 사라집니다.
어떤 분석이나 분리도 하지 말고 일체를 브라만으로 생각하십시오.
모두가 하나인데, '나는 별개의 존재다'하는 개념을 붙들지 마십시오.
해는 워낙 찬란해서 목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불씨가 소위 불가촉천민의 집에서 나온 거라고 해서 그것을 청소하고 씻깁니까?
진아는 영원히 빛나고 있습니다.
'나'라는 느낌이 그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것은 순수한 진아일 뿐입니다.
'나'라는 느낌이 사라지면 진아는 늘 그러하듯이 찬란하게 순수합니다.
모든 것 안에 동일한 의식이 있습니다.
그것이 만물 속의 일자성(一者性)입니다.
바닷물 한 방울은 본질적으로 바다의 성품을 가지고 있고,
바다와 별개로 있지 않습니다.
지,수,화,풍,공의 5대 원소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죽음은 오직 욕망과, 그리고 생각과 감정이라는 속성을 가진 미세한 '나'와 관계될 뿐입니다.
살고 죽는 것은 이 별개의 존재에게만 해당됩니다.
무슨 이름을 가진 어떤 사람이 죽었다고 말할 때,
죽은 것은 그 자신을 구분하여 자신을 그 이름으로 부르던 개념일 뿐입니다.
깨달음의 상태는 '나'라는 느낌이 종식된 곳입니다.
자신을 갑,을,병으로 부르는 이 이방인은 잘못 그 몸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를 추방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브라만입니다.
'나는 브라만이다'라는 칭호를 지니고,
그 다음의 큰 만남을 향해 주저없이 계속 나아가십시오.
'하나'만 있으면 일체가 가치를 갖습니다.
둘이 있으면 즉시 마찰과 갈등이 있습니다.
따라서 단일성 안에, 일자(一者)로써 홀로 사십시오.
'너'와 '나'라는 느낌을 완전히 내버리는 사람이 진정한 스승의 아들입니다.
대성 번역 <그대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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