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16. 10:10ㆍ성인들 가르침/능엄경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140회-1]
11장. 오십마장(五十魔障)
11-4. 행음에 따른 마장(魔障) -1
11-4-1. 행음마에 갇힌 자리와 다해진 자리
[본문]
阿難彼善男子가 修三摩地하야 想陰盡者는 是人平常에 夢想消滅하고 寤寐恒一하야 覺明虛靜이 猶如晴空하야 無復麤重한 前塵影事하며 觀諸世間의 大地山河호대 如鏡鑑明하야 來無所粘하고 過無蹤跡하야 虛受照應에 了罔陳習하고 唯一精眞이리니 生滅根元이 從此披露하야 見諸十方의 十二衆生호대 畢殫其類하며 雖未通其各命由緖나 見同生基호대 猶如野馬의 熠熠淸擾하리니 爲浮根塵의 究竟樞穴이요 此則名爲行陰區宇니라
아난아! 저 선남자가 삼마지를 닦아 상음(想陰)이 다한 자는 이 사람이 평소의 꿈과 잡념[想]이 소멸하고 자나 깨나 한결같이 깨달음의 밝음[覺明]이 비고 고요하게 되는데 이는 마치 갠 허공과 같아서 다시는 경계에 따라 나타나는 거칠고 무거운 분별의 그림자[麤重前塵影事]가 없을 것이다.
또한 세간의 대지(大地)와 산하(山河)를 보더라도 마치 거울에 물건이 비치는 것처럼 와도 붙은 것이 없고 가도 남은 자취가 없어서 허공처럼 받아들이고 비추는대로 응하여 마침내 묵은 습기[陳習]가 없고, 오직 하나의 정미로운 진리 뿐이기에, 생멸하는 근원[行陰]이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방의 열두 가지 중생을 다 볼 수 있는 것이니 비록 각각 그 생멸의 실마리에는 통달하지 못하나 태어날 때부터 함께하는 생명의 근원[同生基,行陰]이 마치 아지랑이처럼 밝고 맑게 피어오르는 것[熠熠淸擾]과 같음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부근진(浮根塵)의 마지막 구덩이요, 이를‘행음(行陰)에 갇힌 것이다’고 한다.
[해설]
수행자가 삼매를 닦아서 상음(想陰)을 벗어나면, 그전에는 생시에 쓸데없이 수시로 일어나던 망상(妄想)들이 전혀 생기지 않고, 꿈도 꾸지 않는 편안한 잠 속에 들므로, 자나 깨나 항상 마음이 밝게 깨어있고 텅 빈 허공처럼 전혀 아무 생각도 없으며,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 어떤 대상에 부딪치드라도 분별망상의 번뇌가 조금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에 안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을 보는 것이 마치 거울이 거울에 비추어진 물건에 대하여 아무런 영향없이 무심하게,그냥 맑게 비추기만 하는 것처럼,마음이 세상의 대상들에 대하여 집착이 없고, 감정이나 자취가 없어서 허공처럼 모든 것을 분별없이 평등하게 받아들이되 또한 비추는대로 반응하므로 어떤 습기도 묻어나지 않으며 오직 맑고 고요할 뿐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맑고 고요하여 미세한 생멸의 근원이 드러나지만, 아직 '행음(行陰)'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마치 아지랑이가 그 형태가 없고 맑지만, 어른어른 거리는 미세한 어지러운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마음에 육근과 육진경계의 거친 것들은 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하게 미세한 것까지는 사라지지 못했으며, '행음(行陰)'을 벗어나야만, 맑지만 미세한 어지러운 기운이 가라앉아서, 마치 잔잔한 파문마저 다 가라앉은 고요한 연못물 표면처럼, 마음의 근원인 고요한 본래 성품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음을 소멸하는 단계에서는 생멸의 근원을 벗어나는 단게인데, 아직 행음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단계에서는 생명의 근본과 유래를 완전히 통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12중생의 갖가지 중동분(衆同分)의 미세한 파동성분이 아지랑이처럼 잔잔하게 어른어른거려 보이는 것입니다.
행음경계가 바로 생멸의 근원인데, 상음 상태에서는 상음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것이 상음이 없어지니깐. 환하게 드러나는데 이것이 행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멸근원을 접하지만 아직 행음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므로 행음을 소멸하는 단계에서 각종 생멸에 대한 집착과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에 빠질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이때 마구니의 방해에 걸려서 수행자가 10 가지 혼란한 견해 속에 빠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진근(浮塵根)이라는 것은 생사(生死)하는 우리의 몸입니다. 이 몸의 근원이 바로 행음(行淫)입니다.
이 행음의 경계를 벗어나면 생멸의 근원이 소멸되고 종자와 습기가 영원히 끊어져 다시 일어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若此淸擾熠熠元性이 性入元澄하야 一澄元習호미 如波瀾滅에 化爲澄水하리니 名行陰盡이니라 是人則能超衆生濁하나니 觀其所由인댄 幽隱妄想으로 以爲其本이니라
만약 이렇게 맑게 피어오르는 본래의 성품이 원래 맑은 곳[元澄,識陰]으로 들어가 원래의 습기[元習,行陰]가 한 번 맑아지는 것이 마치 파도가 사라져 맑은 물이 되는 것과 같은데, 이것을 이름하여‘행음(行陰)이 다한 것이다’고 한다.
이 사람은 능히 중탁(衆生濁)을 초월하게 되는데, 그 까닭을 살펴보면 유은(幽隱)한 망상으로 근본을 삼았기 때문이다.
[해설]
만약 맑으면서도 어른어른 보이던 미세한 파동의 움직임이 행음(行陰)인데, 이 행음이 원래 맑기만 한 식음(識陰,제8아뢰아식)으로 흡수되어 완전히 습기가 없어져 맑아지면, 즉 제7식의 자아의식의 아른아른거리는 미세한 파동마저 제8식(識)의 고요함 속으로 완전히 흡수되면,행음(行陰)이 다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행음이 다한 수행자는 중생탁(衆生濁)을 초월하는데, 왜냐하면 너무 미세하여 보이지 않고 깊히 숨어 있는 망상(妄想;중생의 근본습기)으로 중생탁의 근본을 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그것이 행음과 같은 것입니다.
중생탁(衆生濁)이란 오탁(五濁)의 하나로 견탁(見濁)과 번뇌탁의 결과로 인간의 과보(果報)가 점점 쇠퇴하고 힘은 약해지며 고로움과 질병은 많고 복은 적어짐을 말합니다.
11-4-2. 행음마가 나타나는 10가지 외도-1
가) 무인론(無因論)에 떨어진다
[본문]
阿難當知하라 是得正知한 奢摩他中에 諸善男子가 凝明正心이면 十類天魔가 不得其便이어든 方得精硏하야 窮生類本하리니 於本類中에 生元露者가 觀彼幽淸한 圓擾動元호대 於圓元中에 起計度者는 是人墜入二無因論이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라. 정지(正知)의 사마타(奢摩他) 가운데 여러 선남자가 움직임 없고 맑고 바른 마음[凝明正心]이면 열 가지 천마(天魔)는 그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이 때 선남자는 바야흐로 정미롭게 연구하여 태어나는 모든 무리의 근본을 다할 것이다. 이렇게 근본의 무리[本類] 가운데 생명의 근원[生元]을 드러낸 자가 거기에서 그윽하게 보는 가운데 계탁(計度)을 일으키는데, 이러한 사람은 두 가지 무인론[二無因論]에 떨어질 것이다.
[해설]
"정지(正知)"란 '삿된 생각이 없다'는 상태이며, '사마타'는 선정을 말하니깐, 고요한 선정 속에서 마음에 움직임이 없고 밝게 깨어 있으면, 앞의 상음에서의 열가지 천마가 침입할 틈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미롭게 연구한다'는 말은 상음(想陰)을 완전히 없애고, 행음을 열심히 탐구하여 이른다는 말입니다.
즉 상음을 열성껏 없애고 행음을 탐구하여 이르는 과정에서 생명의 근원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 생명의 근원이 바로 행음(行陰) 그 자체를 말하는데, 그 행음에 들어오면서 생명의 근원에 대해 여러가지 원리를 헤아리고 분별하는 생각(計度)을 내게 되는데, 이러한 생각을 내는 수행자는 두 가지 무인론(無因論)을 헤아리며 분석하는 자리에 떨어지게 됩니다.
가-1) 시작의 근본이 원인이 없다고 본다
[본문]
一者是人이 見本無因이니 何以故오 是人旣得生機全破하고 乘干眼根 八百功德하야 見八萬劫所有衆生호대 業流灣環하야 死此生彼라 只見衆生이 輪廻其處하고 八萬劫外에는 冥無所觀일새 便作是解호대 此等世間의 十方衆生이 八萬劫外에 無因自有라하나니 由此計度일새 亡正遍知하고 墮落外道하야 惑菩提性이니라
첫째는 이 사람이 근본이 무인[本無因]이라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태어나는 기틀이 모두 부서짐[想陰盡]을 느끼고는 안근(眼根)의 팔백공덕(八百功德)을 의지하여 팔만 겁(八萬劫) 안에 있는 중생들을 보게 되는데 업보의 흐름이 굽이쳐 돌아와 여기서 죽어 저기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다만 중생들이 그곳에서 윤회하는 것만 보고, 팔만 겁 밖에는 어두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득‘이러한 세간의 시방중생들은 팔만 겁 이래로 인(因)이 없이 스스로 생긴 것이다’고 이해하는 것이니 이렇게 계탁(計度)하기 때문에 올바른 지혜[正遍知]를 잃고 외도에 떨어져 깨달음의 성품을 의혹(疑惑)하게 된다.
[해설]
첫째 이 사람은 생(生)의 시작이 원인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상음이 다한 단계이므로 지금까지 생겨난 것들은 그 기틀이 다 상음이 없어지므로 인해 다 파괴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에, 눈의 보는 범위가 800공덕(즉 눈의 사방 전체를 볼 수 있으면 1200공덕인데, 앞쪽을 다 보지만, 뒤쪽은 전부 못 보고, 양옆은 왼쪽 오른쪽 각각 반쪽만 보므로 800/1200 공덕을 봄)만 보고, 상음까지 없앤 수행을 했기 때문에 팔백만겁 안의 시간의 범위에 해당하는 중생들의 생멸상만을 알 수 있지만, 즉 상음까지 없애는 경지의 공부를 좀 더 해서 나름대로 꽤 넓은 범위의 정신적 범위를 볼 수가 있어서 중생들의 생멸 윤회하는 것을 보는데, 팔만겁 이상은 수행력이 부족해서 어두워서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팔만겁 밖은 보지 못하므로 모든 중생들은 팔만겁 이래로 '생겨난 원인이 없이 스스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스스로 헤아리고 상상하기 때문에 올바른 지혜를 잃어버리고 외도에 떨어져 깨달음의 본래 성품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가-2) 결말도 원인이 없다고 본다.
[본문]
二者是人이 見末無因이니 何以故오 是人於生旣見其根일새 知人生人하고 悟鳥生鳥하며 烏從來黑이오 鵠從來白이며 人天本䜿요 畜生本橫이며 白非洗成이요 黑非染造라 從八萬劫으로 無復改移일새 今盡此形하야도 亦復如是하리라 而我本來로 不見菩提이니 云何更有成菩提事리오 當知今日에 一切物象이 皆本無因이라하니라
둘째는 이 사람이 결과도 무인[末無因]이라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이미 태어나는 근본을 보았기 때문에‘사람은 사람을 낳고, 새는 새를 낳고, 까마귀는 본래부터 검고, 학은 본래부터 희고, 사람과 천상은 본래 서서 다니고, 축생은 본래 기어다니며, 흰 것은 씻어서 된 것이 아니고, 검은 것은 물들여서 만든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팔만 겁 이래로 변하거나 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 형체가 다하더라도 또한 다시 그럴 것이다. 내가 본래로 깨달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어찌 다시 깨달음을 이루는 일이 있으리요. 그러므로 오늘의 일체 만물이 다 그 결말이 무인[本無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해설]
둘째, 이 사람은 결과도 원인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생기는 것들의 근본을 이미 보았기 때문에, 사람은 그대로 사람을 낳고, 새는 그대로 새를 낳으며, 까마귀는 본래부터 검고, 학은 본래부터 희고, 사람과 천신은 본래 서서 다니고, 짐승은 본래 기어서 다니며, 흰 것은 씻어서 흰것이 아니고, 검은 것은 물들여서 검은 것이 아니고 본래 그대로이다, 이와 같이 팔만겁 이래로 변하거나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제 이 몸이 다한다 해도 마찬가지이니, 내가 본래부터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거늘, 어떻게 깨달음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인가. 하면서, 그러므로 일체 만물이 다 그 결과에 본래 원인이 없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의 것은 전부 과거겁을 따져 본 것이고, 이번 두 번째는 미래겁을 헤아려 본 것입니다.
[본문]
由此計度일새 亡正遍知하고 墮落外道하야 惑菩提性하나니 是則名爲第一外道의 立無因論이니라
이렇게 계교하고 헤아리기 때문에 올바른 지혜[正遍知]를 잃고 외도에 떨어져 깨달음의 성품을 의혹하게 되니 이것을 첫 번째로 외도가 무인론(無因論)을 세움이라 한다.
[해설]
이와 같이 헤아리고 상상하기 때문에 올바른 지혜를 잃고, 올바른 수행길에서 샛길로 빠져서 깨달음읠 길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 변상론(遍常論)에 떨어진다
[본문]
阿難是三摩中에 諸善男子凝明正心에 魔不得便어든 窮生類本이리니 觀彼幽淸한 常擾動元호대 於圓常中에 起計度者는 是人墜入四遍常論이라
아난아! 이 삼마지 가운데 선남자가 움직임 없이 맑고 바른 마음이면 마구니가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이 때 선남자는 태어나는 모든 무리의 근본을 궁구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그윽하고 맑게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여 원만하고 항상하다고 궁구하는 가운데 계탁(計度)을 일으키는데, 이러한 사람은 네 가지 변상론(遍常論)에 떨어질 것이다.
[해설]
수행자가 삼매에 들어서 고요하며 맑고 바른 마음에 안정되어 있으면, 마구니가 마음에 침투하여 끼어들 틈이 전혀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수행자가 태어나는 모든 무리들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탐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맑고 고요한 선정 속에서 미세한 파동의식이 고요하고 원만하며 항상한 근원에서 어떻게 나오는가를 관찰하며 궁구하다가, 어떤 특정한 원리를 헤아리며 생각을 일으키는데, 이때 이 수행자는 네 가지의 변상론(遍常論), 말하자면 항상 변함이 없다는 소견, 즉 네 가지 상견(常見)에 빠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행음만이 지극히 궁구하다 보니 오히려 행음에 덮여서 더 깊고 은밀한 미세한 의식의 파동성 흐름을 보지 못하고, 드디어 두루하지도 않고 항상하지도 않은 것을 두루하고 항상하다고 서둘러 헤아리고 상상하니, 이들을 상견외도라고 합니다.
나-1) 마음과 그 경계를 항상한 것으로 본다
[본문]
一者是人窮心境性이 二處無因이라하야 修習能知二萬劫中에 十方衆生의 所有生滅이 咸皆循環하야 不曾散失하야 計以爲常이니라
첫째는 이 사람이‘마음과 경계의 두 가지 성품이 다 인(因)이 없다’고 궁구하여 이렇게 수습(修習)하고‘이만 겁(二萬劫) 가운데 시방중생의 있는 바 생멸이 다 순환하는 것이요, 일찍이 흩어짐이 없다’고 헤아려서‘항상한 것이다’고 계탁한다.
[해설]
첫째는,수행자가 마음(心),그리고 경계(境),이 두 가지가 원상(圓相)으로 계속 순환(循環)하며 생멸(生滅) 한다고 보는 것인데, 마음과 경계 사이에 서로 교번하는 것(파동성)은 어떤 원인도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생의 생멸(生滅)작용이 증감(增減)없이 자동적으로 영구히 순환(진동)할 뿐이라는 견해에 빠지는 것입니다. 심(心)과 경(境)의 두 가지가 2만겁 동안에 (生滅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모든 중생은 2만겁 안에 포함되므로,이 2만겁 안에서 모든 중생들의 생과 멸이 자기가 저지른 업(業)에 따라서 계속 생멸(生滅) 순환하며 흩으러지지 않으므로, 이러한 생멸 순환작용이 흩어짐없이 항상(恒常)하다고 스스로 헤아려서 분별하는 것입니다.말하자면 심(心)과 경(境), 각 1개에 1만 겁씩, 총 2만겁 범위내에서만 보아서 항상하다는 것이지, 2만겁 범위를 초월해 있는 것은 볼 능력이 없다는 것이죠. '계탁(計度)한다'는 말은 '헤아려서 분별한다', 즉 저 혼자서 이렇쿵 저렇쿵 원리를 추리하고 상상하며 분별한다는 말입니다.
나-2) 사대(四大)를 항상한 것으로 본다.
[본문]
二者是人이 窮四大元의 四性常住하야 修習能知二萬劫中에 十方衆生의 所有生滅이 咸皆體恒하야 不曾散失하고 計以爲常이니라
둘째는 이 사람이 사대근원(四大根元)의 네 가지 성품이 항상하다고 궁구하여 이렇게 수습(修習)하고, 사만 겁(四萬劫) 가운데 시방의 중생에게 있는 생멸이‘모두 몸이 항상한 것이기에 일찍이 흩어짐이 없다’고 헤아려서‘항상한 것이다’라고 계탁한다.
[해설]
두 번째는 수행자가 지수화풍(地水火風)사대의 성품이 항상 변함이 없다는 것을 닦아 익혀서, 사만겁 동안 모든 중생에게 있는 생멸현상은 모두 그 체(地水火風)가 항상 변함없이 흩어져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으로 '항상한 것이다'라고 헤아리고 분별해서 잘못된 견해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여기서 4만겁이라는 것은 지,수,화,풍, 각각 1개에 1만겁씩, 총 4개이므로 총합해서 4만겁으로 계산한 것입니다.먼저 번의 것은 2만겁인데, 이번은 4만겁이니깐 2배 늘어난 것입니다.
나-3) 심의식(心意識)을 모두 항상한 것으로 여긴다
[본문]
三者是人이 窮盡六根과 末那執受호대 心意識中의 本元由處가 性常恒故로 修習能知八萬劫中에 一切衆生이 循環不失하야 本來常住하고 窮不失性일새 計以爲常이니라
셋째는 이 사람이 육식[六根]과 말라식(末那識,七識)과 집수식(執受識,八識)을 궁구하여‘심의식(心意識) 가운데 본원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성품이 항상한 것이다’고 여긴다.
그리고 이것을 의지하여 수행하되‘팔만 겁 가운데 일체의 중생이 순환하여 없어지지 아니하고, 본래부터 상주하여 모두 그 성품을 잃지 않는다’고 헤아려‘항상한 것이다’라고 계탁하는 것이다.
[해설]
수행자가 '6식(識)과 7식(意)과 8식(心)이 변하지 않는 본바탕으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6,7,8식의 성품도 역시 모두 변하지 않는 항상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따라서 이것에 의지하여 수행하고 익혀서 '팔만겁 동안에 일체중생이 심,의,식(心意識)이 사라지지 않고 순환하여 본래부터 상주(常住)하는 것이므로, 그 성품을 절대로 잃지 않는다고 헤아려서 항상 변함이 없다'라고 상상하고 분별하여 상견(常見)에 빠집니다. 팔만겁이라는 것은 전5식(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과 6식과,7식(말라식),8식(아뢰아식),을 다 합치면 8가지 식(識)이므로 1개에 1만겁씩 8만겁으로 설정했습니다.
나-4) 상음(想陰)이 다 없어진 자체가 항상한 것이라고 여긴다
[본문]
四者是人이 旣盡想元하니 生理更無流止運轉하고 生滅想心이 今已永滅하니 理中自然成不生滅이라하고 因心所度하야 計以爲常이니라
넷째는 이 사람이 이미 상음(想陰)의 근원을 다하였기에, 태어나는 이치가 다시 흐르고 멈추는 등의 운전(運轉)이 없고, 생멸하는 상심(想心)이 이미 멸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치 가운데 자연히‘불생멸(不生滅)을 이루었다’고 마음으로 헤아려‘항상한 것이다’고 계탁한다.
[해설]
네번째는 이미 상음(想陰)이 다 없어져서 행음이 나타나면 그 자체가 더 이상 궁구할 것이 없어져서 항상하다는 생각입니다 상음의 근원이 다 하였기 때문에 생각이 흐르고 그치는 등의 마음작용이 없어져서,이러한 이치를 보고는 '생멸이 없어졌다'라고 헤아리며 '항상한 것이다'라고 착각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나-5. 변상론에 떨어진 외도에 대한 결론
[본문]
由此計常일새 亡正遍知하고 墮落外道하야 惑菩提性하나니 是則名爲第二外道의 立圓常無因論이니라
이와 같이‘항상하다’고 계탁하기 때문에 올바른 지혜를 잃고 외도에 타락하여 깨달음의 성품을 의혹하게 되니 이것을 두번째로 외도가 원상론(圓常論)을 세움이라 한다.
[해설]
상음(想陰)이 다 한 자리가 두루하지도 원만하지도 않은데, 두루하고 원만하다고 헤아려서 착각하며, 참되게 상주(常住)하지 않는데도 참으로 상주(常住)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잘못된 소견에 떨어져서,옳바르고 보편적인 지혜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다른 샛길로 빠져 버리는데, 이것은 원래부터 원인없는 순환작용이 항상(恒常)한 것이라는 원상론(圓常論)에 깊히 빠져 버린 외도의 상태입니다.
즉,원상론(圓常論)은 보리성(菩提性)이 아닌데도, 순환(順煥)하는 것이 항상 일정하다는 고정관념에 빠지는 것입니다.
다) 무상론과 상론에 떨어지다.
[본문]
又三摩中에 諸善男子가 堅凝正心에 魔不得便이어든 窮生類本하야 觀彼幽淸한 常擾動元하고 於自他中에 起計度者는 是人墜入四顚倒見인 一分無常하고 一分常論이니라
또 삼마지 가운데 선남자가 견고하여 움직임 없는 바른 마음이면 마구니가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이 때 선남자는 태어나는 모든 종류의 근본을 다하고, 그윽하게 맑고 항상 요동하는 본원을 관찰하여 자타(自他) 가운데 계탁(計度)을 일으키는데, 이러한 사람은 네 가지 전도된 견해[四顚倒見] 가운데 일분(一分)은 무상(無常)하고 일분(一分)은 항상(恒常)하다는 논리(論)에 떨어질 것이다.
[해설]
또 수행자가 삼매 속에서 마음이 움지이지 않고 안정되어 있으면 마구니가 마음으로 침투할 틈이 없는데, 이때 상음(想陰)이 없어졌으므로,태어나는 모든 것들의 근본바탕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 깊고 맑으며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면서, 자기와 남을 비교해가며 자기나름대로 판단한 생각을 헤아려 분별하는데, 이런 사람은 네 가지 잘못된 견해에 떨어지게 돠며,한 쪽은 무상(無常)하다고 여기고, 또 다른쪽은 항상(恒常)하다고 여기는 잘못된 견해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다-1) 자아는 상(常), 다른 것은 무상(無常)이라고 본다
[본문]
一者是人이 觀妙明心이 遍十方界하고 湛然以爲究竟神我하야 從是則計我遍十方하야 凝明不動이어든 一切衆生이 於我心中에 自生自死하나니 則我心性은 名之爲常이요 彼生滅者는 眞無常性이니라
첫째는 이 사람이 묘명(妙明)한 마음이 시방세계에 두루함을 보고, 담연(湛然)한 것으로 구경의 신아(神我)를 삼는 것이다. 즉‘아(我)가 시방에 변만하여 밝게 엉켜 움직임이 없다. 그리고 일체의 중생은 나의 이 마음속에서 스스로 태어나고 스스로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심성(心性)은 항상한 것이고, 저의 생멸(生滅)은 참으로 무상한 것이다’고 헤아리는 것이다.
[해설]
행음으로 들어오니 상음 때와는 달리, 아주 미세한 파동 움직임으로 묘하고 밝은 마음(妙明心)이 전체에 두루 펼쳐져 있음을 보고는, 그 담연(湛然,맑고 깨끗한 것)한 마음이 바로 신아(神我), 즉 아뜨만이라고 착각하여, '내 마음이 시방 전체에 두루하게 펼쳐져서 밝고 움직임이 없이 안정되어 있다. 그래서 이 시방세계 일체의 중생이 내 마음(아뜨만) 속에서 스스로 태어나서 죽는다'고 생각하며, 자기의 마음은 항상(恒常)한 것이고, 내 마음(진아) 안에서 생겼다 멸하는 저 중생들은 무상(無常)하다고 헤아리며 분별하는 견해를 내는 것입니다.
다-2) 무너지는 곳은 무상, 무너지지 않는 것은 항상(恒常)으로 본다
[본문]
二者是人이 不觀其心하고 遍觀十方의 恒沙國土하야 見劫壞處코는 名爲究竟의 無常種性이요 劫不壞處名究竟常이니라
둘째는 이 사람이 마음을 보지 않고, 시방의 수많은 국토 만을 두루 관찰하여 세월이 흘러 무너지는 곳을 보고는 이를‘구경의 무상(無常)한 종성(種性)이라’하고, 세월이 흘러도 무너지지 않는 곳을 보고는‘구경의 항상(恒常)한 것이다’고 한다.
[해설]
두번째, 이 수행자는 자기 마음은 관찰하지 않고, 자기 마음 밖에 있는 온갖 세계의 수많은 국토를 관찰하면서 겁(劫)의 세월이 지나 무너지는 것을 보면 구경의 자리가 무상한 성품종류라고 이름하고, 겁(劫)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것을 보고는 구경의 자리가 항상한 것이다,라는 견해에 빠집니다.
참고적으로, 겁(劫)의 세월에 무너진다는 것은 수재(水災), 화재(火災), 풍재(風災)의 삼재(三災)의 영향을 받는 것인데, 말하자면 이 삼재(三災)로 이 세계(또는 마음)가 무너져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처음 수재(水災)로는 욕계천(欲界天)은 물론 욕계천으로부터 초선천(初禪天)까지 무너지고, 그 다음 화재(火災)로는 이선천(二禪天)까지 파괴되며, 그 다음 풍재(風災)로는 삼선천(三禪天)까지 파괴되므로, 무상(無常)한 성품(究竟無常種姓)이라고 이름한 것이고, 사선천(四禪天)이상은 삼재(三災)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구경의 자리가 항상한 것(究竟常)이라고 이름한 것입니다.
다-3) 마음은 상(常), 몸은 무상(無常)으로 본다.
[본문]
三者是人이 別觀我心이 精細微密호미 猶如微塵하야 流轉十方하야도 性無移改호대 能令此身으로 卽生卽滅이라하야 其不壞性은 名我性常이요 一切死生이 從我流出은 名無常性이니라
셋째는 이 사람이‘자기의 마음[我心]이 정밀하고 미세한 것이 마치 가는 티끌과 같아서 시방에 유전(流轉)하여도 성품은 바뀌지 않고, 이 몸을 태어나게도 하고, 또 바로 멸하게도 하는 것이다’고 관찰한다.
이와 같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내 마음의 성품이 항상하기 때문이요, 일체의 생사[몸]는 나의 마음에서 유출된 것이니 이것을‘무상한 성품이다’고 부르는 것이다.
[해설]
세번째는, 수행자가 자기의 마음과 몸을 따로 따로 관찰하여 내 마음은 아주 미세하고 정밀하여 세상을 돌고 돌지만 그 성품이 변함이 없고, 또한 몸을 생기게도 하고 멸하게도 하므로, 내마음은 불변(不變)하여 항상(恒常)한 것이고, 몸은 생멸하므로 무상(無常)하다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참고적으로 외도(外道)가 헤아리고 분별하는 아상(我相,眞我)에 미세,광대,대소, 세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미세한 아(我)를 말합니다. '정세미밀(精細微密)'에서 '정(精)'은 '섞이지 않음'을 말하고, '세(細)'는 '거칠지 않음'을 말하고, '미(微)는 '드러나지 않음'을 말하고, '밀(密)'은 '나타나지 않음'을 말합니다.
'미진(微塵)같다'는 것은 미세하게 작아서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다-4) 행음(行陰)은 상(常), 색,수,상(色,受,想)음은 무상으로 본다.
[본문]
四者是人이 知想陰盡하야 見行陰流하고 行陰常流으로 計爲常性하고 色受想等은 今已滅盡일새 名爲無常이니라
넷째는 이 사람이 상음이 다하고 행음이 유전(流轉)하는 것으로 헤아려‘항상한 것이다’하고, 색음과 수음과 상음 등은 이미 멸하였으므로‘무상한 것이다’고 한다.
[해설]
네번째는 수행자가 상음(想陰)이 없어지자, 행음(行陰)이 현재에 흐르는 것을 보고는 행음(行陰)은 항상(恒常)한 것이고, 나머지 색음,수음,상음은 이미 없어졌으므로 무상(無常)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즉 색,수,상,행을 관찰하는데, 행음(行陰)이 현재 자기(自)라고 착각하고 나머지 색수상(色受想)음은 다른 것(他)이라고 생각해서, 현재 느끼고 있는 자(自)인 행(行)은 항상(恒常)하고, 지나가버린 타(他)인 색수상(色受想)은 없어졌으므로 무상(無常)한 것이라고 혜아리고 분별하는 생각에 빠집니다.
다-5) 세번째 외도의 결론
[본문]
由此計度一分無常하고 一分常故로 墮落外道하야 惑菩提性하나니 是則名爲第三外道의 一分常論이니라
이와 같이 일분(一分)은 무상하고, 일분(一分)은 항상하다고 계탁하기 때문에 외도에 떨어져서 깨달음의 성품을 의혹하게 되니 이것을 세 번째로 외도가 일분상론(一分常論)을 세움이라 한다.
[해설]
이와 같이 한 갈래는 무상(無常)하다고 하고, 한 갈래는 항상(恒常)하다고 헤아리는 까닭에, 정상적인 수행의 길에서 샛길로 삐닥하게 빠져서 보리의 성품을 잃어버리게 되므로, 이것을 '부분적으로 항상하다'는 견해를 주장하는 세 번째 외도(外道)의 견해라고 합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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