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7. 19:45ㆍ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여기서 보여주고 있는 것은 라자요가, 즉 왕의 요가이다.
라자요가는 본연적인 상태를 말한다. 브라만은 본연적 존재다.
그 존재 안에서는 '타자'인 어떤 것에 대한 어떤 헌신도 없다.
그 최고의 상태, 원래의 본연적 상태를 지혜있는 사람들은 라자요가라고 불러왔다.
절대적 전체성에 대한 자각이 있을 때,이것을 '걸림 없는 요가'라고 한다.
여기서는, 무엇을 한다느니, 무엇을 떠난다느니, 혹은 무엇을 포기한다느니 하는 그런 것이 없다.
(그와 같은 상태에서는) 하는 일은 진지하게 하는 것이고, '자유롭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무엇을 더 하든 그것은 이미 자유의 상태(無爲)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의미가 없거나,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어떤 활동을 수행하든, 그 활동은 전적으로 비이기적이고, 욕망이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그것을 본연삼매(사하지 삼마디), 혹은 만물에 편재하고 있는 삼매라고 말한다.
이 상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책을 여러 권 읽어보아서 그 이름은 잘 알겠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실제로는 확실하게 잘 알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둘, 곧 나와 주 시바 만이 그것을 안다.
이 요가에서는 무엇을 한다는 것이 없다.
뭔가를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확신이 부족한 것이다.
확신이 완벽하게 있는 사람은 어떤 것을 하려고 나서지 않는다.
그는 사물의 자연적인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지켜 볼 뿐이다.
달리 해야할 일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그는 가만히 지켜만 볼 뿐이다.
그 '지켜 봄'(觀照)상태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그가 하는 유일한 일이고, 그것으로 그의 할일은 충분하다.
여러분이 계획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성공하겠지만,
목적이 확고해야 하고, 열정이 충만해야 한다.
충만한 열정을 가지고 결정하는 일이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설사 여러분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일어날 일은 틀림없이 모두 일어난다.
일체가 브라만에서 방출되며, 따라서 일어나거나 장차 일어나야 하는 모든 일은 틀림없이 일어난다.
의지를 가지고 해야 할 일이나 억지로 붙잡고 있어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일어날 일이 이처럼 자연적으로 강력하게 실현이 된다면,
무엇을 하겠다고 의지력을 발휘하여 하겠다고나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거나 결정하지 않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어떤 짐을 나른다는 느낌만 만들어 낼 뿐이다. 그러니 그것마저도 놓아버려야 한다.
자신이 적극적인 역활을 하지 않아도 일체가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침묵해야 한다.
이점을 보여주기 위하여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신이 음식을 주면 먹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침묵하며 앉아 있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무엇을 하라고 조언하곤 했지만, 그 자신에 대한 그의 믿음은 달랐다.
그는 사람들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연히 얻을 수 있는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건 자신에게 족하다고 생각했다. 말없이 앉아 있는 것이 그의 수행 방식이었다.
하루는 그가 숲 속에 들어 갔다가 어느 바위 위에 올라가서 거기에 앉아 있었는데, 바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는 다른 사람을 불러서 와 보라고 했고, 바위를 치우자 바위 밑에 꽤 많은 보물이 있었다.
그는 그 보물을 거기 온 사람들에게 다 주어 버렸다.
그는 결코 어떤 것도 부족하다고 느끼지 읺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은 전체적이어야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아는 사람은 결코 어떤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성자 뚜까람이 말했다.
" 결의의 힘은 그 자체의 열매다."
만일 여러분이 뭔가를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느끼면 확실히 그것을 해라.
그렇지 않으면 하지 말라.
신이 일체를 한다는 믿음을 여러분이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그렇게 하라.
만일 자신이 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분명히 여러분이 그렇게 한다.
여러분의 믿음이 무엇이든 그것은 진실하다.
그것은 여러분이 무엇을 제안하고, 무엇을 결정하느냐에 달렸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확실하다고 느끼는 대로 행동을 취하든지,
아니면 스승의 말을 믿는다면 그의 조언에 따르고 스승의 지시에 반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을 했다가는 두 사람 다 망치게 될 것이다.
문제들을 뒤섞는 통에 혼란에 빠지고 고통을 받아서는 안된다.
결의, '완벽한 결정'은 그것으로 끝이어야 한다.
브라만을 깨닫고 나면 여러분이 하고 싶은 어떤 것도 할 수 있다.
깨닫고 나면 선택이라고 하는 문제가 남지 않는다.
왕이 자신을 위해 어떤 행위 규정을 정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그의 소관이 된다.
따라서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 그일은 일어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남들을 위한 선행을 하는데 대한 어떤 자부심도 갖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것 또한 여러분이 결정해야 한다.
자유롭게 남고 싶은지 아니면 속박되어 있고 싶은지는 여러분만이 결정한다.
"주 시바와 나 자신만이 이 요가를 안다"
이 비밀을 주 크리슈나가 웃다바에게 가르쳤다.
진아지는 위없는 지(知)이다.
그것을 얻으면 그 지복을 즐겨라.
이제 모든 슬픔이 소멸되었다.
여러분이 자기 돈을 묻어 놓고서 고통스러운 투쟁을 해야한다는 것은 비극이다.
브라만을 깨달을 때는 여러분이 걱정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깨어남은 여러분에게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왕이 왕좌에 앉아 있으면 그의 명령은 자동적으로 나라 안에서 시행된다.
사려분별이 없는 사람은 설사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슬픔을 겪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깨닫고도 개아로 살고 싶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 사람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면 영적인 깨달음이 무엇을 해줄 수 있겠는가?
보라, 우리 자체가 우주의 힘이다.
그런데 어떻게 여러분이 하기로 결심한 일이 실패할 수가 있겠는가?
이것을 아는 사람은 실제로 거기서 이익을 얻는다.
여러분이 무엇을 결심하든,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왜 일어나지 말아야 하나?
원래 여러분이 신이다. 여러분이 결정하는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유일한 필요조건은 여러분이 굳게 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신(神)임을 깨닫고, 진리만을 말하는 사람은 또 하나의 우주를 창조할 힘을 얻는다.
스승에 대한 헌신은 이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의심이 없어야 한다.
이 헌신이 완전할 때, 여러분이 말하는 모든 것이 왜 성공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점을 깊게 확신하려면 스승에 대한 헌신이 아주 깊어야 한다.
여러분의 마음을 바가지를 긁는 마누라와 같다.
자기 마음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 말라.
여러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마음에 어떤 내면적 망설임도 없어야 한다.
그것이 여러분을 자꾸 찔러대면 안된다.
마음이 용기로 충만해 있을 때는 다른 아무 것도 필요없다.
마음이 확신을 하지 못하면 안된다.
요컨대 모든 것은 여러분의 개념에 달려 있다.
여러분의 마음, 여러분의 결의가 여러분이 얻는 열매를 좌우할 것이다.
마음이 용기를 가져야 한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 결과도 혼란스러울 것이다.
신은 여러분이 그에 대해 느끼는 그대로 한다. 여러분이 곧 신이다.
확신한다면 여러분도 곧 그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은 그러하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무엇을 취하거나 무엇을 베풀면 여러분이 공덕이 감소하겠는가, 아니면 죄를 범하겠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세계의 창조와 파괴는 여러분에게 달려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축복을 베풀면 여러분이 무엇을 잃겠는가?
- Master of Self-Realiz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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