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적인 앎이 사라질 때 보는 자도 사라진다.

2021. 7. 20. 23:41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 - 제 3강] 

"대상적인 앎이 끝나면 보는 자는 보는 자로써 살아남지 못한다. 

그 순간 나(에고)의 자부심도 사라진다" 

                                               -<다스보드 제6장 10절 -16번째 문장>-

 

보는 자는 대상이 실제처럼 보이는 한에서만 남아 있습니다. 

에고는 개념적이며 보는 자 또한 그렇습니다. 

이 도시를 만약 "봄베이"라고 부르면 봄베이로 나타납니다. 

만약 땅이라고 부르면 땅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모두 보는 자의 개념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어떤 것을 "의자"라고 부르면 그것은 의자로써 인식됩니다. 

만약 나무라고 부르면 나무로 인식됩니다. 

만일 브라만이라고 부르면 모든 것은 브라만으로 인식됩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세계라고 부르면 그것은 세계로 인식됩니다. 

대상에 대한 인식은 보는 자의 개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브라만은 개념을 초월해 있습니다. 

어떤 개념으로도 포착할 수 없습니다. 

 

한 남자가 '아내'라고 부르는 여인이 있는데, 

다른 어떤 사람은 언니, 세번째 사람은 그녀를 '딸'이라고 부르는 여성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그녀는 뼈와 살덩어리로 된 살아있는 형체일 뿐입니다.

그대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일어납니다. 

모든 것은 개념적이며 보는 자의 개념에 의존합니다. 

세상과 존재 자체도 개념적입니다. 

 

현상세계를 실재한다고 말하는 '보는 자'는 '에고'입니다. 

이 에고는 뿌리 뽑혀야 합니다. 

만일 에고가 사라지면 브라흐만만이 남습니다. 

마하바라타의 두루타라슈트라 왕은 장님이었습니다. 

그는 백명의 카우라바를 낳았고, 그들에게서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사실은 몸을 스스로 붙잡고 있는 사람은 눈이 먼 두루타라슈트라입니다. 

 

그는 또한 라마야나에서 라바나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모든 대상은 악마이며, 그들에게 그 지위를 부여하기 때문에 당신은 그들의 왕인 라바나입니다. 

라바나는 정당한 왕이 아닙니다. 그는 신(神)이 아닙니다. 

사물을 실재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라바나가 된 것입니다. 

당신은 이 라바나를 스스로 제거해야 합니다.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를 없애는 것은 소원(所願)의 죽음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라마야나에서는 라마나가 시바 경의 열렬한 헌신자였다고 하며, 

라바나의 요청에 따라 시바 경은 그에게 소원의 죽음이라는 은총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이 라바나는 14개의 섭정, 즉 14개의 느낌들 : 5개의 각 감각기관의 기능과 앎, 마음, 지성, 의식 및 에고 입니다. 

 

신이 이 세상을 다스리기 시작하면, 악마는 지옥으로 들어가고, 

악마가 이 세상을 다스리면 신들은 고행을 하러 떠납니다. 

만약 대상이 실재한다고 받아들여진다면, 

세상은 악마가 지배하게 되고, 신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은 흔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신이 승리할 때(즉 :모든 대상이 거짓이라는 확신이 확고해질 때) 악마도 사라집니다. 

에고가 파괴되면 모든 것이 브라흐만입니다. 

 

모든 대상과 함께 '나'가 실재하지 않음을 숙달시켜야 합니다. 

깨달은 사람에 있어서는 모두가 브라흐만입니다. 

음식, 식사할 때 앉는 나무 판자, 아내, 그리고 물은 모두 브라흐만의 표현입니다. 

모두가 브라흐만입니다. 이것을 공부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신의 규칙이 될 것입니다. 

 

브라흐만은 속성이 없습니다. 

그것은 색상도, 음악도 아닙니다. 노란 색이나 검은 색도 아닙니다. 

액체 버터 기름과 고체 버터 기름은 물이 얼어서 고체가 된 어름과 같습니다. 

(흙에서 나온) 씨앗을 흙 속에 뿌리면 의식이 일어납니다.

[물질이 점점 더 미세한 입자로 나뉘면 궁극적으로 순수한 의식 에너지가 됩니다.즉 차이타냐라고 합니다) 

 

당신이 보고 인식하는 모든 것은 실재(實在)인 브라흐만입니다. 

팔찌나 귀걸이가 모두 금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모든 것은 오직 의식의 성품만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 몸에 좋은 일만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만두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개념상의 대상이 오직 하나의 육체만 있기 때문에, 당신이 육체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인과 수행원은 신으로 여겨야 합니다. 

브라흐만 외에는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속성이 있든 없든 모든 것은 고빈다(神) 입니다."  

 

우리가 사물을 분류하기 때문에 개인,에고가 있습니다. 

당신은 아내, 딸, 말 또는 개를 개별적으로 인식합니다. 

그들은 모두가 크리슈나일 뿐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대상의 형태를 변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직 보는 자의 자세가 변해야 합니다. 

브라흐만은 그것이 비록 속성이 있을 때일지라도 다 똑같습니다.  

 

당신은 신이 어떤 상태에 있든 그 속에서 브라흐만을 보아야 합니다. 

심지어 의자의 원자와 분자도 모두 크리슈나 신입니다. 

이 태도가 확고하게 채택되면 그 자신도 브라흐만이 됩니다. 

그는 잠을 자거나 깨어 있거나 밥을 먹기도 하지만, 

한번도 밥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브라흐만이면, 먹고 자는 것은 무엇일까요? 

속성이 없는 것과 말하는 것, 즉 속성이 있는 것은 둘 다 신입니다. 

왕이 왕좌에 앉아 있든 사냥하러 나가든 항상 왕일 뿐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의식의 우상입니다. 

 

사람은 다른 대상과 자기 자신에게 다른 이름을 부여해 줄 때 헌신적인 사람이 됩니다. 

사람은 모든 피조물을 브라흐만으로 바라 볼 때 사두(성인) 또는 파라마트만입니다. 

브라흐만을 잊고 음식을 먹는 것은 단지 그것을 대변으로 바꾸는 것일 뿐입니다. 

누에고치의 비단은 사제가 신을 숭배하는 동안 사용하기 때문에 

브라흐만을 잊은 사람들보다 누에가 헐씬 더 좋습니다. 

 

지옥을 원하는 사람은 지옥을 소화 할 수 있습니다. 

신과 악마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과 악마가 함께 세상의 바다를 휘젓고 감로와 포도주를 얻었습니다. 

비슈누 경은 신에게 감로를, 악마에게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비슈누가 이것을 했다 '는 것은 내면의 감각 의식이 이것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로와 와인이 여기 있습니다. 

감로를 마시고 불멸이 되는 것은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깨어 있는'사람은 실재(實在)를 성취할 것입니다. 

모두가 신입니다. 모두가 행복해 질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실천하고 마음에 새기면 모든 것이 브라흐만입니다. 

뿌리가 생길 때까지 식물에 물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스스로 자라납니다.

당신은 브라흐만을 달성할 때까지 계속해서 끈질기게 연습해야 합니다.  

 

                                        -Amrut Laya (The Stateless St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