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십지품 공부(30)

2021. 6. 16. 22:30성인들 가르침/화엄경

[본문] 

"또 생각하기를 '일체 중생이 탐착하는데 만족할 줄 모르고, 오직 재물만을 구하며 잘못되게 살아가려 하니,내가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일이 청정하여 옳게 살아가는 법(正命法) 가운데 머물게 하리라'라고 라느니라."

[해설]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제물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제물을 구하려고 남의 것을 빼앗는다든지 도둑질을 한다든지 사기와 협잡을 한다면 그것은 잘못되게 살아가는 일이다. 

사람으로서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일이 청정하여 옳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불교에서는 입만 열면 정직하고 선량하게 살아가라고 가르치지만 그 좋은 가르침이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참으로 안타갑고 답답한 일이다. 

 

[본문]

"또 생각하기를 '일체 중생이 항상 세 가지 독한 것(三毒)만 따르므로 여러 가지 번뇌가 그로 인해 치성하고 벗어날 방편을 구할 줄을 알지 못하느니라. 내가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일체 번뇌의 큰 불을 끄고 청량한 열반의 자리에 있게 하리라.'라고 하느니라"

[해설]

불교에서 이르기를 팔만사천 번뇌라고 한다. 줄여서 108 번뇌라고도 한다. 또 10전(纏), 5둔사(鈍使), 5리사(利使) 등 무겁고 가벼운 것에 따라 이름이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도 삼독번뇌를 가장 독한 번뇌라고 하여 특별히 일컫는다. 어떤 중생이라도 이 삼독번뇌가 없는 사람은 없다. 일체 번뇌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번뇌는 마치 불길과도 같아서 보살은 중생들을 번뇌가 다 사라진 시원한 열반의 경지에 두려워한다.

 

[본문]

"또 생각하기를 '일체 중생이 어리석어 깜깜하고 망령된 소견에 덮히어, 답답하게 막힌 숲 속에 들어가서 지혜의 광명을 잃고, 넓은 벌판의 험한 길에서 여러 가지 나쁜 소견을 일으키느니라. 내가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장애가 없이 청정한 지혜의 눈을 얻어 일체 법의 실상을 알고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게 하리라.'라고 하느니라"

[해설]

어리석으면 어둡고 어두우면 망령된 소견에 뒤덮이게 된다. 소견이 잘못된 모습을 빽빽한 숲과 같다고 표현하였는데 숲이 빽빽하면 숲 속에 사람이 들어 갈 수가 없다. 곧 소견이 좁아서 다른 사람의 견해를 절대 용남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지혜광명이 있을 수 없다. 인생의 넓은 들판 험한 길에서 온갖 나쁜 견해를 일으킨다. 

대승적 견해가 투철한 보살이 볼 때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그래서 보살은 장애가 없이 청정한 지혜의 눈을 얻어 일체 법의 실상을 알고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게 교화한다. 

 

[본문]

"또 생각하기를 '일체 중생이 나고 죽는 험한 길에 있으면서 장차 지옥 축생 아귀에 떨어지거나 나쁜 소견의 그물에 들어가서 어리석음의 숲 속에서 길을 잃고 삿된 길을 따라가며 뒤바끤 행을 행하느니라.'"

 

[본문]

" '비유하면 마치 눈먼 사람이 인도하는 사람도 없이 빠져 나갈 길이 아닌데도 나갈 길인 줄만 알고 마군의 경계에 들어가 악한 도둑에게 붙들이듯이 마군의 마음을 따르고 부처님의 뜻과는 멀어지느니라. 내가 마땅히 이와 같은 험난한 곳에서 구제해서 두려움이 없는 일체 지혜의 성(城)에 머물게 하리라.'라고 하느니라. "

[해설]

일체 중생이 생사의 험한 길에서 삼악도를 헤메면서 나쁜 소견으로 어리석음의 숲 속에서 바른 길을 잃고 삿된 길을 따라 전도된 행을 행한다. 참으로 세상은 온갖 삿되고 기짓된 주의주장이 난무하는 시대다. 그러면서 스스로 진리의 길이라고 한다. 거기에 다소의 무리들을 이끌고 있어서 그야말로 동타지옥(同墮地獄)하는 격이다. 마치 맹인이 맹인의 무리를 이끌고 불구덩이로 함께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보살이 그들을 험난한 길에서 건져내어 두려움이 없는 일체 지혜의 성(城)에 편안히 머물게 하려고 한다. 

 

[본문]

"또 생각하기를 '일체 중생이 큰 폭류(瀑流)의 물결에 휩쓸려서 욕(欲)의 폭류와 무명의 폭류와 소견의 폭류에 들어가 생사에서 소용돌이 치고 애욕의 물에 떠다니면서 빠르게 솟구치고 심하게 부딪치느라고 살펴볼 겨를이 없느니라.'"

[해설]

일체 중생들의 번뇌의 활동이 거칠고 센 것이 마치 홍수가 나서 난폭하게 흐르는 물결과 같다고 하여 번뇌의 다른 이름으로 '폭류(瀑流)'라고 한다. 거기에는 네 가지가 있다. 욕폭류(欲瀑流)는 욕계에서 일으키는 번뇌이다. 

중생은 이것 때문에 생사의 세계에서 쳇바퀴 돌듯 하며 살아간다. 유폭류(有瀑流)는 색계와 무색계의 번뇌이다. 

무명폭류(無明瀑流)는 삼계의 사제(四諦)와 수도(修道)에서 일어나는 우치(愚痴)의 번뇌이다. 

견폭류(見瀑流)는 삼계의 견혹(見惑) 중에 사제마다 각각 그 아래에서 일어나는 신견(身見)과 변견(邊見) 등의 그릇된 견해이다. 중생들은 이러한 폭류에 들어가 생사에서 소용돌이 치고 애욕의 몸에 떠다니면서 빠르게 솟구치고 심하게 부딪치느라고 올바른 길을 살펴볼 겨를이 없다. 

 

[본문]

"'탐내는 생각과 성내는 생각과 해치려는 생각을 따라서 버리지 못하는데, 나의 몸이라고 고집하는 나찰(身見羅刹)에게 붙들려서 영원히 애욕의 숲 속으로 끌려 들어가 탐욕과 애정에 집착을 깊이 내고, 나(我)라는 교만의 언덕에 머물며, 육처(六處)라는 동리에 있게 되어 구원할 이도 없고 제도할 이도 없느니라.'"

[해설]

보살의 지혜로 중생들을 볼 때 위에서 말한  네 가지 폭류와 다시 세 가지 약하고 모진 생각이 있어서 중생들의 마음을 처참하게 만든다. 주로 선정을 방해한다고 한다. 욕각(欲覺)과 에각(恚覺)과 해각(害覺)이다. 이러한 탐내는 생각과 성내는 생각과 해치려는 생각을 따라서 버리지 못하고, 나의 몸이라고 고집하는 나찰귀신에게 붙들려 다닌다

 

[본문]

"'내가 마땅히 그들에게 큰 자비심을 일으키고 여러 선근으로 구제하여 환난이 없게 하고, 물든 것을 떠나서 고요하게 일체 지혜의 보배 섬에 머물게 하리라.' 라고 하느니라."

[해설]

그러므로 보살들은 마땅히 그들에게 큰 자비심을 일으키고 여러 선근으로 구제하여 환난이 없게 하고, 물든 것을 떠나서 고요하게 일체 지혜의 보배 섬에 머물게 한다. 이것이 보살의 마음이며 해야 할 일이다. 

 

                                                      -여천무비 지음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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