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4. 19:15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질문자 :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자기탐구수행법이 직접적인 수단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 수행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하고 진언을 염송하듯이 반복해서 되뇌다 보면 금방 지루해집니다. 다른 수행법에는 단계를 밟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 갈 수 있도록 초심자를 위한 예비 단계 같은 것들이라도 있는데, 선생님의 방법론에는 그런 요소가 없습니다. 에두르지 않고 곧장 <나>를 탐구하는 수행법은 직접적이기는 하지만 너무 어렵습니다.
마하리쉬 : 그대도 스스로 자기탐구가 직접적인 방법임을 인정하고 있다. 자기탐구는 직접적이고도 쉬운방법이다. 자기에게 낯선 엉뚱한 것들은 쉽게 좇으면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게 왜 그다지도 어려운가?
그대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그대 자신이 시작이고 끝이다.
만약 그대가 여기에 있고 <나>가 다른 곳에 있어서, 그대가 <나>에게 이르려면 어디에서 출발해서 어떻게 가고 어디에 도착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대가 여기 '라마나스라맘'에 있으면서, "라마나스라맘에 가고 싶은데, 어디에서 출발해서 어떻게 가야하나?'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줄 수 있겠는가? 자신에 대한 탐구도 이와 마찬가지다 나는 언제나 <나>이기에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또한 그대는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일이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지루하며 반복적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자아탐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말을 계속 묻기만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생각이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그대가 인정했듯이, 이 수행법은 직접적인 방법이므로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고, 모든 생각의 뿌리인 '나라는 생각'이 일어나는 내면에 집중해야 한다. <나>는 밖에 있지 않고 그대의 내면에 있기 때문에, 의식을 외부세계에 돌리지 말고 안으로 깊히 파고 들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이 수행법은 어렵게 여기고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여러 다른 명상법도 함께 가르쳐 왔다. 어느 방법이든지 각자에게 가장 좋고 쉬운 수행법이라야 마음을 낼 수 있는 법이니, 각자 적성에 맞는 수행법을 택하면 된다.
하지만 세상에는 자기 탐구 외에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이런저런 것을 알라고 하고 이런저런 것을 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대체 아는 자는 누구이고, 보는 자는 누구입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어떤 수행법을 선택하더라도 '행위자'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 행위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며, 그를 알기 전에는 수행이 완료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수행을 하든지 궁극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그대는 자기 탐구 수행에 초심자를 위한 예비단계같은 것이 없다고 불평했다.
그대에게는 '나'가 있으니, 그것으로 시작하라.
그대는 '나'가 늘 존재하고 있음을 안다. 그러나 그대의 육체는 늘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잠 잘 때를 생각해 보라. 잠은 그대의 육체없이도 종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나'의 육체를 동일시하고, <나>도 육체를 지니며 한계를 지닌다고 여기는데,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나>에 육체, 형상,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버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늘 존재했던 <나>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질문자 :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야 합니까?
마하리쉬 : 그대는 '나'라는 생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안다. 그 '나라는 생각'을 붙들고, 그것이 나온 근원을 찾으라.
질문자 : 그 방법을 알려줄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이제까지 애기한 대로 해보면 된다.
질문자 :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하지쉬 : 그 방법이 객관적인 것이라면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탐구수행법은 주관적인 것이다.
질문자 : 하지만 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마하리쉬 : 뭐라고?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겠다는 말인가?
질문자 : 부디 그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마하리쉬 : 지금 그대가 이미 자기 집 안에 있는데도, 집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이미 그대 안에 있다.
질문자 : 선생님은 "가슴이 <나>의 중심"이라고 전에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마하리쉬 : 그렇다. 가슴은 <나>의 단 하나 뿐인 지고한 중심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 <참나>는 에고,즉 개체 자아의 배후에, 가슴에 현존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
'성인들 가르침 > 라마나 마하리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헌신과 지(知) (0) | 2019.09.28 |
---|---|
대상없는 명상 (0) | 2019.09.18 |
'보는 자'에 머물러라 (0) | 2019.08.23 |
자기탐구수행의 핵심 (0) | 2019.08.14 |
자아탐구수행에 대해서 잘못된 견해와 수행자세를 지적함 (0) | 2019.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