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는 늘 깨어있다

2020. 6. 4. 21:50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홀로인 자가 문득 이 세계는 이원적이라고 생각했고, 무지의 혼돈으로 인해서 미혹되어 버렸다.

이것은 마치 해가 진 뒤에 반딧불이 작은 빛을 내는 것을 보고 그 빛을 얻기 위해서 어떤 의식을 시도하기 시작한 사람의 예와 비슷하다. 

홀로인 그가 이원성으로 있는 줄 알다가, 사드구루가 준 가르침에 의해 다시 하나가 되었다. 

늘 홀로 은둔하던 그가 다수가 된 것이다. 

 

그는 언제나 깨어있었는데도 자신이 잠들어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무엇을 인식하거나 보든 간에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 우리에게 이해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경험일 뿐이다. 

이 경험들은 하나로부터 이원성이 파생된 것이고, 하나의 꿈일 뿐이다. 

이 경험이라는 것은 꿈 속에서 여기는시간의 흐름과 같다. 

심지어 경험이 미세한 성품의 것일 때에도, 그것은 시간 그 자체의 성질인 '무지의 시간'일 뿐이다. 

 

시간에 대한 지각과 외부 세계에 대한 경험들은 진아의 잠일 뿐이다. 

일반적인 지성(앎)의 상태는 이원성과 환(幻)일 뿐이다.

단일성(하나)은 환이 아니며, 따라서 '타자'에 대한 주시작용이 없다. 

그래서 그것은 그 자신을 깨운 그일 뿐이다 

우리는 진아일 뿐이므로 실제로는 결코 잠들지 않는다. 

 

감각기관들이 휴식을 취하면 그것을 잠이라고 하는 것이다. 

진아는 감각대상들에서는 초연하다 

만일 진아가 잠을 잔다면 감각기관들이 전혀 깨어나지 못할 것이고, 아무 움직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아는 항상 깨어 있다. 잠들어 있지 않는다. 

 

하나의 환(幻)만 있었는데 그것이 제거되었다. 

깨어있는 그가 그 자신을 깨운 것이다. 

늘 '비추는 성품을 지닌 자', 본래의 관찰자의 성품을 지닌 자에게 진아지가 주어졌다. 

이것이 더 이상 에고가 없는 자에 대한 묘사이다. 

이것은 개아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빠라마뜨만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브라만에 대한 가르침이다. 

 

호랑이가 자신이 염소가 되는 것을 걱정했으나, 나중에 자신은 호랑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스스로 있는 자가 자신의 본래성품을 기억해 낸 것이다.

설사 어떤 사람이 무지하다 하더라도, 그가 절대로 죽지 않는 존재라는 것은 증명된 사실이다. 

무지 때문에 사람은 다시 태어나야 하지만, 

깨달음을 얻으면 실재와 하나가 된다. 

그것이 유일한 차이점이다. 

 

몸과 자신을 동일시하다가 죽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작은 개아라는 관념이 계속 유지된다. 

깨달음의 지혜를 얻어서 몸에 대한 집착이 떨어져 나가면, 

우리는 광대해지고, 만물에 편재하는 존재와 하나가 된다. 

'나는 도처에 편재해 있다'는 깨달음이, 어떤 한계 내에 속박되어 있던 '아는 자(개아)'의 죽음이다. 

만약 이것을 시험해 보고 싶다면, 여러분이 잠들어 있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해 보면 알 수 있다. 

탄생이 없다는 것을 알 때, 죽음이 없다는 것도 확신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어디서 살았는지를 망각한 채 유랑하고 있었다. 

나중에 누군가가 그를 집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속성(조건)을 넘어서 있는자'가 사드구루의 가르침을 통해 그 자신을 깨닫게 되었다.

생명기운의 말단 작용인 자가 다시 그 생명기운인 그 힘의 본체가 되었다. 

그의 진실한 본성품, 그의 진실한 본래 형상을 알게 된 것이다. 

 

지복을 느끼는 자가, 자신의 성품이 본래부터 지복일 뿐임을 알게 된 것이다. 

마하데바(시바)가 황소 난디가 되자 멍애를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마하데바인 것을 상기시켜 주자 멍애에서 벗어났다. 

만약 개아로 다시 태어난다면, 분명히 괴로움과 슬픔을 경험할 것이다. 

 

어느 노예 소유자는 죽은 노예들을 소생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죽은 노예를 되살려내서 다시 노예로 부려 먹곤 했다. 

누가 그 능력을 뺏앗아 버리자 노예들은 자유를 얻었다. 

신이 한 가난한 사람의 숭배에 흡족해져서 그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말하면 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그가 돈을 원하자 신은 그에게 많은 돈을 주었다. 

그가 그 돈을 받고 나서 강도들이 그를 때리고 돈을 강탈해 갔다. 

그는 이 돈선물을 수백번 받았지만, 그 돈들은 모두 허망하게 낭비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수백 번 두둘겨 맞고 강탈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한 성자가 그를 만나, 그의 모든 돈과 함께 그를 집에 안전하게 데려다 주었다. 

그 집이 진아의 상태이다. 

 

성자가 그 사람의 네 가지 몸-육신,미세신, 원인신, 대원인신-을 묻어버렸고, 

그리하여 그는 불사의 존재가 되었다. 

만일 하인에게 불사의 은택을 주면 그는 영원히 하인으로 남을 운명이 된다. 

그런 불사의 존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식으로 불사의 존재로 남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네 가지 몸을 넘어선 '불사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자유에게 자유가 주어진다. 

 

요기는 늘 시바(영원)와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자신은 신을 숭배하는 개아라는 관념으로 시바를 숭배한다면, 

그리고 마음 속에 어떤 분리의 느낌이 있다면, 그런 숭배는 시바에 대한 진정한 숭배가 아니다. 

개아는 자신이 행위자라는 관념을 가지고 개입하지만, 자신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즉시 죄와 공덕 둘 다를 넘어선다. 

 

"찌뜨라굽따(사람이 일생 중에 한 선행과 악행을 모두 장부에 기록하는 자-야마의 서기)가 적고, 찌뜨라굽따가 본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저지른 범죄 중에서 우리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었던가? 

마음이 모르는 어떤 죄와 공덕이 있었던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두려움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무엇을 해도 용인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라. 

'무욕인 자'만이 자기 행위의 열매에서 벗어나게 된다. 

'내가 향유자다' 또는 '내가 고통받는 자다'하는 느낌이 사라져야 한다. 

 

                                              - Master of Self-Realiz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