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가 현각 선사의 지관(止觀) 법문(20)

2021. 7. 5. 23:14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2) 순환 너머 지경 명합(智境冥合)으로

[본문]

① 지혜가 생겨서 (경계를) 요달하는데, 요달하되 요달되는 것이 없다. 

② 경계를 알아서 (지혜가) 생기는데, 생기되 능히 생기게 하는 자가 없다.

 

[해설]

①지혜가 경계를 요달하되 요달되는 것(境)이 없다는 것은 아는 지혜와 별도로 알려진 경계가 따로 있지 않다는 말이다. 능을 떠나 소가 별개의 것으로 있지 않다는 말이다. 

② 마찬가지로 경계가 지혜를 일으키되 일어나는 것(智)이 없다는 것은 요달되는 경계와 별도로 요달되는 지혜가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이다. 

소를 떠나 능이 별개의 것으로 있지 않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능과 소가 서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 아는 것과 알려지는 것, 지혜와 경계가 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행정은 이렇게 말한다. 

"지혜가 경계를 궁구하되 지혜에 의해 요달되는 바(所了=境)가 없고, 경계가 지혜를 생겨나게 하되 경계에 의해 능히 생겨나는 것(所生=主)이 없다. 경계와 지혜가 여여하니, 생김과 요달이 어디 있겠는가? 

앎이 있되 아는 자(能知者)와 알려지는 것(所知境)이 따로 있지 않은 능소무분별의 경지, 즉 지혜와 경계가 분리되지 않은 지경명합의 경지를 말한다. 

함허는 이렇게 설명한다.

"법신이 드러나는 곳에서 마음에 집착되는 것이 있으면 법신과 위배되고, 집착할 것이 없음을 요달하면 법신과 위배되지 않는다. 이른바 법신은 '마음이 연하는 모습(心緣相)을 떠났기 때문이다. 

지혜(智)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참된 지혜가 현발할 때에 현발한다는 생각이 생기지 않으면 참된 지혜라고 이름할 수 있다. 이른바 참된 지혜는 본래 무분별하기 때문이다. 법신을 알 때,그 법신이 지혜 바깥에 따로 있는 것처럼 집착한다면, 그렇게 집착한 법신은 주객무분별의 법신과 위배된다. 또 법신에 대한 지혜를 가질 때, 그렇게 알려진 법신 이외에 그 법신을 아는 지혜가 따로 있다고 상을 내면 그것 또한 참된 지혜가 아니다. 

결국 지혜 너머 법신이 따로 있지 않고, 법신 너머 지혜가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주와 객, 능과 소의 분별을 넘어선 경지이다. 

 

[본문]

① 생기되 능히 생기는 자가 없으면, 비록 지혜이어도 있는 것이 아니다. 

② 요달하되 요달되는 것이 없으면, 비록 경계이어도 없는 것이 아니다. 

 

[해설]

① 생기되 능히 생기는 자가 없다는 것은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주관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이고,

② 요달하되 요달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인식에 의해 알려지는 인식객관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주객분별을 넘어선 경지를 말한다. 

우리는 흔히 인식주관과 인식객관의 이원성을 전제해놓고 그 위에서 비로소 인식이 성립한다고 여기지만, 

여기에서는 주관과 객관의 분별이 없이 성립하는 인식을 말한다. 

주객미분의 요달의 인식이 먼저 있고, 그 위에서 임의로 인식주관과 인식객관을 개념적으로 분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객 무분별의 관점에서 보면 주와 객, 식(識)과 경(境)은 서로 의존적이며 서로 불이(不二)의 관계에 있기에 지혜와 경계를 분리하여 논할 수 없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지혜와 경계의 상호 연관성을 강조하되, 유식의 '식은 있고 경은 없다(唯識無境)와 대조적으로 '식은 있는 것이 아니고 경은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함허는 식과 경을  대(對)로 놓은 관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혜(智)와 진리(理)를 대비시키면, 진리는 무(無)에 속하고 지혜는 유(有)에 속한다. 무라고 하는 것은 경계가 공(空)이라는 것이고, 유라는 것은 지혜(智)가 드러난 것이다. "

이 관점에서 보면 '지혜는 유, 경계는 무'가 되니, 이것이 곧 '유식무경'이다. 

그러나 진지가 현발하는 차원에서 보면, 이미 능,소가 대립이 아니고 지,리가 대립이 아니므로 굳이 식과 경을 분리할 필요가 없다. 지와 경, 주와 객이 명합하여 불이가 되면, 굳이 '지혜는 유, 경계는 무'를 말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지혜이어도 있는 것이 아니고, 경계이어도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함허는 이렇게 설명한다. 

" 참된 지혜가 현발할 때에 현발지상(現發之相)이 생기지 않으므로 '비록 지혜이어도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경계가 공적(空寂)임을 요달할 때에 공적이라는 견해가 생기지 않으므로 '비록 경계이어도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서 최종적으로 '지는 무, 경은 유'라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유식의 '유식무경'에 대해 '식도 비유이고 경도 비무'라는 것, 그렇게 지혜와 경계가 대등하게 부정되고 다시 긍정된 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본래 유식도 식과 경의 분별 위에서 '식은 있고 경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이니다. '유식무경'의 식은 경과 대비되는 능연식이 아니라, 능(능연식)과 소(소연경)을 포괄하는 제8아뢰야식, 즉 심층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유식은 주객무분별 내지 지경명연(智境冥然)으로서 전첼르 포괄하는 것은 결코 죽은 나무나 돌처럼 지각성이 없는 물질적 경(境)이 아니라 스스로 자각하여 아는 심(心)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일 뿐이다. 

 

행정은 주객분별이 없어도 그 둘 간에 앎이 있다는 것을 이렇게 말한다. 

"비록 능소가 없지만, 경계와 지혜가 완연하다." 

주객의 분별을 넘어서는 일심의 관점에서 보면 지혜와 경계가 분별되지 않은 채 완연하게 있다는 것이다. 

 

 

                                                              -한자경 지음 <선종영가집 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