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19. 10:40ㆍ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본문]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모든 것은 존재(有)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따져서 답한다.
" 당신이 (그렇게) 보는 것이 유(有)가 아닙니까? 유(有)라 하나 유(有)가 없고, 불유(不有)라 함에 (이미) 유(有)가 있으니 또한 이는 당신이 있다는 것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일체 모든 것은 생(生)함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따져서 답한다.
"당신의 (그러한) 견해가 생긴 것이 아닙니까? 생(生)이라 하나 생(生)함이 없고, 불생(不生)이라고 말함에 (이미) 생(生)이 있으니 또한 이는 당신이 생하였다는 것이 됩니다."
다시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나의 지견은 일체가 무심(無心)하다는 것입니다. "
또 따져서 답한다.
"당신이 그렇게 보는 것은 마음이 아닙니까? 마음에 마음이라 할 것이 없고, 무심(無心)이라 함에 (이미) 마음이 있으니 이 또한 당신의 마음이 있다는 것이 됩니다. 삼장법사(달마대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뜻을) 알지 못하면 이는 사람이 법(對象, 모든 것)을 따르는 것이고, 알면 법이 사람을 따른다. 알면 식(識)이 색(色)을 포용하고, 알지 못하여 미혹하면 색이 식을 포용한다. '(경에 이르길) '색으로 인하여 식을 생함이 없는 것, 이를 색(色)을 견(見)하지 않음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구(求)함에서 구(求)한다 함이 없고 , 구하지 않는다 함에서 (이미) 구함이 있으니 이 또한 당신이 구하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취(取)함에서 취한다 함이 없고, 취하지 않는다 함에 (이미) 취함이 있으니 이 또한 당신이 취함이 있다는 것이 됩니다. "
[역자 해설]
불유(不有), 불생(不生,無生), 무심(無心) 등의 법문은 대승경론의 핵심이지만 이를 하나의 법상(法想)으로 삼아 지견(知見)을 가지면 이 또한 망념(妄念)이 되어 버린다.
있지 않다고 하였는데, 있지 않다는 생각을 내면 이미 그 생각이 있게 된 것이니 불유(不有)의 뜻에 어긋난다.
불생(不生)이라 하였는데 불생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면 그 생각이 일어난 것이니 불생의 뜻에 어긋난다.
무심(無心)이라 하였는데 무심이라는 생각(知見)을 일으키면 그 생각이 있는 것이니 무심의 뜻에 어긋난다.
이 또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만 머물러 답을 보지 못함이다. 불유, 무생, 무심의 뜻을 알아야 된다.
본래 마음이 무심이라는 뜻을 알았으면 무심이라는 생각을 일으켜 여기에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견문각지의 당념 당처가 그대로 무심이라는 뜻이고, 생(生)이 그대로 무생이라는 뜻이며, 유(有)가 그대로 불유(不有)라는 뜻이니, 무생, 무심, 불유가 따로 없어 어디에 취할 바도 향할 바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견문각지의 당념 당처에서 머무름 없고, 어디에 향함 없으며, 취하고 버림도 없고, 움지여 물듬도 없으면 가르침의 뜻이 구현된다. 이미 당념 당처의 자심에 불유(不有), 무생(無生), 진여(眞如), 불성(佛性), 일심(一心)의 뜻이 다 갖추어져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으로 무엇을 향하거나 얻으려 하거나 조작하여 어떻게 하려는 행을 떠나 무수(無修)의 수(修)가 이루어지며, 정법(正法)이 구현되어 성취할 수 있게 된다.
-박건주님 역해<달마 대사의 이입사행론, 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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