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27. 09:40ㆍ성인들 가르침/금강경
妙行無住分 第四(묘행무주분 제사)
[본문]
復次須菩提(부차수보리)야 菩薩(보살)은 於法(어법)에 應無所住(응무소주)하여 行於布施(행어보시)니
所謂不住色(소위부주색)하고 布施(보시)하며 不住聲香味觸法(부주성향미촉법)하고 布施(보시)러니
須菩提(수보리)야 菩薩(보살)은 應如是布施(응여시보시)하고 不住於相(부주어상)이니 何以故(하이고)오
若菩薩(약보살)이 不住相布施(부주상보시)하며 其福德(기복덕)이 不可思量(불가사량)일세니라.
그리고 또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법에 착한 바 없이 보시를 행할지니, 이른바 색에 머물지 않고 보시할 것이며, 소리나, 향기나, 냄새나, 맛이나, 부딪침이나, 법에 착하지 않고 보시할지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에 착하지 말라 함은, 어찌한 연고이냐, 만일 보살이 상에 주하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을 가히 생각으로 헤아리지 못할 지니라.
[해설]
이 경의 법문이, 처음 수보리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낸 이는,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무르며, 어떻게 항복받으오리까 하고, 가르침을 청하였는데, 이 윗대문에서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데 까지는, 그 마음 항복받는 법을 가르쳐 보이시고, 이 대문에 와서는 그 마음을 머무르는 법을 일러주신 것이다. 수보리야 보살이 법에 착함이 없이 보시를 행할 것이니라 하셨다. 예를 들면 빛(色)이나 소리(聲)나 냄새(香)나 맛(味)이나 부딪침(觸)이나 법(法, 이것은 육진(六塵)을 말한 것인데) 눈 귀 코 혀 몸 뜻 육근의 경계에 주하지 말고 보시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마음의 주처(住處)를 일러주신 말씀이시다.
여기서 독자 여러분의 의심이 생길 것이니, 부주(不住)를 말한 것으로 어찌하여 주(住)를 삼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이다. 독자여 ! 가만히 눈을 감고 묵묵히 생각하여 보라. 우리들 본마음의 주처가 어디인가. 산인가 들인가. 바다인가 천상인가, 지하인가, 전라도인가 충청도인가, 아니 동양인가, 서양인가, 아무리 천상천하 시방세계를 다 찾아 보아도, 우리 본심의 주처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육근(六根)에도 주하지 않고, 육진(六塵)에도 주하지 아니하여, 주가 없는 그곳이,이 우리의 깨끗한 본심(本心)의 주처이니, 상(相)에 주하지 말고 보시(布施)하라 함은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를 하라는 말씀이시다.
보시란 무엇인가, 물질로나 법으로나 남에게 베풀어 주는 것을 보시라 하나니, 보살이 피안(彼岸)에 이르는 방편(方便)으로, 만행(萬行)을 닦는 것이나 일만가지 행(行)이, 육바라밀(六波羅蜜)에 지나지 않는 것이요, 육도문(六度門) 가운데에도, 보시(普施)가 머리가 되는 것이니, 계(戒)를 가짐과 욕(欲)됨을 참는 것과, 부지런(精進)한 것과, 선정(禪定)을 닦는 것과, 지혜(智慧)를 밝히는 것은, 보시의 다음이다.
그러므로 보시는 피안에 이르는데 가장 빠른 길이 된다. 어째서 그러한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웁고 더러운 죄악의 근본이, 모두 탐욕(貪慾)에서 기인(起因)되는 것인데, 보시는 이 탐욕의 무서운 병근(病根)을 다스리는 선약(仙藥)도 되고, 자비심의 등불도 되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보시는 내것을 널리 베풀어 준다는 뜻이니, 준다는 것은 곧 놓아버린다는 뜻이 된다. 우리는 참으로 잘 살기 위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모두를 놓아 버려야 한다. 눈도 놓아 버리고, 귀도 놓아 버리고, 코도, 혀도, 몸도, 아름알이(識見)도, 놓아버려야 한다. 이것이 참으로 보시인 것이다. 모두를 놓아 버리고, 한 물건도 더 놓을 것이 없이, 가난하게 된 때가 바로 잘 살게 될 때요, 거기가 도피안(到彼岸)이요, 그곳이 극락세계인 것이다.
독자여 ! 여기서 또 이런 생각을 이르키지 말라. 보시(布施)라 함은, 주고 받는 자가 있고, 주고 받는 물건이 있을 것이니, 어떻게 상(相)에 주(住)하지 않고 보시(布施)를 행(行)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
하늘이 비와 이슬을 내리고, 땅이 만물을 기르되, 내가 보시(布施) 한다는 상(相)이 없이 하고 있으며, 햇빛과 공기가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내 마음이 깨끗하면, 육근(六根)이 육근이 아니요, 육진(六塵)이 육진이 아닌 것이니, 주는 자 받는 자가 있고, 주고 받고 하는 물건이 천만가지가 되기로서, 어찌 한 사람인들 볼 수 있으며 한 물건인들 있을 수 있으랴. 이것이 상(相)에 머물지 않는 보시(布施)이니, 이와 같이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이 복덕이야말로, 사량(思量)할 수 없이 크다는 말이다.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東方虛空(동방허공)을 可思量不(가사량부)아
不也(불야)니이다. 世尊(세존)이시여, 須菩提(수보리)야, 南西北方思惟上下虛空(남서북방사유상허공)을 可思量不(가사량부)야 不也(불야) 世尊(세존)이시어
수보리야 네 뜻은 어떠하냐, 동방허공을 가히 사량하겠는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남서북방과 사유상하허공을 가히 사량할 수 있는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해설]
부처님의 설법이, 매양 법(法)을 먼저 설하시고, 다음에 비유(比喩)를 들어 보이기도 하시고 먼저 비유를 들어 보이고, 다음에 법을 설하시기도 하였으니, 그러한 예로 여기서는, 상에 주하지 않고 보시하는 법덕이, 한량없이 큼을 말씀하시고저, 먼저 허공의 비유를 드신 것이다. 사유(四維)는 동서남북의 사이가 되는 것이요, 상하는 위아래이니, 동서남북과 사유와 상하를 합하면, 시방 허공(十方虛空)이 된다.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菩薩(보살)의 無住相布施福德(무주상보시복덕)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여 不可思量(불가사량)이니라.
수보리야, 보살이 상에 주하지 않고 보시하는 복덕도, 또한 이와 같아, 가히 사량할 수 없느니라.
[해설]
먼저 비유를 드시고, 이 대문에서 법을 들어 보이셔, 저 가이 없고 아래가 없는 것과 같이, 상에 머물지 않고 하는, 보시복덕(布施福德)도, 크고커서, 어떻다고 사량할 수 없나니라 하신 것이다.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菩薩(보살)은 但應如所敎住(단응여소교주)니라.
수보리야, 보살이 다만 가르친바대로 주할지니라.
[해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의 물음에 따라 마음 주하는 법을 말씀하시고, 이 대문에서 윗 말들을 매잘라, 내가 위에서 일러 준바와 같이 그 마음을 머무르라고 하신 것이다.
- 해안선사 강의 <금강반야바라밀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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